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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24
한자 安東太師廟三功臣遺物一括
영어공식명칭 Relics of Three Meritorious Subjects in Taesamyo Shrine
영어음역 Andong Taesamyo Samgongsinn Yumu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1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7년 6월 23일연표보기 -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 보물 제45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 일괄 보물 재지정
성격 유물
제작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장처 태사묘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1 지도보기
소유자 태사묘관리위원회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안동 태사묘에 있는 고려시대 삼공신 관련 유물.

[개설]

안동 태사묘 삼공신 유물은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를 모신 사당인 태사묘(太師廟) 혹은 삼공신 묘(三功臣廟)에 보존되어 온 고려시대의 일괄 유물이다. 삼태사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을 가리키는데, 개별 유물이 삼공신 중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는 없다.

안동 태사묘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전기 안동부민이 삼태사의 공덕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라 한다. 1542년(중종 37)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당시 건물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묘우(廟宇) 안에는 묘정비(廟庭碑), 숭보당, 경모루, 보물각(寶物閣) 등이 있으며, 삼태사의 후손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유물은 보물각 안에 보관되어 있으며 모두 12종 22점이다. 유물로는 주칠탁잔(朱漆托盞), 고견포(古絹布), 관(冠), 이(履), 포선(布扇), 동인(銅印), 은구유개합(銀釦鍮蓋盒), 옥관자(玉貫子), 혁과대(革銙帶), 은시저(銀匙箸), 교서(敎書) 등이 있다. 1967년 6월 23일 보물 제4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태사묘관리위원회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형태]

주칠탁잔(朱漆托盞)은 대(臺)와 잔(盞)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대에는 넓은 전이 달렸고(지름 14㎝) 표면은 주칠, 내면은 흑칠로 높이 5.5㎝이다. 잔은 대접형으로 겉과 속이 모두 주칠이고 굽만 흑칠이다. 입지름 13.5㎝, 높이 4.5㎝이다. 고견포[古絹布: 화견(花絹)]는 54×49㎝의 제편(製片)으로 담황색 바탕에 화문의 수가 놓여 있다. 고견포 무수(無繡)는 각종 꽃무늬 비단으로 크기도 모두 달라 완전품이 아니다. 색조의 크기는 연두색 61×300㎝, 66×115㎝, 60×164㎝, 61×122㎝, 담홍색 51×123㎝, 적황색 58.5×64㎝이다.

관(冠)은 말총으로 만든 흑색 관으로 좌우에 뿔이 달린 형식이 조선시대의 관과 유사하다. 높이 약 20㎝, 뿔 길이 21㎝이다. 이(履)는 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신으로, 바닥은 두꺼운 가죽을 여러 겹 대서 꿰매었고 안은 마로 받쳤으며, 목 위에 청색 세마로 단을 대었다. 높이 29㎝, 바닥 길이 28㎝이다. 포선(布扇)은 비단 천으로 가는 나무를 앞뒤에 대어 고정시키고 나무 손잡이를 달았다. 천은 손상이 많으며 전체 길이 47.5㎝, 손잡이 길이 20.5㎝, 윗너비 26㎝이다.

동인(銅印)은 두 개가 전하고 있는데 모두 4.2×9.3㎝, 높이 3.4㎝의 장방형이다. 위에는 장방향의 꼭지가 달려 있다. 은구유개합(銀釦鍮蓋盒)은 전체 높이 10.5㎝, 입지름 13.8㎝이다. 몸통 일부가 파손된 합으로 『영가지(永嘉誌)』에서는 은식기라 하였다. 옥관자(玉貫子)는 밑이 원이고 위에는 5화(花)를 투각(透刻)하였으며, 지름이 4㎝인데, 그 중 한 개는 파손되었다.

혁과대(革銙帶)는 4벌이 있으나 모두 손상이 많고 장식은 유리되었다. 장식은 황동제로 화문이 양주(陽鑄)되었다. 크기는 142×6㎝, 140×5.5㎝, 172×5㎝, 110×4㎝이다. 공민왕이 1360년(공민왕 9) 3월에 복주목사 정광도(鄭光道)에게 내린 교서(敎書)는 174×61㎝의 한지에 묵서한 것이다. 은시저(銀匙箸)는 통식(通式)에 속하는 것으로 숟가락은 길이가 28.4㎝이고, 손잡이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졌다. 젓가락은 절단되어 3편(片)이 남아 있는데, 각각의 길이는 15.9㎝, 14.5㎝, 10.5㎝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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