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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242
한자 汾川里
영어음역 Buncheon-ri
이칭/별칭 부내,분천,분강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59㎢
총인구(남, 여) 32명(남자 16명, 여자 16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21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유래]

고려 말에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지낸 이헌(李軒)이 어지러워지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벼슬을 버린 뒤 고향 영천을 떠나 돌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분강(汾江) 굽이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는데, 마을을 둘러보니 낙동강 물이 맑게 흐르므로 부내라 하였다. 분천(汾川)은 부내의 한자식 표기이다. 분강촌(汾江村)이라고도 하였다.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도산서원 앞을 거쳐 부내의 외곽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을 낙강이라 하는데, 옛날 분강촌 앞에서 강물이 두 줄기로 갈라졌으므로 분강·분수(分水), 분천(分川)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이헌이 약 600년 전에 입향한 뒤로 이현보를 비롯하여 수많은 인물이 대를 이어 배출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의동면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천동이 되고 안동군 도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은 넓은 들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 낙동강이 굽이져 흐른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분강 기슭과 강 가운데는 농암(聾巖)과 귀먹바위[耳塞巖]가 있는데 지금도 안동댐 수위가 낮아지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농암 관련하여서는 『농암집(聾巖集)』의 「애일당중신기(愛日堂重新記)」를 보면 바위의 유래가 잘 설명되어 있다.

“이 바위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언문에는 귀먹바위로 전해지고 있었다. 바위 앞을 흐르는 큰 강의 빠른 물살 소리와 서로 향응하여 사람들의 귀를 막아버리니, 정녕 귀먹바위의 이름은 이로써 유래한 것은 아닐까. 이런 까닭으로 이 바위를 농암이라 하고 늙은이가 자호로 삼았다.”

점석(簟石)은 분강 가운데 있는 바위로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으나 댐 수위가 낮아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가 벼슬을 버리고 부내에 살면서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비롯하여 교분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배를 띄우고 노닐며 감상한 곳이다. 『농암집』의 「애일당중신기」에 바위의 명칭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 물굽이(낙동강)가 농암 아래에 이르면 넓고 가득하게 퍼지고 쌓여 조그만 배를 띄우고 노를 저을 수 있게 되는데, 이를 분강이라 한다. 강 가운데는 반석이 있어 마치 비단 자리와 같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점석이라 한다.”

[현황]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5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21세대에 32명(남자 16명, 여자 1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76년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마을이 수몰됨에 따라 현재 송티[松峙, 일명 송티재·송현(松峴)]와 넘티[일명 넙티·광현(廣峴)] 등 두 개의 자연마을만 남아 있어 거주 인구가 매우 적다.

송티는 600여 년 전부터 예안시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넘다 쉬던 고개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넘티는 부내에서 온혜리로 넘어가던 고개로, 400년 전 이현보이황이 술을 한 잔 마시고 작별한 곳이다. 당시는 광티라고 하였으며, 나무꾼이 나무 하러 가면서 이 너머로 가자고 하다가 넘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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