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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176
한자 九松里
영어음역 Gusong-ri
이칭/별칭 구단(九丹)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5.80㎢
총인구(남, 여) 127명(남자 66명, 여자 6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68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옛날 윤씨들이 들어와서 살았는데 윤씨 중에 벼슬한 사람이 많아서 홍패가 아홉이라는 뜻으로 구단(九丹)이라 하였고, 또한 마을에 솔밭이 많았으므로 구단의 ‘구’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 구송(九松)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지례마을은 구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지령(芝嶺) 윤의정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예의를 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성지(宣城誌)』 시거조(始居條)에는 지례마을의 내력과 관련하여 “직장 윤관(尹寬, 1508~?)이 변효검(卞孝儉)의 사위가 되어 지례마을에 정착하면서 큰집을 지어 맏아들인 생원 윤의정(尹義貞, 1525~1587)을 조곡으로 옮겨 살게 하였고 직장 류우춘(柳遇春)을 이웃하게 하여, 그 자손들이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데 속명은 내동(來洞)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례마을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제자로 효성이 지극했던 매재(昧齋) 권백린(權伯麟, 1536~1587)이 살던 마을로, 부모상을 잇달아 당하여 무덤 곁에 막을 얽고 3년을 슬퍼하니 사람들이 그 효성을 갸륵히 여겨 막을 얽은 골짜기를 빈소동이라 일컬었다고 전해진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말에 안동군 예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안면의 지례·구단·우보·광현, 읍내면의 교촌동, 북면의 신동 각 일부가 통합되어 구송리로 개편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뒤로 낮은 산이 솟아 있고, 앞에 펼쳐진 들에는 역계천이 흐르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현황]

녹전면의 동쪽에 위치한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5.80㎢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68세대에 127명(남자 66명, 여자 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지례·자시람·광현·구단·우보·아르굴댕 등이 있다. 동쪽으로 도산면, 서쪽으로 죽송리·사신리, 남쪽으로 서삼리, 북쪽으로 갈현리와 닿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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