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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882
한자 安東義城金氏宗宅
영어공식명칭 Head Residence of the Uiseong Gim Clan in Andong
영어음역 Andong Uiseonggimssi Jongtaek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80-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7년 6월 23일연표보기 - 안동 의성김씨 종택 보물 제45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안동 의성김씨 종택 보물 재지정
성격 고가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80-1 지도보기
소유자 김창균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의성김씨 종택의성김씨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종가이다. 김진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영중(瑩仲), 호는 청계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김만근(金萬謹)이고, 아버지는 교위 김예범(金禮範)이며, 어머니는 군수 신명창(申命昌)의 딸이다. 김진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기묘명유(己卯名儒)들을 찾아 가르침을 배워 견문을 넓히고 학업에 정진하였다. 또한 음사(淫祠)나 귀신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다고 여겨 이를 멀리하자 무당이 그가 사는 마을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김진은 다섯 아들인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에게 “사람이 차라리 곧은 도(道)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무도하게 사는 것은 옳지 않으니, 너희들이 군자가 되어 죽는다면 나는 그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고, 만약 소인으로 산다면 그것을 죽은 것으로 볼 것이다”라고 훈계하였고, 모두 현달한 인물로 키워서 의성김씨 천전파를 열었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안동의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다.

[변천]

지금 있는 안동 의성김씨 종택은 임진왜란 당시 불타 없어졌던 것을 김성일이 재건한 것이라 전한다. 김성일이 명나라 사행길에 북경에서 그곳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를 그려다가 완성했기 때문에, 그 배치나 구조에서 독특한 점이 많다고 한다.

[형태]

‘ㅁ’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와 기타 부속채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巳’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행랑채에서 안뜰로 통하는 중문이 없어 외부 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교 사상의 남녀 유별, 내외 사상을 건물 구성에 반영하였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안채는 다른 ‘ㅁ’자형 평면과 달리 안방이 외부 쪽에 놓이고 커다란 대청이 이중으로 동향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별채처럼 외진 곳에 배치하여 내객(來客)이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사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지만 남자 주인의 거처방으로서의 기능은 약하다.

모채(안채와 사랑채)는 1.6m가량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바깥채보다 높다. 사랑채에 이어지는 부속채는 완전한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위층은 서고로서 사랑의 대청과 이어지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2층 구조는 다른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이다. 집의 외관은 가지런하게 수평으로 이어진 지붕 위에 네 개의 합각지붕으로 변화를 주어 아름답고 조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현황]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와 관리자는 김창균이다.

[의의와 평가]

건물은 간략한 양식으로 지었지만 보기 드문 주택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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