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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서원 훼철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20
한자 金尙憲書院毁撤事件
영어의미역 Event of Gim Sangheon Private Confucian Academy Damage
이칭/별칭 청음서원 훼철사건(淸陰書院 毁撤事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원훼철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738년 5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738년 9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안동시
관련인물/단체 노론|남인|박문수|영조|류척기|어유룡

[정의]

1738년 안동 지역에서 노론들이 관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고 있던 김상헌서원을 남인들이 철거한 사건.

[발단]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병자호란 이후 관향(貫鄕)인 안동에서 은거하였다. 안동에서는 김상헌서원(金尙憲書院)을 건립하려는 노력이 일찍부터 있어 왔으나 남인들의 반대에 막혀 유허비만을 세워 두었다. 그러나 노론과 연결되거나 남인에서 노론으로 전향한 일부 선비들이 노론 강경파인 유척기(兪拓基)와 어유룡(魚有龍)이 경상감사와 안동부사로 부임하자 서원의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경과]

안동의 노론 전향자들이 서원 창설을 발의하자 영남 일대에 있던 노론 또는 노론계 유림들은 지원을 하고 나섰다. 1738년(영조 14) 5월 안동부 서쪽 사직단 부근에 서원이 건립되었다. 안동의 전통적인 지배층인 남인들은 김상헌서원 건립을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역에 노론 근거지를 확보함과 아울러 영남의 남인들을 진압하기 위한 노론 측의 정치적 공격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남인들은 준공 단계의 서원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철거하였다.

유척기와 어유룡이 남인 주도자를 체포하여 죄를 다스리자, 남인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부내에 모여 부사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결국 김상헌서원 훼철사건은 조정에까지 보고되어 서원 건립의 타당성과 재건립, 철거 주동자에 대한 처벌 문제 등을 중심으로 몇 달 동안 당파 간의 치열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결과]

박문수(朴文秀)를 중심으로 한 소론은 대체로 영남인을 두둔하였고, 노론은 서원 창설 주동자를 두둔하였다. 소론은 서원 건립의 본래 의도가 노론 세력의 부식에 있었으므로 영남 유생들이 불만을 갖고 철거한 일이기 때문에 창건 주동자를 처벌해야 하며, 철거된 서원을 다시 건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반면 노론은 완공 단계의 서원을 철거한 일은 선현에 대한 모독이며, 관령(官令)을 부정한 일이므로 철거 주동자를 처벌하고 다시 서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반된 주장에 대해 영조는 왕권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서원 철거 주동자 처리에서는 노론의 주장을, 서원의 재건립 문제에서는 소론의 의견을 절충하여 최종적인 처분을 내렸다. 결국 철거된 서원은 다시 세워지지 못하게 되었으며, 서원 철거를 주도하였던 유생들에 대해서는 경상도에서 엄형(嚴刑)에 처한 후에 멀리 귀양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1.27 [관련인물/단체], [발단], [경과] 인명 수정 <변경 전> 류척기 <변경 후> 유척기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11.27
송** 본문의 "관련인물/단체", "발단", "경과"의 내용중
"류척기"는 "유척기" 표기되어야 하는것 아닌지요

유척기는(1691년 ~ 1767년)으로 본관이 기계이고 호는 지수재(知守齋), 시호는 문익(文翼)...
201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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