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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392
한자 豪族
영어음역 Hojok
영어의미역 Local Gent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호동

[정의]

신라 말 고려 초에 안동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개설]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장군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후삼국 통합 전쟁은 독자적인 지방 세력인 호족을 무력이나 회유의 방법으로 흡수하는 과정이었다.

[성장배경]

930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안동의 고창 전투에서 후삼국 주도권 다툼을 벌일 때 안동 지역에는 김선평·권행·장길 등의 호족 세력이 존재하였다. 세 명의 호족과 관련하여 고창 전투의 전말을 전하는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1, 태조 13년 정월조에 고려 태조 왕건고창 전투 승리 후에 “고창성주 김선평을 대광으로 삼고 권행과 장길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고을을 승격시켜 안동부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후기 유학자 이색안동권씨의 유래를 설명한 기록에 “권씨는 김행으로부터 시작하는 신라의 대성(大姓)이었다. 김행은 복주를 지켰는데, 태조가 신라를 치려고 복주에 왔을 때 김행이 천명이 그에게 돌아가는 걸 알고 그에게 읍을 들어 항복하였다. 태조가 기뻐서 권이라고 사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두 기록으로 미루어 김선평은 성주라고 불리는 호족, 김행, 즉 권행은 진골 출신의 김씨로 고창군 태수로 파견된 지방관으로 보기도 한다.

안동 지역은 북서쪽으로 소백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동쪽으로 태백산맥의 한 갈래인 낙동정맥이 이어지며,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내륙 분지이다. 이러한 고립된 지형 조건 때문에 안동 지역 호족들은 일찍이 독립적·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후삼국 쟁패전으로 유명한 공산 전투나 일리천 전투의 경우 태조 왕건과 관련된 지명·전설 등이 거의 대부분인 데 비하여 고창 전투의 경우 안동의 호족인 삼태사(三太師: 김선평·권행·장길)와 관련된 전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안동 호족의 실상]

고려 태조 왕건은 자신을 도와 고창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창성주 김선평을 대광에 제수하고, 권행과 장길을 각각 대상에 제수하여 삼한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그들의 본관인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세 사람은 안동김씨·안동권씨·안동장씨의 시조가 되어 안동 태사묘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지면서 안동의 지방 행정을 장악하였고, 고려왕조의 진전에 따라 재지이족(在地吏族)과 상경관인으로 분화되어 갔다.

삼태사는 근기 지방의 호족처럼 고려에 귀순함과 동시에 곧 상경하여 재경관인이 되지 않고 그대로 토착하면서 삼한공신이란 칭호와 안동의 고급 향직을 받아 본관을 지배하는 데 만족하였고, 이는 그들의 후예인 안동김씨안동권씨의 중앙 진출이 늦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삼태사의 묘가 본관지에 있다는 사실과, 고려 중기에 이르러서야 재경관인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 개경과 멀리 떨어져 있는 영남 지방의 다른 호족들도 대개 삼태사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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