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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토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557
한자 城隍堂土城
영어음역 Seonghwangdang Toseong
영어의미역 Seonghwangdangto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 서낭당골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동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토성
건립시기/연도 신라~고려시대
높이 3m
둘레 약 3.6㎞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 서낭당골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산성.

[개설]

성황당 토성과 관련한 기록은 안동 지역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와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가지』에는 “성황당 토성은 부(府)의 동쪽 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에는 “성황당 토성 터는 지금 용상동 뒤 성황산에 있으며, 동편은 오로봉에 감싸고, 서남에는 낙동강이 둘러, 부를 방위함에 긴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성황당 토성의 위치와 역할을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2004년 안동대학교박물관과 안동시에 의해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건립경위]

성황당 토성의 축성 시기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토성 내부에 흩어져 있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으로 볼 때, 사용 시기는 신라~고려로 추정된다. 기와 조각의 문양은 태선문, 어골문, 집선문 등인데, 이 가운데 태선문 조각은 두께가 1.2㎝ 내외로 비교적 얇고 시기는 신라로 추정된다.

[위치]

성황당 토성이 위치한 용상동은 안동 시가지로 진입하는 동쪽 관문이다. 토성은 용상동 서낭당골과 치골을 둘러싸고 있으며, 해발은 최고 345m 정도이다. 서쪽의 안동 시가지와 낙동강, 남쪽의 반변천(半邊川)과 마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성의 형태는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인데, 크게 Ⅰ구역, Ⅱ구역, Ⅲ구역의 3개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각각의 위치는, Ⅰ구역은 서낭당골, Ⅱ구역은 서낭당골 뒤쪽에 있는 치골, Ⅲ구역은 Ⅰ구역의 동쪽이고, 길이는 1,800m, 1,550m, 685m 정도이다. 이들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4,035m 정도이지만 Ⅰ, Ⅱ구역이 150m, Ⅰ, Ⅲ구역이 250m를 각각 공유해서 전체 길이는 3,625m 정도이다. 높이는 3m 내외이다.

토성과 관련한 부대시설로는 동문지, 남문지, 남암문지, 북암문지, 건물지가 있고,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유물산포지가 있다. 토성의 형태는 지리적 입지상으로는 산성(山城), 형태상으로는 포곡식(包谷式), 재료상으로는 토성(土城), 축조 방법상으로는 내탁법(內托法)과 내외 협축법(內外夾築法)이 사용되었다. 곳곳에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흩어져 있다.

[현황]

공민왕의 몽진과 관련된 유적이기도 한 성황당 토성 내부는 현재 주거지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성벽은 능선 정상부를 따라 토축(土築)하였으나 대부분 유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성황당 토성은 동쪽에서 오는 적으로부터 안동을 방어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곳은 동쪽에서 안동 시가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안동향토지』의 “성황당 토성은 부(府)를 방위함에 긴요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특히 성황당 토성이 포항나루를 지키기 위한 기능을 지닌 산성이라면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성황당 토성 안에는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안동으로 몽진한 공민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공민당(恭愍堂)이 있어 민속학적으로도 의의가 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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