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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에 다녀간 공민왕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E010301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조정현

1361년 2차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지금까지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가송리 주변 지역에서는 공민왕과 부인, 그리고 두 딸이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의 공민왕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신앙적 신념으로 전화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검토해 보면 공민왕이 이곳에 실제로 왔던가는 불확실한데도 신격으로까지 모셔지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가송리에는 안동 지역에 공민왕이 몽진 온 사실과 더불어 청량산 일대에 공민왕이 왕림했음을, 말 5필이 끄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인 오마대가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설화가 전해 온다.

가송리 주민 이일영 옹이 공민왕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민왕이 도저히 피란을 안 내려오고는 안 되서 안동으로 내려왔어. 그래 내려와서 쓴 글씨가 안동군청 간판이래. 그게 공민왕 글씨 친필(親筆)이지. 그때 공민왕은 안동에 주재(駐在)했다가, 적이 내려와 싸움이 일어났어. 이래서 산성(山城) 쌓았는데, 예안 부포라는 데가 있어. 거기서부터 산 능선을 쌓기 시작하여 산 능선을 타고 산성이라는 데까지 성을 쌓았어. 그래 그 길이 얼매나 큰지 말 다섯 필이 능선을 타고서 왔다 갔다 할 정도였어. 지금도 흔적이 있지.”

이렇듯 가송리에서 공민왕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에는, 위대한 인물과 자연지물을 빗대어 지역의 관련성을 서술하는 이야기 구조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 다섯 필이 끄는 마차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상식을 통해 공민왕이 안동 지역에 왕림했음을 강조하면서 가송에서 모시는 신의 위엄과 영험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

  • •  이일영(남, 1935년생, 가송리 거주)
  • •  금용극(남, 1939년생, 가송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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