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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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가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뒤 마을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꾸어온 문화가 쭉정이 농촌문화가 아니라 많은 도시인들이 찾아와서 배우고 체험할 풍부한 문화자산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농사짓는 방법에서부터 두부 만드는 방법, 풍물을 치고 마을제사를 지내는 방법, 짚신을 만드는 법 등, 그 동안 자신들이 묵묵히 일상생활로 영위해 온 문화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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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서 공민왕의 딸과 관련되어 몇 년마다 한 번씩 성대하게 벌였던 공동체 신앙의 한 형태. 가송별신굿은 일반적으로 정성을 들이는 동제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갖는 마을굿으로, 가송별신제라고도 한다. 매년, 3년, 5년, 7년, 10년 간격으로 벌어지며 무당집단과 마을공동체가 함께 벌이는 축제적 대동굿이라 할 수 있다. 청량산과 낙동강 자락에 자리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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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는 천옥과 같은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곳이다.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마을의 주요 생산물은 담배와 고추이다. 마을 주민들의 성씨를 보면 영양남씨와 봉화금씨가 가장 많고 밀양박씨, 진성이씨, 평산신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날 가송에서 행하던 마을굿의 사설에 “송씨(宋氏) 터전에 엄씨(嚴氏) 가족에 금씨(琴氏) 제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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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안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안동은 안동도독부, 안동도호부, 복주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수령이 파견되던 주읍으로서 최고 14개의 속읍을 거느린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중심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안동은 고창군(古昌郡)으로 직녕현(直寧縣), 일계현(日谿縣), 고구현(高丘縣)의 3읍을 영현으로 거느렸다. 백두대간의 준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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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년(태조 13) 고려 태조 왕건은 고창(지금의 안동 지역)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겨루어 승리함으로써 그 여세를 몰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태조는 고창군(古昌郡)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키고, 전쟁에 적극 협력한 안동의 호족 3인에게 태사의 벼슬을 내렸다. 1281년(충렬왕 7) 고려군과 몽골군이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할 때 충렬왕은 안동에 머물면서 전황을 파악하였다. 충렬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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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서 사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동제당. 공민당은 노국공주 혹은 여랑을 모신 동제당이다. 용상동 주민들이 모셔오던 서낭당이었으나 평화사 사불의 현몽에 의해 공민당으로 개칭되었다. ‘여랑당’·‘용상동제당’이라고도 불린다. 용상파출소 건너편의 큰 골목길을 따라 200m 정도 가면 평화사로 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700m 정도 가면 오른쪽에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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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12월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이 경상북도 안동으로 피난한 사건. 원명 교체의 격변기인 고려 후기에는 북로남왜(北虜南倭)로 불릴 만큼 홍건적과 왜구가 창궐하였다. 홍건적은 원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구성된 반란군으로 공민왕 즉위 무렵에 조직되었다. 만주로 진출하여 랴오양[遼陽]을 점령하였다가 원나라 군대에게 쫓기게 된 홍건적은 퇴로(退路)를 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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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공민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앙 형태. 공민왕 가족신 신앙은 안동에 몽진을 온 공민왕을 비롯하여 공민왕 가족들을 신격으로 모시는 안동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신앙 형태이다. 안동 지역이 겪은 역사적 사건 가운데 민속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고려 말에 발생했던 공민왕 몽진인 것이다. ‘공민왕가계신앙’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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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다리밟기는 본래 안동부에서 성안과 성밖으로 패를 나누어 부녀자들이 놀던 대동놀이이다. 가송리에서는 이 놋다리밟기의 의미가 더욱 깊은데, 마을에서 모시는 신과 그 신의 아버지가 가송까지 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놋다리밟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민왕의 몽진과 노국공주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마치 자신이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건네주고 있는 듯한 판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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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2차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고장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가송리와 주변 지역에서는 공민왕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공민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신앙적 신념으로 전화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검토해 보면 공민왕이 실제 이곳에 왔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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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에서 공민왕의 싸움터 오마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은 고려 제31대 왕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익당(益當)이다. 왕위에 오른 뒤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다. 또한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최만생(崔萬生)과 홍윤(洪倫)에게 살해되었다.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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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놋다리밟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놋다리밟기는 음력 정월 보름밤에 부녀자들이 한 줄로 서서 허리를 굽히고 앞사람의 허리를 안아 다리를 만들면 공주로 뽑힌 여자가 노래에 맞추어 등을 밟고 지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와밟기·놋다리·놋다리놀이·놋자리밟기라 부르기도 한다. 1980년대에 수집·채록되어 1981년 일조각에서 출간한 『한국구비전설의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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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있는 봉수 터. 『문화유적총람』과 『안동지역전통문화유적보존개발계획』에 “광평리 봉수지(廣坪里 烽燧址)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 당시, 개목산성(開目山城)에 피신하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당시 지방 주민이 성 밖인 이곳 광평리에서 지키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알리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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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문화의 전승에는 전승 매체와 방식에 따라 구비전승·행위전승·물질전승 등이 있다. 구비전승은 행위나 물질이 아니라 말로 전승되는 문화를 뜻한다. 말로 전승되는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비문학이다. 그러나 구비전승 이전에 말로 소통되는 경험담·목격담·풍문 등의 구술 정보가 있는가 하면, 구비전승은 되지만 문학적 형상성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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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령 전설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 서낭신을 위한 동제 등은 모두 서낭신과 관련해서 만들어진 하회마을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달리 말하면 하회마을에서는 지금도 서낭신과 관련한 전설과 민속신앙이 풍부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셈이다. 서낭신과 관련하여 형성된 문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신만을 모시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 사람들은 서낭당과 함께 국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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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은 2004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되었다. 이후 사업비를 지원 받아 체험관을 짓고 산나물채취, 래프팅, 한지공예, 안동식혜 만들기, 감자송편만들기, 농사체험, 화전놀이, 투호 등의 민속놀이, 풍물놀이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체험프로그램들은 소극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직접 가송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모범적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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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여성들만의 전통놀이. 금소동 지애밟기는 부녀자들만이 꼬깨를 만들어 싸움의 승패를 가려서 여성대장군의 위력을 과시하는 여성들의 용감무쌍한 정신과 자신감이 잘 나타나 있는 놀이이다. 지애란 기왓장의 옛말로서, 부녀자들이 상체를 구부려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일렬로 늘어 선 모습이 마치 기와처럼 보여 부르는 말이다. 또한 그 위를 밟고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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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기와밟기를 할 때에 불렀던 유희요의 하나. 기와밟기는 놋다리밟기의 일환으로 하는 놀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놀이이다. 놋다리밟기는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 공민왕 몽진시 안동의 소야천에 다다랐을 때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왕후인 노국공주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기와밟기 노래」는 기와밟기를 할 때에 여성들이 늠름한 남성을 맞이하면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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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와 태자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과 싸우던 공민왕의 군대는 홍건적이 주둔하고 있던 도랑 위쪽에 석회 가루를 풀었다. 홍건적은 위에서 내려오는 하얀 물을 쌀뜨물로 착각하여 그만큼 공민왕의 군대가 많다고 여겨 겁에 질려 부리나케 그곳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때 불티가 날아가듯 빠르게 도망갔다 하여 부티재[불티골]로 불리게 되었다. 부티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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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는 맑고 깨끗한 강물과 여기저기 우뚝 솟은 바위들 그리고 병풍을 연상케 하는 절벽의 웅장함 등 이 모든 것은 가송리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하는 천옥의 생활조건이다. 청량산 인근의 경치는 거듭 얘기하지 않아도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송의 풍광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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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노리는 모운사(暮雲寺)라는 절이 있어 ‘모노골’, ‘모놋골’, ‘노곡’이라 부르다가 노리로 정착되었다. 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몽진하여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왕비인 노국공주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여 모로곡(慕魯谷)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서선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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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안동놋다리밟기의 전승과 보급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 안동놋다리밟기는 안동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여성들만의 민속놀이로 ‘놋다리놀이’ 또는 ‘기와밟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후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노국공주를 데리고 안동 지역으로 피난을 와 개울을 건널 때 마을의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다리를 놓았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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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은 어떻게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을까? 2009년 현재도 농촌진흥청에서는 농가소득을 높여 주기 위한 일환으로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하기 위해 전국의 여러 농촌마을을 답사하고 있으며, 또한 각 마을로 공문을 내려 보내 꾸준히 참여 여부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송리의 경우 안동시청 직원이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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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마을인 단사(丹沙)와 면천(綿川)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 단천(丹川)이 되었다. 단사는 마을 뒤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인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면천은 기후가 항상 온화하여 목화 재배지로 적합한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 예안면과 의동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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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신라시대 때 큰 사찰인 도솔사가 있어서 한도솔, 한두실이라 하였다가 대도솔, 대두실이 되었고, 고려 공민왕 때 개목산성을 쌓고 이곳에 소를 두었다고 하여 대두소라 하였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대두서가 되었다. 대두서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중 오동정은 마을 뒷산에 있는 오동나무에 여러 해 동안 기이한 새가 찾아와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 가음곡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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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촌동과 천곡동을 병합하면서 원촌동의 ‘원’자와 천곡동의 ‘천’자를 따서 원천리라 하였다. 퇴계 이황의 8세손인 이귀성(李龜星)이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진성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 이원록)와 그의 형인 이원조를 배출함으로써 명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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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동부의 동쪽에 있어서 동부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쪽에 있던 지역으로 용흥리(龍興里)·운흥리(雲興里)·입석리(立石里)·율곡리(栗谷里)·신정리(新亭里)·원북리(院北里) 등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문내동(東門內洞)·운흥리·서문내동·천리(泉里)·신세리(新世里)·용하리 등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부동이 되었다.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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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 당제는 다른 마을과 달리 제의 절차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당주가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면을 보여준다. 당주는 가송마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봉화금씨들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데, 그만큼 공민왕이나 공주당과의 인연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금용극 옹이 기억하는 당주로는 약 100여 년 전의 ‘운동어른’과 그 다음에 당주를 맡은 ‘걸노인’, 그리고 ‘주실어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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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촌체험은 크게 자연경관을 활용한 래프팅과 천렵, 산책 등과 농촌생활을 활용한 농사체험 및 음식 만들기 등, 그리고 전통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농촌생활과 전통문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통문화 체험은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가르쳐 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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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의 부인당(일명 공주당)은 약 3.3㎡ 남짓한 기와건물로, 당 안에는 갖가지 옷가지가 화려하게 걸려 있고 성황대도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것은 부인당에서 모시는 신이 노국공주인가, 아니면 공민왕과 노국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가 하는 점인데, 이는 공주당과 부인당이라는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어 정확한 신의 정체를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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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에 있는 고개.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암행 중 이곳에 이르러 점심식사를 부탁했는데 그 해는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지 못하여 풋보리를 잘라 드리니 왕이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보릿고개로군’하여 보리고개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보리고개를 맥현(麥峴)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변에는 갓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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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안동은 조선시대에 유교문화가 강성했던 지역으로 반촌과 문중 조직, 서원 등을 통해서 양반문화와 선비문화가 뿌리를 깊이 내린 곳이다. 민속은 민촌의 마을 공동체와 그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자생적인 전통문화이자 민주적인 생산문화로서, 양반들의 유교문화와 맞서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유교문화가 발전한 만큼 상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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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민예적(民藝的)인 그림. 민화는 장식적 목적에 의해 제작되어진 실용적인 그림으로 조선 초기까지는 주로 상층의 문화로 존재하던 것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하층에까지 확산되면서 대중화한 그림이다.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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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흥해(興海). 초명은 배환(裵紈). 고려태사(高麗太師) 배현경(裵玄慶)의 8세손이다. 고조부는 자문보승(紫門保勝)인 배유손(裵裕孫), 증조부는 전리판서(典理判書)인 배영지(裵榮至), 할아버지는 공민왕 때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진 배전(裵詮), 아버지는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희정(權希正)의 딸이다. 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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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무당이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 별신굿은 촌락 공동체에서 매년 지내는 동제와는 달리 특별하게 몇 년 터울로 벌어지는 별제(別祭)이다. 이를 ‘큰굿’·‘대제’ 등이라고도 한다. 마을 공동으로 마을의 수호신을 제사하는 점에서 동제(洞祭)와 유사하나, 동제는 동민 중에서 뽑은 제관이 제사를 주관하는 데 비하여 별신제는 무당이 주재하는 점이 다르다. 굿을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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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불교라는 말은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이후이다. 기원 전후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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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안동은 동쪽과 동북쪽에 태백산맥을 접하고 북으로는 소백산맥에 닿아 있는, 태백과 소백이 갈라지는 곳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안동의 산지는 시가지 남동쪽으로 길안천을 끼고 우뚝 솟은 길안면, 시가지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북후면, 북쪽에 위치한 녹전면 등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정기를 받은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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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에는 공민왕의 딸을 모신 부인당(일명 공주당), 산신각, 거리당(일명 동신목), 독당(독산에 위치한 개인당) 등 총 4개의 마을 제당이 있다. 부인당과 산신당, 거리당은 일련의 세트를 이루고 있고, 독당은 개인당이면서도 마을의 부인당 서낭신을 따로 모신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산신각은 고대로부터 모셔 오던 산신 전통이 마을 공동체 신앙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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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서 영호루 현판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은 고려 제31대 왕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익당(益當)이다. 왕위에 오른 뒤 중국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다.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나중에는 정치를 잘못하여 최만생(崔萬生)과 홍윤(洪倫)에게 살해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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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신화·전설·민담을 총칭해서 설화라고 한다. 입을 통해 전승되는 문학으로 구비문학의 범주에 속하며, 쉬운 표현으로 ‘옛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안동 지역은 이야기의 고장이라고 할 만큼 많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설화를 수집한 자료를 시·군별로 비교해 볼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작품의 설화가 안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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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기산성 밑에 있는 마을이어서 성곡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동부에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상동(龍上洞)에 편입되었다.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용상동 일부를 분리하여 성곡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성곡동이 되었다. 성곡동 위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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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산성. 성황당 토성과 관련한 기록은 안동 지역 향토지인 『영가지(永嘉誌)』와 『안동향토지(安東鄕土誌)』에서 찾을 수 있다. 『영가지』에는 “성황당 토성은 부(府)의 동쪽 5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안동향토지』에는 “성황당 토성 터는 지금 용상동 뒤 성황산에 있으며, 동편은 오로봉에 감싸고, 서남에는 낙동강이 둘러, 부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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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양식이나 생활행위.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반복해서 거행되는 주기 전승의 의례적 행위로서 민간신앙·민속놀이·구비전승·의식주 등 전통문화가 두루 포함된 복합적인 문화 현상이다.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반복해서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주기성(週期性)을 주 특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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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호는 죽석(竹石).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낸 손방(孫滂)이다. 본래의 성은 순씨(筍氏)였으나 현종의 이름을 휘하기 위해 5대조 손응(孫凝) 때 손씨(孫氏)로 고쳤다. 손홍량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충선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충숙왕과 충혜왕 양조에 벼슬하고 1348년(충목왕 4) 첨의평리(僉議評理)로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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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비. 손홍량은 호는 죽석(竹石)이고,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시호는 정평(靖平)으로 일직손씨의 시조이다. 고려 충선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1349년(충정왕 1) 추성보절좌리공신이 되고 판삼사사에 올랐으며,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왕에게서 ‘일직(一直)한 사람’이란 칭찬과 함께 궤장(机杖)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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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삼국시대 봉수 터. 송리리 봉수지(松里里 烽燧址)는 일직면 송리1리 동북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솔마골과 향교골 사이에 있다. 야산 정상부에는 송리산성이 있는데, 봉수대가 위치한 곳은 산성의 동남쪽 끝 해발도고 약 293m 지점이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봉수대는 편평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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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 앞 들 가운데 납(원숭이의 옛말)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납돌 또는 신석(申石)이라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피난을 가던 도중 길이 없어서 말 위에서 내린 곳이라 하여 낙들[落坪]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약 500년 전에 원씨(元氏)가 처음 마을에 들어와 이름을 납들로 바꾸어 불렀다고도 한다. 1896년 지방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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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있는 고려시대 봉수 터. 신석리 봉수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 왔을 때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1999년 발간된 『안동시사』에 신석리 봉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남산봉수는 동쪽으로 신석산 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신석산 봉수가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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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관물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이 학문을 강론하던 정자이다. 권호문의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이다. 권육(權稑)의 아들로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권호문의 6대조 권인(權靷)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송야(松夜)에 은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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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안동 태사묘에 있는 고려시대 삼공신 관련 유물.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은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를 모신 사당인 태사묘(太師廟) 혹은 삼공신 묘(三功臣廟)에 보존되어 온 고려시대의 일괄 유물이다. 삼태사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을 가리키는데, 개별 유물이 삼공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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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행하는 여성의 집단 놀이. 놋다리밟기는 ‘지애밟기’, ‘기와밟기’, ‘논따리밟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놋다리 밟기라는 대표 명칭 속에는 다양한 놀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꼬개싸움은 아주 격렬한 편싸움이었다. 놋다리를 놋쇠처럼 굳은 다리 또는 동교(銅橋)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안동에서는 정월 한 달 동안 일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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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년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1018년(현종 9) 경상북도 경주에 설치하여 사(使: 정3품)·부사(정4품)·판관(判官: 정6품) 등을 두었고 1030년 경주가 동경(東京)으로 승격된 이후 대도호부를 안동으로 옮겼다. 충렬왕 때는 복주목(福州牧)으로 격하되었으나 1361년(공민왕 10)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을 피하여 이곳에 머물렀을 때 관민이 왕을 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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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경상도의 도역(道域)은 산천을 경계로 한 합리적인 도제 확립의 필요에 따라 1413년(태종 13) 상주목(尙州牧) 소속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귀속시킴으로써 죽령을 북계(北界)로 하고 지리산을 서계(西界)로 하여 설정되었다. 감영은 개국초 경주에 있었으나 1407년(태종 7)경 상주로 옮겼다. 또한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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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수령 68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암수딴그루이며, 봄에 피는 꽃은 3㎜ 내외로 관찰하기는 힘들다. 중국에서는 압각수(鴨脚樹)라고 하는데, 잎이 오리발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학명 가운데 종명 biloba는 ‘두 갈래로 갈라진 잎’을 뜻한다. 은행나무의 수꽃가루는 유일하게 편모를 달고 있어서 스스로 몸을 이동시킬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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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시. 경상북도 안동시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시조는 까치, 시목은 은행나무, 시화는 매화이다. 시목인 은행나무는 시민의 번영과 전승, 협동, 총화를 상징하며 시화인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로 고결함이 군자와 같아 웅부 안동시의 얼과 통한다. 안동시의 자매도시로는 전라북도 전주시, 충청남도 공주시, 경기도 이천시, 경상남도 진주시, 서울특별시 송파구,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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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조선 중기 사묘. 안동 태사묘는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삼태사, 즉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건립 당시에는 삼공신 묘(三功臣廟)라 하였는데, 1613년(광해군 5) 중건과 더불어 이름을 태사묘(太師廟)라 개칭하였다. 93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고려 태조와 후백제의 견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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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안동향교에서 지내는 제사. 석선제는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 文宣王)를 비롯한 4성(四聖) 10철(十哲) 72현(七十二賢)을 제사지내는 의식이다. 석전이라는 이름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채소만 놓고 지냈으나 뒤에는 고기·과일 등 풍성한 제물을 마련하여 지냈다. 안동향교에서는 봄(음력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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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안막동은 자연마을인 안막골(일명 안막곡)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7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며질리를 통합하여 안막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을 일본식 지명인 안막정(安幕町)·명륜1정목(明倫1丁目)·명륜2정목으로 분리하였고,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안막정이 안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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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신라~고려시대의 포곡식 산성. 양장성(羊腸城)의 초축 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출토된 기와편의 성격에서 고려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양을 길렀다 하여 ‘양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공민왕 몽진 시 대감이 군사를 거느리고 지켰다는 전설이 전한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안동 지역 읍지인 『영가지(永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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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상북도 안동의 역사와 문화. 경상북도 북부 중앙,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안동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풍산읍 마애리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유적과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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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동 지역의 역로에 세워졌던 국영 교통, 통신 및 숙박시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 및 외국 사신의 왕래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한 기관으로 신라시대인 487년(소지왕 9)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대에 더욱 구체화 되어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이 만들어졌다. 1390년(공양왕 2) 중앙의 외방 지역 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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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곡류와 솔잎을 발효시켜 증류한 가양주(家釀酒). 영가주(永嘉酒)는 안동 지역에서 전하는 전통적인 소주 가운데 하나로, 명칭은 안동 지역의 옛 이름인 ‘영가군(永嘉郡)’에서 따 왔다. 현재는 안동 소재의 안동소주일품주식회사에서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주정 도수는 40%이다. 안동에 소주가 전해진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보인다. 1281년(충렬왕 7) 몽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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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정하동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영호루가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때의 일이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남쪽으로 몽진하여 경상북도 안동에 이르게 되었다. 공민왕은 자주 영호루에 나아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군령을 내렸으며,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물가에서 활을 쏘며 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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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고구려 때 매곡현(梅谷縣)이었고, 신라 때는 선곡현(善谷縣)으로 내령군(奈靈郡)의 영현(領縣)이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길주(吉州)에 복속되어 예안현이 되었고, 1376년(우왕 2) 다시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얼마 뒤에 주(州)로 승격하였다. 공민왕 때 예안 동쪽에 있는 의인현(宜仁縣)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예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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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공주를 부인으로 칭하며 모시는 가송리에서는 예전에 성대한 별신굿을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약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3년에 한 번씩 정월 초이튿날과 초사흗날에 입칠봉을 넘어서 산성마을에 있는 공민왕당에 가서 세배를 갔다. 공민왕당 세배는 아무리 눈이 많이 쌓이고 날씨가 사나워도 빠뜨리거나 미루는 일이 없었는데, 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의 서낭대를 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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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에 있는 법정리. 약 360년 전 남복수(南復壽)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뒷산에 오동나무가 무성하였는데, 까치들이 오동나무 가지마다 둥지를 틀어 까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남복수가 호를 오음(梧陰)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오상(梧峠)이라 한 데서 오산리가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말에 안동부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북후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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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있는 진주강씨 집성촌. 마을 북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 단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옹전(瓮田),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하였는데, 이후 마을에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고 하여 ‘옹(瓮)’자와 ‘천(泉)’자를 붙여 옹천(瓮泉)이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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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왕모당은 원천리 내살미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동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를 ‘내살미왕모당’·‘공민왕어머니당’ 등으로도 일컫는다. 왕모당은 왕모산성을 기반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왕모산성에는 1361년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을 때 축성했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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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와 예안면 삼계리에 걸쳐 있는 산. 1361년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곳에 피난하였다고 하여 왕모산(王母山)이라 한다. 전설에 따르면 홍건적이 이곳까지 진격하여 공민왕이 위태롭게 되자 백마를 탄 늙은 장수가 왕을 구하고 지렁이로 변했다고 한다. 높이는 648.2m이다. 왕모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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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고려시대 테뫼식 산성. 왕모산성(王母山城)은 1361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왔을 때 주민들이 축성한 성으로, 명칭은 공민왕의 모친이 이곳에 피난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예안 지역 지방지(地方誌)인 『선성지(宣城誌)』 고적조(古蹟條)에 “왕모성(王母城)은 천사(川沙) 뒷봉우리에 있다. 돌로 성을 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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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용상동의 옛 이름은 마평(馬坪)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에 피난 왔을 때 기산(岐山)에 성을 쌓고 이곳에서 말을 먹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뜰·맛들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 전기의 재상 맹사성(孟思誠)이 안동부사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비만 오면 낙동강 가의 제방이 유실되었다. 하루는 마씨(馬氏) 성을 가진 사람의 꿈에 청룡(靑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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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용상동에서 여랑당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은 고려 제31대 왕으로 이름은 전(顓), 호는 이재(怡齋)·익당(益當)이다. 왕위에 오른 뒤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다. 원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는 등 국위를 떨쳤으나 후에 최만생(崔萬生)과 홍윤(洪倫)에게 살해되었다. 1994년 경상북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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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서낭당들이 매년 정월 대보름날 한 차례씩 제사를 올리는 데 비해 가송리에서는 정월 대보름과 단오에 마을굿을 한다. 그런데 정월 대보름 마을굿 때는 산성에 세배를 다녀오고 신내림을 받지만 단오 때에는 산성에 가는 일이 없고 신내림도 받지 않으며 간단히 지낸다. 가송 사람들은 아주 옛날에는 매년, 다음에 2년 터울, 그리고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3년마다 한 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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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1947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기동(安奇洞) 일부를 분할하여 안동읍 운안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운안동이 되었다. 1997년 행정동인 평화동(平和洞) 관할이 되었다. 고개로 열리재, 골짜기로 장구석 등이 있다. 1983~1984년, 1986~1987년에 택지가 조성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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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에 있는 공원. 웅부공원은 본래 고려 공민왕 때 안동이 현재의 도 단위 격인 대도호부로 승격됨에 따라 그 대도호부가 있던 자리이자, 안동군청 청사가 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시는 1995년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어 안동군청이 헐리면서 공민왕(恭愍王)의 필적이라 전해지는 ‘안동웅부’ 현판을 떼어 낸 후, 안동대도호부와 안동군청이 있던 역사적인 터를 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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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원촌동·천곡동·이곡리를 통합하면서 원촌동과 천곡동에서 ‘원’자와 ‘천’자를 따 원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내살미는 원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흐르는 낙동강이 수려하고 넓은 강변에 쌓인 모래가 정결하고 광채가 아름답다 하여 예로부터 천사미라고 하였으며, 천사·천곡이라고도 하였다. 원촌(일명 원원천(原遠川)·원원대(遠遠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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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가루 반죽을 쪄서 말린 다음 튀겨 꿀을 바른 뒤 고물을 묻혀낸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 음식. 유과(油果)는 한국의 전통적인 과자류의 총칭으로 다른 말로는 유밀과(油密果)라고도 한다. 그러나 안동에서는 특히 기름에 튀겨 부풀린 과자에 고물을 묻힌 것을 유과라 부른다. 이러한 과자는 지역에 따라 산자, 강정, 유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 쓰인 안동장씨(安東張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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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人文地理)는 지표 위에서 일어나는 인간 활동과 관련된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특정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산업, 취락 등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 중 인간의 삶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양상들을 포함한다. 안동시는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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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 있는 진주강씨 동성마을. 옹천의 5일장이 서는 곳이라고 하여 장기(場基)라고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 입향조 강시(姜蓍)가 성균시에 급제하여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한 인연으로 강시의 아들 5형제가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사직하고 안동과 봉화(지금의 봉화군 법전면) 등지로 낙향하였다. 장남 강회백(姜淮伯)은 안동 북후면에 자리를 잡았고, 강회백의 아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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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지로, 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와 다양한 건축 문화유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곳이다. 과거 역사와 문화를 보면, 경상북도는 크게 대구를 중심으로 성주문화권,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주문화권, 안동을 중심으로 한 안동문화권로 나뉜다. 안동문화권은 불교문화 위에 유교 문화를 꽃피운 곳으로, 안동의 유교 문화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제 모습을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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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지도 이념이었던 화엄사상이나, 조선시대의 지도 이념이었던 성리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같은 당대의 새 사상을 생활 속에서 실험하고 튼튼한 근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전통 사회가 무너지자 이를 온몸으로 지키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새 시대의 혁신 사상을 앞장서서 실험하였던 곳이기도 하였다. B.C. 57년(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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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동 지역에 정착한 문신이자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겸(思謙), 호는 설헌(雪軒). 시호는 문극(文克). 할아버지는 찬성사 정해(鄭瑎),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정책(鄭㥽),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문영공(文英公) 김순(金恂)의 딸이다. 외조부는 상락군(上洛君)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이다. 정오와 정포(鄭誧) 형제는 어머니의 고향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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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충문. 정충문(靖忠門)은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 1287~1379)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이다. 손홍량은 본관은 일직(一直)이고, 호는 죽석(竹石)이다. 본성(本姓)은 순(荀)이었으나, 현종의 이름과 같아 5대조 손응(孫凝) 때 손(孫)이라는 성씨를 하사받은 일직손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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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모든 민족에게서 보이는 문화 현상이다. 종교는 정치·경제·사상·예술·과학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가치 체계로서 기능해 왔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상북도 안동시는 의상의 화엄종과 퇴계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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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자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진성이씨는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脩)가 고려 말 마애촌에 입향한 후 이자수의 증손 이계양(李繼陽)이 크게 현달하여 벌족을 이루면서 도산면 일대를 중심으로 세거해 온 가문이다. 이석은 누대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온 호족의 후예이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의사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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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 때 광산김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로, 임하면의 내앞[川前]처럼 마을 앞으로 낙동강이 흘러 내앞·천전(川前)·천전동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말 예안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천(上川)·중천(中川)·하천(下川)이 통합되어 천전리가 되고 안동군 예안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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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마을을 개척할 당시 큰 웅덩이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맛이 좋아 천지·샘나루라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올 것이라 하여 성을 쌓았는데 공민왕이 오지 않고 예천군 하리면으로 가 버렸으므로 성을 완성하지 않고 철거한 흔적이 있어 성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새터는 천지리 입구에 있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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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예안면과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재산면에 걸쳐 있는 산.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렸다. 기록에 따르면, 청량산은 고대 이래로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금탑봉에 자리 잡은 상청량암(上淸凉庵)과 하청량암(下淸凉庵)이 널리 알려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청량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높이는 870.4m이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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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있는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 청량산성 공민왕당은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일대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빌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공민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공민왕당이 세워지게 된 배경은 고려 31대 공민왕이 1361년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 청량산 지역에 머물다 환도한 후 비운으로 죽게 되자 당시 감화를 입었던 이곳 주민들이 사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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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년 2차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지금까지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가송리 주변 지역에서는 공민왕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공민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신앙적 신념으로 전화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검토해 보면 공민왕이 이곳에 실제로 왔던가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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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별신굿은 동제와 구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갖는 마을굿으로, 매년 열리는 곳도 있지만 3년, 5년, 7년, 10년 간격으로 무당 집단과 마을 공동체가 함께 벌이는 축제적 대동굿이라 할 수 있다. 가송에서는 얼마 전까지 3년(만 2년)에 한 번씩 산성마을의 공민왕당에 세배를 가는 형태로 별신굿이 연행되었다. 안동 지역 전체로 볼 때 별신굿의 특징과 기원은 공민왕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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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경을 시조로 하고 정침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의 청주정씨는 청주정씨의 시조 정극경(鄭克卿)의 8세손 정침(鄭賝)이 조선 초 안동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고 후손들이 와룡 마암, 북후 도진 등지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청주정씨는 고려 의종 때 중랑장을 지낸 시조 정극경의 5세손 정해(鄭瑎)가 원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첨의찬성사에 올랐으며 정해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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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바위그림은 동굴 벽이나 자연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 또는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암각화(岩刻畵),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畵)라고도 한다. 바위그림은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활발히 제작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선사시대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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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왔을 때 태자가 머물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갈 때 이곳에 머물러서 태자리라 하였다는 설과, 왕이 불공을 드려 태자를 낳고 태자사(太子寺)라는 절을 지었으므로 태자·자산이라 하였다는 설도 전해 온다. 자연마을인 지경(地境)은 소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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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서후면 자품리와 예천군 보문면 경계에 있는 산. 학이 앉았다 날아가는 형상 같다고 하여 학가산(鶴駕山)이라 하였는데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주에서는 정상이 평평하게 보여 선비봉,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여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그 모습이 수려한 인물과 같다고 하여 인물봉으로 불린다. 산 아래 자품리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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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包谷式) 산성. 학가산성(鶴駕山城)의 최초 사용 시기는 내부에서 출토되는 토기편으로 보아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했던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안동시 북후면 학가산 정상부에 있다. 학가산은 안동시와 예천군에 걸쳐 있으며 해발 882m 정도인데, 동쪽으로는 안동 시가지, 남쪽으로는 풍산읍, 서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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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