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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막동 고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525
한자 安幕洞古墳
영어음역 Anmakdong Gobun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in Anmak-dong
이칭/별칭 안막동 돌방무덤012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임세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굴식 돌방무덤
건립시기/연도 7세기 중후반
높이 3m
지름 10m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안동대학교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에 있던 통일신라 초기 고분.

[위치]

안동 시내에서 와룡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퇴계로)의 남쪽 비탈면 중턱에 있던 것을 발굴 후 안동대학교 동쪽 고시원 옆으로 옮겼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9년당시 안막동 고분이 있던 곳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아파트 건립에 따른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전에는 외관상 조선시대의 민묘로 추정되었으나 조사 결과 통일신라 초기의 무덤으로 도굴의 흔적이 없었다. 발굴 후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유구 전체를 안동대학교로 이전하였다.

[형태]

돌방 동쪽을 정면으로 하고 정면 오른쪽에 널길을 둔 굴식 돌방무덤이다. 봉토는 지름 약 10m, 높이 약 3m이고 진흙을 여러 겹 수평으로 다져 쌓은 판축법을 이용하였다. 널길은 동남쪽에 붙어 있는데 돌방을 향하여 오른쪽에 설치한 우널길형이다.

널길의 크기는 길이 190㎝, 폭 85㎝, 높이 90㎝이다. 천장에는 모두 4개의 뚜껑돌이 덮여 있는데 입구에서 약 30㎝는 뚜껑돌 없이 부정형의 산돌을 사용하여 진흙과 함께 막았고, 널길 바닥은 자갈을 깔았으며, 천장은 4개의 뚜껑돌을 연결하여 덮었다. 바닥 중간에 도장무늬가 찍힌 작은 긴목항아리 하나가 현실을 향하여 비스듬히 놓여 있다.

돌방은 길이 267㎝, 폭 240㎝, 높이 190㎝이다. 네 벽은 1m 정도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그 위로부터는 안으로 기울여 쌓고 네 모서리는 귀접이 형식으로 모를 죽여 돌방의 윗부분을 궁륭형으로 만들었다. 천장은 지름 180㎝, 두께 40㎝의 크고 둥그스름한 하나의 뚜껑돌로 덮었다. 이러한 벽석의 구조는 궁륭형 천장을 처리한 고구려 돌방무덤과도 비슷하다.

돌방 내부는 거의 시상(屍床)으로 꽉 차 있고 시상 외의 공간은 널길에서 바로 이어져 있는 좁은 바닥뿐이다. 이 바닥 안쪽에서 긴목항아리 1점이 출토되었다. 돌방 바닥은 널길에서 40㎝ 낮으며 아무것도 깔지 않은 흙바닥이다. 시상 윗면은 널길 바닥과 같은 높이이다.

시상은 모두 세 부분이다. 입구 맞은편 벽에 설치한 것이 가장 먼저 만든 시상이다. 관 고리가 양쪽 끝에 하나씩 나와 있어 목관 하나가 안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시상은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널길 오른쪽 벽면에 맞추어 설치하였다. 모두 세 사람 분의 유골이 확인되었는데 유골들의 머리 방향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엇갈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매장 풍습은 머리 방향을 중시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세 번째 시상은 두 번째 시상에 덧대어 설치하였는데 시상 바닥은 10㎝가량 낮고 큰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 올린 후 윗면은 작은 돌들을 큰 돌 틈에 끼워 넣어 면을 고른 후 시신을 안치하였다. 관은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시상은 처음 돌방을 조영할 때는 계획에 없다가 나중에 시상이 부족하여 억지로 추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유물]

유물은 돌방의 규모에 비하여 매우 적게 출토되었다. 널길과 돌방 바닥에서 도장무늬가 새겨진 입술 부분이 꺾인 토기와 긴 목 항아리가 각각 1점씩 출토되었고, 봉토 밑면에서 회색 짧은 목 항아리 1점이 출토되었다. 이 회색 짧은 목 항아리는 돌방을 완성하고 봉토를 쌓기 전에 의식을 치르면서 묻은 것으로 보이며, 널길 안에 있던 토기는 마지막 추가 매장을 끝내고 널길을 폐쇄하면서 묻은 제의용 토기로 보인다.

[현황]

현재 안동시 송천동 안동대학교에 있다. 고분의 방향은 원래의 방향과 같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안동에서 조성된 고분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널길 달린 돌방무덤이다. 출토된 토기의 형식으로 보아 조성 시기가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중후반으로 보이지만 안동 지역이 한때 고구려 영토에 속하였던 까닭에 귀접이 형식으로 모서리를 처리한 수법이나 천장의 형태 등 구조면에서 고구려적인 문화 요소가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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