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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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송석(松石). 평해군수를 거쳐 대한제국 육군 호위영관으로 있을 때인 1907년 8월 1일 일제가 군대를 강제 해산하자 호남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지역의 구례·동복·담양·순창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장성군을 무대로 3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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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승(繼承), 호는 해암(海岩)이다. 1871년(고종 8)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 해천마을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묘는 해천마을 동암사 왼쪽에 있다. 권계홍은 예안·안동·진보·영양 등지를 무대로 활약한 박처사(본명 박인화) 의진(義陣)에서 활동하였다. 박처사는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 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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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종오(宗五)이다. 1859년(철종 10)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서 출생하였다. 안동 향리 출신인 권대일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소식이 안동에 전해지자 양아버지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마 원수의 적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연로하시지만 다행히도 두 형님이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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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삼(致三), 호는 채산(蔡山)·인암(忍庵). 외할아버지는 한산(韓山) 이문직(李文稷)이고, 아버지는 의병장 권세연(權世淵)이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권상규는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듬해 다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독립운동가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문좌(文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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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祖源), 호는 담와(澹窩) 혹은 성대(星臺)이다. 1836년(헌종 2)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출생하여 1899년(고종 36) 사망하였다. 권세연은 1895년 말에 거의(擧義)한 안동의진(安東義陣)의 1대 대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1895년 말부터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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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덕(景德), 호는 소허재(素虛齋). 권해도(權海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재구(權載球), 아버지는 권정하(權定夏), 어머니는 조언회(趙彦繪)의 딸, 처는 이종문(李宗文)의 딸이다. 권옥연은 1892년(고종 29)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시독관, 정언, 교리를 역임하였다. 1896년 의병장 김도화(金道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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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용길(權用吉)이다.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가송리에서 출생하였고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항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때 김치로(金致老) 의병장이 경상북도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권용길은 이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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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권용하는 자는 현필(賢弼), 호는 월곡(月谷)이며, 권춘란(權春蘭)의 후손으로, 1847년(헌종 1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의열·순국 투쟁이 잇달았다. 안동 지역에서도 김순흠·이만도·이중언·류도발·이현섭·권용하·김택진, 이명우 부부 등이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권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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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사문(士文), 호는 구산(龜山)이다. 1850년(철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서 출생하여 의병에 참여할 당시에는 이웃 마을인 이개리 보현에 살았다. 1903년(고종 40) 세상을 떠났다. 권제녕은 1895년 12월에 일어난 안동의 전기 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권제녕은 퇴계학맥의 정맥을 이은 서산(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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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출생하였다. 김대규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이현규(이하현) 부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11월 이현규·신형일·권이달 등 수십 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청송 주왕산 대전사, 울진 불영사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대규는 동지들과 함께 각처에 격문(檄文)을 보내 경상도·강원도 일대의 동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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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김도화는 본관이 의성,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庵)이며, 한말 안동 지역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김도화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아버지 김약수(金若洙)와 곡구처사(谷口處士) 정상관(鄭象觀)의 딸인 어머니 진양정씨(晉陽鄭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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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자 김수락은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중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김수락은 경기도에서 재봉기한 이강년 의진(義陣)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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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이자 순국자.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치화(穉華), 호는 죽포(竹圃)이다. 오미마을 허백당 김양진의 14세손으로, 1840년 풍산면 수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서 태어났다. 김순흠은 일찍부터 문명이 인근에 널리 알려져, 1894년 당시 경상감사 조병호(趙秉鎬)가 여러 차례 벼슬을 하도록 권유하였으나 거절하였다. 1895년 말 전국적으로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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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안동시 임동면에서 태어난 김암회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박처사 의진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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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우철이 활동하였던 박처사 의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 300여 명을 거느리고 예안과 안동, 진보, 영양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박처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처사는 의진을 결성한 후 대규모 항쟁보다는 소규모로 인원을 나누어 활동하였는데, 특히 부하인 이화서·김문호·권계홍 등은 의병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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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주봉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하여 의병 항쟁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1908년 의병 항쟁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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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준모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45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자는 덕심(德深), 호는 송오(松塢)이다.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단발령·변복령 등으로 전국으로 의병 항쟁의 물결이 퍼져 나가자 안동의진은 1895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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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진의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55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미경(美卿), 호는 학운(鶴雲)이다. 193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진의는 18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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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호락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활약한 류시연(柳時淵) 부대에 참가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10월 26일 동지 5~6명과 함께 경상북도 예안에 있는 일본군 분파소(分派所)를 습격하는 등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던 김호락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907년 5월 4일 경상북도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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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김회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44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현우(現于)·경승(景承)이며, 서산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사촌 동생이다. 1896년에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 야산에 있다. 김회락은 일찍이 서산사숙(西山私塾)에서 수학하였고,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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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김흥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27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맹(繼孟), 호는 서산(西山)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한말 퇴계 학통을 잇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문화권의 핵심 지도자이며, 위정척사론을 견지하고 안동 지역의 전기 의병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895년 12월 30일 내려진 단발령 소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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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남준이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후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 해산으로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남준이는 의병 항쟁에 뛰어들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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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인가(仁可), 호는 진산(震山)이다. 185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시 북후면에 묘가 있다. 류봉영은 어린 시절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자, 류봉영은 김상종(金象鍾)이 1896년 3월 25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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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박여(璞汝)·응만(應萬), 호는 성남(星南)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류시영(柳時榮)·류시영(柳時永)·류시종(柳時宗)·류시연(柳時然)·류승일(柳承一) 등이 있다.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임동면 수곡리에 묘가 있다. 류시연은 1896년부터 1914년 42세에 순국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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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수경(受卿), 호는 학산(鶴山).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정조(柳政祚)이고,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정내운(鄭來雲)의 딸이다. 류응목(柳膺睦, 1841~1921)은 1864년(고종 1) 동당시(東堂試)에 합격하였고, 1879년(고종 16)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890년(고종 27) 성균관에서 유학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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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좌(元佐), 호는 세산(洗山). 정재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의 아들이다. 1825년(순조 2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04년(고종 41)에 사망하였다. 류지호는 한문을 수학하며 1873년 음보(蔭補)로 가감역(假監役)에 제수되었고,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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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팔(啓八), 호는 만산(晩山)이다.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나 1912년 사망하였다. 류창식은 동산 류인식(柳寅植)과 사촌간이며, 삼산 류정원(柳正源)의 후손으로 삼산종택(三山宗宅)의 종손이다.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변복령 등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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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박인화는 1860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66번지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박인화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하고 의병을 일으켜 3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예안·안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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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배선한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의병 항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기로 결심하였다. 1906년 음력 3월 23세의 나이로 신돌석 의진에 참가하여 50명의 의병과 함께 영양읍을 공격하여 무기고를 손에 넣었고, 4월에는 의병 130명과 함께 청송읍을 공격하였다. 1907년 영덕·영양·청송·울진 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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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예안(禮安). 또 다른 이름으로 이국선(李局善)·이일선(李逸善) 등이 있다. 1886년(고종 23) 경상북도 안동 우곡리에서 태어났다. 이국선은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충청북도 보은군으로 이사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침탈되어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국선은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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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이다. 1842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11세손이며, 만화공(晩花公)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휘준(李彙濬)이며, 이휘철(李彙澈)에게 입양되었다. 이만도(李晩燾)는 23세 되던 1866년(고종 3) 식년시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후 홍문관수찬, 사헌부지평, 병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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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이다. 1867년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에서 태어났고, 훗날 지금의 안동시 풍산면 마애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1944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만원은 전기·후기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조직되어 활동을 전개할 때 충청북도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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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1856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인 이현구(李賢求)는 1940년 일제의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를 거부하여 절식 순국하였다. 1894년(고종 31)부터 안동 지역에서는 전국적인 규모의 의병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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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운호(李運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상오(相五)이며, 호는 대호(大瓠)이다. 1852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미질리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 전해지자 지역 유생들 사이에 반개화·반침략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며, 이어진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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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의호(李宜鎬)는 자가 의백(義伯)으로 1854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896년 향년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까지 전해지자 지역 유생들 사이에서 반개화·반침략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어진 단발령으로 인하여 의병이 조직되기 시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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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인화(李仁和)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지암(芝庵)이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2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9월 초 일본인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안동 일대에까지 전해지고, 이어서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인화는 예안 지역에서 조직된 선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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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중린(李中麟)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진백(振伯)이며, 호는 운포(雲圃)·황산(潢山)이다. 183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용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17년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거병 움직임과 더불어 안동 지역 여러 곳에서도 의병 봉기를 위한 통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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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이중언(李中彦)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중관(仲寬)이며, 호는 동은(東隱)이다. 185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10년 향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 1879년(고종 16)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과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880년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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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중원(仲圓), 호는 효암(曉庵). 할아버지는 이휘정(李彙廷), 아버지는 이만유(李晩逌),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승지를 지낸 김용락(金龍洛)의 딸이다. 묘소는 원당(元塘) 앞산인 효잠산(孝岑山) 병좌(丙坐)의 언덕에 있다. 이중철은 어려서는 족부(族父)인 이만각(李晩慤)에게 배웠으며 뒤에 서산(西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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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186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소라곡에서 태어난 이천이는 1906년 11월 안동시 임동면 일대에서 활약한 류시연(柳時淵)이 이끄는 의진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이천이는 류시연 의진에서 주로 안동과 청송 일대에서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여 의병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임동면을 비롯한 영덕·예안·진보 일대에서 항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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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성(眞城).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이춘삼은 1907년 문경 일대에서 결성된 김상한(金商翰) 의진에 가담하여 좌익장(左翼將)의 임무를 맡아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4월에는 조령에서, 그 해 11월에는 문경의 동로면에서 적과 전투를 벌여 수십 명의 적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충청북도 단양으로 퇴각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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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임성기(任性基)는 임문호(任文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울진군 평해로 이주하였다. 1907년 향년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듬해 임성기는 울진과 평해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세 차례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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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전개한 안동 지역 인사들.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다. 대개 시·군 단위로 3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는데, 안동 지역의 경우 2009년 현재 321명이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았다. 여기에다 아직도 확인 중에 있는 미 포상 독립운동가 700여 명을 합치면 무려 1,000명이 넘는다.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단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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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낙원은 1882년(고종 1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서 출생하여 1960년 사망하였다. 강낙원은 1919년 3월 17일 안동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한몫을 담당했고, 예안선명학교·예안보통학교 등이 참가했으며, 여기에 만촌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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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은수(殷叟), 호는 백서(白棲) 혹은 산미(山薇)이다. 1869년(고종 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강인수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하고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로부터 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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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윤집(允執), 호는 가헌(稼軒)이다.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에서 출생하여 2006년 사망하였고,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강일원은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는 1943년 가을 안동농림학교 8·9회생이던 권영동·황병기·이준택·이갑룡·김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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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제하는 1927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동부동에서 출생하였다. 고제하는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는 1943년 가을 안동농림학교 8·9회생이던 권영동·황병기·이준택·이갑룡·김오섭·장인덕·김우현·이승태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단체이다. 조선회복연구단의 목적은 구국의 일념으로 일본인 기관을 파괴하고, 적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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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서(公瑞), 호는 추산(秋山), 또 다른 이름은 권혁린(權赫麟)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서 출생하여,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낸 조부 권헌봉(權憲鳳)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권기일은 1912년 3월경 조부모를 남겨둔 채 가족을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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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1889년(고종 2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출생하였다. 묘는 와룡면 태리 공동묘지에 있다. 권도익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시위와 3월 23일에 일어난 3차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었다. 3월 18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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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또 다른 이름은 권경영(權慶永)이다. 1898년(고종 3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에서 출생하였다. 권두경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시위와 3월 23일에 일어난 3차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었다. 3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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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찬수(贊粹), 호는 성재(省齋). 외할아버지는 함안(咸安) 조성옥(趙性玉)이고 아버지는 권기연(權祺淵)이다. 저서로는 『성재집(省齋集)』 28권이 전한다. 권상익은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으며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려 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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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권상학은 1906년(고종 43)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들어서면서 청년운동은 전국적인 조직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도에는 도연맹, 군에는 군동맹, 면에는 지부를 설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안동도 1927년 5월 15일 안동 지역 청년운동을 이끌어갈 통합체가 결성되었다. 이때 결성된 안동청년동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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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856년(철종 7)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권수억은 1919년 안동면에서 주민들이 대거 참여했던 만세 운동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자, 뒤에 홀로 만세 시위를 벌였다. 3·1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안동면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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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상문(尙文), 호는 이산(二山)이다. 1900년(고종 3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였다. 사망 연도는 알 수 없다. 권영석은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와 3월 22일 당시 임북면소재지였던 사월리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류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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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오(順五)이다. 1891년(고종 28)에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당시 도서면 오대동)에서 출생하여 1940년에 사망하였다. 권영직은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길안면 시위는 3월 21일 장날을 이용하여 임하면 오대동의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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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910년(순종 4)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권예윤은 1925년 8월 창립된 안동청년동맹에 참여하였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피로서 자유를 얻는다’, ‘버려야 할 것은 철쇄이고 얻어야 할 것은 자유이다’, ‘전쟁은 우리들의 살 길이다’라는 글귀가 적힌 벽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1930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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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오(明五)이다. 1898년(고종 3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였고, 1932년에 사망하였다. 묘는 사월리 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뒤쪽에 있다. 권오규는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와 3월 22일 당시 임북면소재지였던 사월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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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우(白遇), 호는 서언(瑞彦)이며, 또 다른 이름은 권오옥(權五玉)이다. 1924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출생하였다. 권오복은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은 임시정부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적극적인 무장항쟁을 벌이기 위해 1940년 9월 17일 중경에서 창설한 군대이다. 한국광복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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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전현(田賢), 또 다른 이름은 권오돈(權五敦)이다. 1900년(고종 38)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대한광복회 고문으로 활동한 권준희(權準羲)의 손자이며, 6·10만세 운동을 기획한 권오설의 사촌 아우이다. 묘는 안동시 풍산읍 수리 조부 권준희의 묘 아래 있다. 권오상은 19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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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1897년(고종 35) 안동권씨 동성 마을인 풍천면 가곡리에서 권술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일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15세기 초 권항(權恒)이 입향한 이래 안동권씨 동성 마을을 형성하였다. 묘소는 가일마을 뒷산 공동묘지에 있다. 권오설은 가숙(家塾)인 남명학교와 하회 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 수학하고, 대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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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익(舜翊), 호는 일범(一範)이다. 1927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에서 출생하여 1981년 사망하였다. 권오직은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는 1943년 가을 안동농림학교 8·9회생이던 권영동·황병기·이준택·이갑룡·김오섭·장인덕·김우현·이승태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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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차철(權且喆)이다. 1894년(고종 31) 임서면 오대동(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133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1971년 세상을 떠났다. 권우철은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길안면 시위는 3월 21일 장날을 이용하여 임하면 오대리의 손영학(孫永學)·김정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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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우범(尤範)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묘소는 와룡면 이하리 야산에 있다. 권이원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면의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각각 준비되었다. 3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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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또 다른 이름은 권점필(權點必)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44년 사망하였다. 권점필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가운데 권점필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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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종백(宗伯), 호는 동산(東山)이며, 또 다른 이름은 권재만(權在萬)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율세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묘는 안동시 안막동에 있다. 권정필은 1919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권정필은 1922년 6월 상하이에서 서울로 들어와 당시 국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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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1900년(고종 3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28년 사망하였다. 권중윤은 1919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전개된 독립만세 시위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이곳의 시위는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남산정교회 목사 이만집(李萬集)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1919년 3월 8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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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순여(舜汝)이다.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권중희는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류동시(柳東蓍)가 1919년 3월 초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귀향하면서 계획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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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성관(聖觀)이다.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묘는 임동면 사월리 보마곡 포마골에 있다. 권태환은 3·1 만세 시위 때 임동면 시위와 임북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류동시(柳東蓍)가 1919년 3월 초 고종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귀향하면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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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926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2009년 현재 생존해 있다. 권혁수는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단체는 1943년 가을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8·9회생이던 권영동·황병기·이준택·이갑룡·김오섭·장인덕·김우현·이승태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단체이다. 조선회복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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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1897년(고종 34)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출생하여 1980년 사망하였다. 권헌이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주도했고, 예안선명학교, 예안보통학교 등이 참가했으며, 만촌교회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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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병원(秉元)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여 1961년에 사망하였다. 금명석은 임동면·임북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류동시(柳東蓍)가 1919년 3월 초 고종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귀향하면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거사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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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우명(禹命), 호는 청원(淸園)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에서 출생하여 1961년 사망하였다. 금용문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주도하였고, 예안선명학교, 예안보통학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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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응천(應天), 또 다른 이름은 김원현(金元顯)이다. 1926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99년 사망하였다. 김건우는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출신으로 비밀 결사 단체인 명성회(明星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명성회는 1942년 2월 무렵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던 이정선(李貞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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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867년(고종 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56년 사망하였다. 김계한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宋基植)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 가운데 김계한은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이 계획한 만세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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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범주(範疇), 또 다른 이름은 김수특(金壽特)이다. 1900년(고종 3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김구현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진성이씨 문중 사람들이 주도했고, 예안선명학교, 예안보통학교 등이 참가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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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고종 2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서 출생하여 1969년 사망하였다. 김구현은 흠치교(吽哆敎: 증산교)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흠치교는 뒷날 보천교(普天敎)로 불리는 종교단체이다. 보천교는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을 따르던 차경석(車京石, 본명 車輪洪)이 창시한 흠치교 계열의 새로운 종교이다. 차경석은 강일순이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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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김규식은 1907년에 안동 진천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김동삼(金東三)·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 인사들이 신민회(新民會)와 더불어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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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치방(致邦), 호는 속은(俗隱)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여, 1970년 사망하였다. 김규헌은 의용단원(義勇團員)으로 활동하였는데, 의용단은 1920년 9월에 결성되어 1922년 12월까지 활동한, 서로군정서를 후원하기 위한 국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당시 조선민족대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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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심(仲尋), 호는 우전(雨田)·학산(鶴山)이다. 1899년(고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탁청정(濯淸亭) 종손 김영도(金永燾)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김남수는 안동에서 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세운 최초의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와 서울 중동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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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成), 자는 중언(中彦), 호는 비서(賁西)이다. 만주에 들어가 백두산 기슭에 산다는 뜻에서 백하(白下)라는 별호(別號)를 사용하기도 했다. 1845년(헌종 1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우파(愚坡) 김진린(金鎭麟)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대락은 1845년 안동에서 세가 좋았던 천전(川前: 내앞) 마을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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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초명은 찬식(纘植), 또 다른 이름은 김동만(金東萬)이다. 1880년(고종 1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였다. 만주에서 활약한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의 동생이다. 김동만은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 등 안동 지역 인사들이 신민회와 더불어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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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본명은 긍식(肯植), 자는 한경(漢卿)이었는데, 만주로 망명해서는 이름을 동삼(東三), 자는 성지(省之), 호는 일송(一松)으로 고쳤다.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김계락(金繼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인 김주병(金周秉)에게서 전통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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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선성(宣城)이다. 1899년(고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여 1943년 사망하였다. 김동택은 1919년 안동의 3·1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 지역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김동택은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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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7년(고종 24)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에서 출생하여 1944년 사망하였다. 김두진은 1919년 3·1 만세 시위에 참여했는데, 안동의 3·1운동은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김두진은 안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만세 시위를 일으킨 3월 17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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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아버지는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오빠이다. 김락은 1862년(철종 1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4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김락은 1880년 만 18세의 나이로 안동시 도산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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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 풍산(豐山), 자는 회일(會一)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풍산김씨 동성마을인 오미리에서 출생하였다. 김만수는 1913년 만주로 망명하여 길남장(吉南庄)의 군사가 되었다. 길남장은 1918년 봄 안동 출신으로 만주 지역 최고 지도자인 이상룡(李相龍)이 화전현에 설치한 병영이다. 그 후 김만수는 19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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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일(亨一), 호는 근암(槿庵)이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 1825~1895)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66년(고종 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내앞마을)에서 김효락(金孝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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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김명인의 아버지는 안동면 2차 만세 시위를 주도한 김계한(金啓漢, 1867~1956)이다. 1899년(고종 3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고, 법상동에 묘가 있다. 김명인은 기독교 신자로서 계명학교를 거쳐 1907년 설립된 안동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20세 때 대구 교남학원 고등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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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또 다른 이름은 김병도(金炳途)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현하리에서 태어났다. 현하리에 묘가 있다. 김병도는 1908년 3월 15일 재경 영남 인사들이 창립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여하여 구국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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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 초명은 호락(浩洛), 자는 언직(彦直)이며, 호는 취석(翠石)이다. 1850년(철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에 사망하였고, 묘는 금계리 뒷산에 있다. 김병락은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병항쟁에 투신하였다. 특히 그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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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렬은 1892년(고종 29) 경상북도 안동에서 의병대장 김관수(金觀洙)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평안남도 맹산에서 거주하다가 1946년 사망하였다. 김병렬은 1918년 평안남도 덕천의 광명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6월 김두석(金斗石)의 소개로 대한독립청년연합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을 하였고, 대한독립단 맹산지단(孟山支團)을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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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문의 또 다른 이름은 김국명(金國明)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나 1967년 사망하였다. 김병문은 1894년 의성김씨 동성마을인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음력 8월 안동 풍산면에서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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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제경(濟卿), 호는 만원(晩畹)이다. 1856년(철종 7) 의성김씨 천전(내앞) 문중의 종손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하였다. 김병식은 1907년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에서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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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919년 안동면 2차 만세 시위에 참여한 김재성(金在成, 1897~1982)의 아버지로, 1879년(고종 16)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서 태어나 1936년 사망하였다. 김병우는 풍천면 어담리에서 안동읍 화성동으로 이사하였다. 이사한 후 그는 안동교회를 다니면서 성서서점을 경영하였다. 그러다가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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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우보(遇步), 또 다른 이름은 김영일(金瑛一)이다. 1920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부동에서 출생하였고, 1979년 사망하였다. 풍산읍 노리의 안동공원묘지에 김복한의 묘가 있다. 김복한은 일본에서 유학하여 1943년 3월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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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조(文祖)이다. 아버지는 김규식(金圭植)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96년(고종 3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하였다. 묘는 만주에 있다. 김성로는 1907년 대한제국군인 부위(副尉)로 있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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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맹옥(孟玉), 호는 일산(一山), 또 다른 이름은 김종훈(金宗勳)이다.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임하면 천전리에 묘가 있다. 김성로는 1907년 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설립한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입학, 졸업하였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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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56년(철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서 출생하여 1938년 사망하였다. 김성복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그는 3월 21일 임동면 3·1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만세 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의 주도로 장날인 3월 21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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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0년(고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출생하여 1942년 사망하였다. 김세동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때인 음력 2월 14일 안동에서 정관식(鄭寬植)으로부터 “강화회의(講和會議)가 열리고 있는 파리로 가서 독립운동을 할 필요가 있으므로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김세동은 정관식의 주장에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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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187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김술병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해 3월 21일 길안면 만세시위에 주도자로 참가하였다.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임하면 오대리의 김정익(金正翼)을 비롯한 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에 의해 준비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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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시태는 1896년 의성김씨 동성마을인 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10월 김시태는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敎團)의 8인조에 가입하여,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더불어 경상북도 지역에서 흠치교의 신도를 모집하여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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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윤화(潤和), 호는 하구(何求)·학우(鶴友)이다.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에서 태어났다. 김시현은 1899년 서울에 올라가 중교의숙(中橋義塾)에서 수학하였으며, 1908년 이후 교남교육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 법학과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졸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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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김실경은 1919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김실경은 1887년 임동면 중평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서당에서 수학하며 쓰러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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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함(汝涵), 호는 응봉(鷹峰). 만주에서 활동한 김연환(金璉煥, 1879~1947)의 아버지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185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다. 김양모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등으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항쟁이 펼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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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기중(器仲), 호는 학운(鶴雲)이다.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파리장서 의거에 참여한 김양모(金瀁模, 1850~1935)가 아버지이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연환은 1910년 일제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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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근심(謹心). 186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리에서 태어났다. 중국 길림성에 묘소가 있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영목은 같은 해 3월 안동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즉 1차는 3월 13일, 2차는 3월 18일,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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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연(成淵)이다. 188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에 있다.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진 김영창은 일찍이 서당에서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항상 걱정하였다. 그러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김영창은 이를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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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춘은 192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강제로 징병되어 중국 제9전구로 이동 도중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외에도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만주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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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기(聖基)이다.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김영팔은 늘 국권을 강탈당한 나라를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를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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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여현(汝見)이다.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손자이다. 1887년 천년불패의 땅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으며, 묘도 이곳에 있다. 김용환은 할아버지 김흥락의 영향을 받아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1908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현동(金賢東)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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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이명은 김소창(金笑蒼), 자는 계서(繼西)이다. 188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김원식(金元植)은 1919년과 1920년 대구를 중심으로 폭탄 구입과 임시정부 자금 지원에 참여하였다가 만주 펑톈성[奉天省]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안동 출신 인물들이 집결해 있던 서로군정서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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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이명은 김응범(金應範)이고, 자는 경장(景章), 호는 동전(東田)이다. 187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의열단원 김지섭(金祉燮)의 일가이다. 김응섭은 1908년 재경 영남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교남교육회의 본회 임원으로 참가하여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19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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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우(德宇), 호는 청헌(淸軒)이다. 189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김응성은 젊은 시절에는 한문을 수학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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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선성(宣城). 189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응진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다 1910년 나라가 무너지고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통해 무너진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하였다.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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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7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신세동에서 태어난 김익근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18일 안동면 2차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안동면 2차 만세시위는 계획 단계에서 안동교회와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김병우(金炳宇)와 김익현(金翊顯), 김계한(金啓漢) 등은 서로 의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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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숙(聖淑)이다. 186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광석동에서 태어났다. 묘는 안동시 이천동에 있다. 김익현은 한문을 수학하다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안동면 만세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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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김일선은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와 3월 22일 당시 임북면의 면소재지이던 사월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류연성(柳淵成)과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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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백(文伯)이다. 일송 김동삼(金東三)의 6촌 동생으로 188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장식은 1919년 3월 정인호(鄭寅琥) 등이 조직한 구국단(救國團)에서 활동하였으며, 만주로 망명한 이후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동하였다. 김장식이 참여한 서로군정서는 1919년 4월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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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중(文重)이다. 188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김재락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임하면 오대리의 김정익(金正翼)을 비롯한 손영학(孫永學), 김정연(金正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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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주서(周瑞), 호는 근전(槿田)이다.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공산주의 운동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김재봉은 1908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여 염직과를 3년간 수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1917년 풍산 오미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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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안동면에서 일어난 3·1만세시위에 참여한 김병우(金炳宇, 1879~1936)이다. 189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에서 태어났다. 김재성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안동읍 화성동으로 이사하였다. 성장하면서는 안동교회를 다녔으며, 대구에 있는 계성학교를 수료하였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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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원은 189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4월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敎團) 12인조에 가입하여,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김재원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흠치교 신도를 모집하여 교세를 확장하고자 김시태 등과 함께 1924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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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일중(一中)이다.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개척한 김대락(金大洛, 1845~1914)이 큰아버지이다. 1888년 의성김씨 동성마을인 내앞마을(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김소락(金紹洛)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강점당하자 김정식의 큰아버지 김대락은 김동삼(金東三), 이상룡(李相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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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장언(長彦)이다.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고향에서 한문을 익힌 김정연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21일 길안면 만세시위에 주도자로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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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정익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3월 21일 길안면 만세시위에 주도자로 참가하였다.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임하면 오대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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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정현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903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에서 태어났다. 의열 투쟁을 전개한 김시현(金始顯, 1883~1966)의 동생이다.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2년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 작은아버지 집에 머물면서 형 김시현의 심부름으로 권총 1정과 실탄 3발을 류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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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주로는 1920년 음력 7월 임하면 천전리에서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敎團)의 8인조에 가입하여, 종교 활동을 표방하면서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경상북도 지역에서 흠치교 신도를 모집하여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1924년 ‘갑자년(甲子年)이 되면 흠치교의 힘에 의해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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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중한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897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국현(國賢), 호는 춘산(春山)이다. 1952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중한은 1910년 일제가 강제로 국권을 빼앗자 만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여, 1919년 2월 안동 애국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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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지섭은 본관이 풍산(豐山)으로 1884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김병규(金秉奎)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위경(衛卿), 호는 추강(秋岡)이다. 192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족숙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에게 한학을 배웠고, 1905년 상주보통학교(尙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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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징로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94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방(聖邦)이다. 194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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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옥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878년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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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치경은 1905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김치경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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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태규는 1912년 안동 출신 애국지사들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한 중국 지린성[吉林省] 반석현(磐石縣)으로 망명한 뒤 이상룡(李相龍)의 영향 아래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대종교(大倧敎) 신자가 되었다. 1917년부터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고, 1920년 김좌진(金佐鎭)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였다. 1924년 11월 안동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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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필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73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옥(聲玉), 호는 오은(梧隱)이다. 1919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 홍은사 바로 뒤에 있다. 일찍이 김대락(金大洛)·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10년 이들이 만주로 망명하자, 나라를 떠나면 영원히 잃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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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현동은 1876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이다. 192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김현동은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하여 김용환(金龍煥)과 함께 적정(敵情) 탐지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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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형진은 본관이 선성(宣城)으로 1887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농제(聾齊)이다. 1957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안동시 예안면 귀단산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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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홍구는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9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학도병에 끌려가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1943년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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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영은 1886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몽어(夢魚)이다. 196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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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후병은 1874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청계 김진(金璡)의 후손이다. 1954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방정산에 있다. 김후병은 1907년 안동의 혁신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참여하여 세운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협동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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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후성은 1896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과 민족자결의 국제정세로 3·1운동의 물결이 전국에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김후성은 풍산면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만세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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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삼진은 1883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남삼진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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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장은 1925년 2월 안동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慶北靑年大會)에 참가하여 대회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8월 안동청년동맹(安東靑年同盟) 창립식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가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이회승(李會昇)을 책임자로 하는 경북야체이카에서 활동하다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였다. 조선공산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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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목(聖穆), 호는 일성(一醒)이다. 188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류교희는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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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90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류기만은 1924년 3월 예안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인쇄업과 제유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1920년대 후반 신간회 안동지회와 안동청년동맹(安東靑年同盟) 예안지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류기만은 1931년 3월 20일 안상윤(安相潤)·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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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충옥(衝玉)이다. 188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류기영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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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승수(承搜), 호는 회은(晦隱)이다. 183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류진휘(柳進徽)와 어머니 안동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 자정 순국한 류신영(柳臣榮, 1853~1919)이 아들이다. 류도발은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당대의 여러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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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노승(魯升). 188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류동수는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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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시일(始一), 호는 위남(渭南)이다. 189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수곡리에 묘가 있다. 류동수는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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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윤(汝尹), 호는 금우(琴愚)이다.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임동면 임동중학교 뒤에 묘가 있다. 류동혁은 1907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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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동회(絧晦), 호는 입헌(立軒)이다. 188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임동면에 묘가 있다. 류동환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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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 본관은 전주. 초명은 화종(花宗), 호는 단주(旦州)와 월파(月坡)이다. 189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류이흠(柳頤欽)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류림은 안동의 내앞마을에 설립된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다녔다. 졸업 후 1915년 정진탁과 함께 대구에서 부흥회(復興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17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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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90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26년 류면희는 당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4학년생으로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참여하였다가 안동 출신 이선호(李先鎬)로부터 순종 황제의 인산일인 6월 10일에 안동시 풍천면 가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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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중(彝中), 호는 소정(素庭)이다. 189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류병하는 일찍이 서울로 상경하여 근대 교육을 받고 있다가 1922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김시현(金始顯)·김지섭(金祉燮)·권정필(權正弼) 등과 함께 조국 독립의 방략에 관해 논의하고 일제 기관의 파괴 및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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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류세진은 1886년(고종 23)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의 전주류씨 동성마을인 무실마을에서 태어났다. 1910년 나라가 일제의 의해 무너지자, 류세진은 독립운동을 위해 1919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 및 개원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22년 11월경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남만주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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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또 다른 이름은 류원해(柳原海)이다.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류시보(柳時保)의 아버지이다. 1907년(순종 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류소우는 아들 류시보, 조카 류시훈(柳時薰)과 같이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2년 4월 15일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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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류소우(柳炤佑)이다. 1925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94년 사망하였다. 류시보는 아버지 류소우와 함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42년 8월 13일 류시보는 중국 하남 개봉에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1지대 본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안동 출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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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1923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여 1989년 사망하였다. 류시승은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학생들이 주축이 된 학생 항일운동에 교사로서 참여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봉사를 강요당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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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또 다른 이름은 류해동(柳海東)·김세진(金世鎭)이다.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에서 출생하여 1945년 사망하였다. 류시언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 명령을 받고, 같은 해 다시 국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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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류소우(柳炤佑)의 조카이다. 1917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하였다. 류시훈은 작은아버지인 류소우, 사촌동생인 류시보(柳時保)와 같이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강제로 징병되어, 중국 제9전구로 이동 도중 탈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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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은(霞隱)이다.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1910년 자정순국한 류도발(柳道發, 1832~1910)이다. 1853년(철종 4) 6월 17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방동에 묘가 있다. 류신영은 철저한 풍산류씨의 가학(家學)에 의거하여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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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일도(一島)이다. 1892년(고종 2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서 출생하여 1951년 사망하였다. 류연건은 1914년 6월 이강래(李康來)·이승호(李承鎬)·김정빈(金正彬)·남정호(南廷鎬)·신언학(申彦學)·이승직(李承稷) 등과 서울에서 비밀회의를 하여 중화민국 총통 원세개(遠世凱)가 구한국공사로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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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서 태어났다. 류연덕은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안동 출신 김동삼(金東三)이 총장으로 있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참여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0년 일제의 간도 출병 이후 남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보다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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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심(景深), 호는 수촌(水村)이다. 아버지는 안동의진에 참여한 류지호(柳止鎬, 1825~1904)이다. 1844년(헌종 10)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25년 사망하였다. 류연박은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제자로 1882년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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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만(成萬), 호는 신와(愼窩)이며, 또 다른 이름은 차기원(車淇源)이다. 1890년(고종 27)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류연복은 1907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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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옥(景玉)이다. 아버지는 안동의진에 참여한 류지호(柳止鎬, 1825~1904)이며, 류연박(柳淵博, 1844~1925)이 형이다. 1857년(철종 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류연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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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겸여(謙汝), 또 다른 이름은 류양범(柳良範)이다. 1901년(고종 38)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92년 사망하였다. 류연익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였으며,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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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래(聖來), 호는 동산(東山). 1865년(고종 2) 안동 동후면(東後面, 지금의 예안면) 주진동 삼산에서 류필영(柳必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류기영(柳祈永)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류필영은 퇴계 학통을 계승한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유림들의 항쟁인 파리장서의거에 참여했다가 투옥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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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제우(濟佑), 또 다른 이름은 류벽우(柳碧佑)이다. 1897년(고종 34)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류점등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27일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류점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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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867년(고종 4) 전주류씨 동성마을이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출생하여 1933년 사망하였다. 류정희는 1910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너지자, 이에 분개하여 상복(喪服)과 죽립(竹笠)을 쓰고 은거하면서 민족적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그리고 1912년 일본 왕(王)이 사망하였을 때, 일제가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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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884년(고종 2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류창우는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에서 3·1 만세운동이 펼쳐지자, 192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곳에서 류창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이향(李香)을 통해 재무총장 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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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산(豊山). 1918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류택하는 서울에 있는 경성공업학교에 다녔는데,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1935년 7월 재학생인 김임형(金林瀅)·김종천(金鍾千) 등과 함께 이재유(李載裕)와 연락하여 비밀결사 ‘아학교(我學校)’를 결성하였다. 1937년 12월에는 독립과 아울러 공산 사회의 실현을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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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운(景運), 호는 서파(西坡). 아버지는 동산 류정진(柳定鎭), 어머니는 예천권씨(醴泉權氏)로 권교상(權敎相)의 딸이다. 아들은 독립운동가인 동산 류인식(柳寅植)이다. 1841년(헌종 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출생하여 1924년 사망하였다. 현재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 묘가 있다. 류필영은 류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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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류하영은 1900년(고종 3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에서 출생하여 1973년 사망하였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늘 근심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류하영은 3월 22일 예안면 2차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 2차 만세 시위는 3월 22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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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또 다른 이름은 류동붕(柳東鵬)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전주류씨 동성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묘가 있다. 류후직은 1907년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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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도석은 본관이 남평(南平)으로 1882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오(聖吾), 호는 국사(菊史)이다. 196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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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우석은 본관이 남평(南平)으로 1894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제민(濟民), 호는 송음(松陰)이다. 1955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선산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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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치무는 본관이 남평(南平)으로 1877년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신월리에서 태어나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로 이사하였다. 자는 성빈(聖斌), 호는 의재(義齋)이다. 1942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갈음계곡 중턱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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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태규는 본관이 여흥(驪興)으로 1882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6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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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석은 1899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원인 이현수(李賢壽)는 국내에 들어와 항일 인쇄물을 제작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국내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을 맡고 있었다. 이에 박기석은 이현수의 활동에 동참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동군 교통사무특파원으로 임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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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성경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880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다. 1969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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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항일운동가. 박재선은 1881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박재선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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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식은 1888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박재식은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과 함께 임동면 편항시장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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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진성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877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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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진해는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894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남포(南圃)이다. 1951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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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춘근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889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상(春常)이다. 192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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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해옥은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1921년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서 태어났다. 198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 안동 출신의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1944년 일제에 징병된 뒤 중국 제9전구로 이동하다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편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도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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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근석은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3년 4월 강원도 춘천의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3학년 재학 중 남궁태(南宮珆)·용환각(龍煥珏)·이찬우(李燦雨) 등이 조선의 독립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 결사 상록회(常綠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7년 3월 14일 결성한 상록회는 조선 민족 해방을 위하여 진정한 조선인 양성과 회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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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동환은 1919년 음력 12월 차경석(車京錫)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 교단(敎團)에 가입하여 종교 활동을 표방하면서 나라를 되찾는 데 노력하는 한편, 경상북도 지역에서 흠치교 신도를 모집하여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배동환은 1924년 ‘갑자년(甲子年)이 되면 흠치교의 힘으로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 모집 및 포교에 힘을 쏟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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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승환은 1885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6월경부터 지린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독립군을 모집하기 위해 경상북도 지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던 최재화(崔載華)로부터 무관학교 생도를 모집하라는 명령을 받고 권원하(權元河)·이재영(李縡榮)·조태연(趙台衍)·권재수(權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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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영진은 본관이 흥해(興海)로 1864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희안(希顔), 호는 백봉(白峰)이다. 1919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배영진은 조국 독립에 투신하고자 1912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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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태근은 1871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갈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배태근은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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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혁모는 본관이 흥해(興海)로 1875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조(聖助)이다. 1960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개일산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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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재수는 본관이 달성(達成)으로 1898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64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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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성길(成吉), 호는 고엄(叩嚴)이다. 1927년 경상북도 안동시 옥야동에서 태어났다. 서정인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10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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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돌이는 1891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중 손돌이는 임하면 금소리와 신덕동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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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극선(極善)이다. 1883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손두원은 김필락(金珌洛)·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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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성한은 본관이 경주(慶州)로 1928년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다. 1945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에 있다. 손성한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임과(林科) 10회생으로 입학한 뒤 학생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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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오(省梧), 호는 자여(自餘)이다. 1895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다. 손영학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김필락(金珌洛)·손두원(孫斗源)·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 무렵 시위 군중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면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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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치공(穉鞏), 호는 해창(海窓)이다. 187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서 태어났다. 1913년 송천동에 설립된 봉양서숙(鳳陽書塾)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송기식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안동면 2차 시위는 안동교회와 송기식을 비롯한 유림들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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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비성(斐成), 호는 천사(川沙)이다. 189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서 태어났다. 송천동에 묘가 있다. 일찍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송장식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1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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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홍식은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석동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를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면 만세시위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즉 1차는 3월 13일, 2차는 3월 18일, 3차는 3월 23일이었다. 이 가운데 송홍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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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화(舜和), 호는 창산(滄山)이다. 188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동부리에 묘가 있다. 신동희는 1911년 일본 수묵관(修黙館)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그는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1919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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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혁세(赫世)이다. 188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동부리에 묘가 있다. 신상면은 예안면 서부리에 설립된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수학한 후 예안면사무소 면장으로 재직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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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상선(相善)이다. 189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구룡리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에 묘가 있다. 신상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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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구송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근심하던 신응두는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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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언(大彦). 1879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묘가 있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근심하던 신응숙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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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월(寧越).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신필원은 일찍이 쓰러져 가는 나라를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만세시위가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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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성노(聖老)이다. 189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항상 걱정하며 청년 시절을 보내던 안병극은 1910년 나라가 무너지고,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통해 무너진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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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한유(漢有), 아호는 차강(次康)이다. 189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승국이며, 안상훈(安相勳)의 형이다. 안상길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1915년이다. 그는 대구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광복회를 지원하는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발을 들여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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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응방(應放), 호는 회산(晦山)이다. 아버지는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했던 안승국(安承國)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던 안상길(安相吉, 1892~1958)이 형이다. 189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안상훈은 어릴 때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3년경부터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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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경단(敬端)이다. 188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유상선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 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 지역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안동·예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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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874년(고종 1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에서 태어나 1945년 사망하였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묘가 있다. 이강욱은 한문을 수학하며 쓰러져가는 나라를 늘 걱정하다가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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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사익(士翼), 호는 자화(子華)이며, 또 다른 이름으로 이문형(李文衡)·이영형(李永衡) 등이 있다. 석주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의 조카이다.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에서 출생하여 1946년 사망하였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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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85년(고종 22)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나 1942년 사망하였다. 이광호는 1919년 당시 예안면사무소 서기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그는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안동의 3·1 만세 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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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8년(고종 35) 지금의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와룡면 서지리 195번지로 이주하여 살다가 1942년 사망하였다. 이극모는 1919년 예안면의 3·1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의 만세 시위는 면장 신상면(申相冕)의 발기에 의하여 이시교·이남호·이광호·이호명·신응두·신동희 등이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시위 계획을 논의하였고, 조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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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성용(聖用)이다. 1891년(고종 28)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0번지에서 출생하여 1938년 사망하였다. 이극호는 1919년 3월 17일 안동시 예안면에서 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의 주도로 일어난 예안면의 1차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예안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격렬한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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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또 다른 이름은 이목연(李穆淵)이다. 1847년(헌종 13)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에서 태어나 1925년 사망하였다. 이긍연은 안동의진에 참여하여 일제와의 항쟁에 나섰다. 안동 지역에서는 1895년 을미사변의 소식이 전해지자 반개화·반침략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어 단발령이 내려지자 의병 조직의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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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88년(고종 2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37번지에서 출생하여 1933년 사망하였다. 이기호는 1919년 3월 안동시 예안면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도산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마침 예안면 시위에 참가했던 이용호·이극호와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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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0년 4월 8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 313번지에서 출생하여, 후에 예천으로 이주하였다가 2005년 사망하였다. 이남직은 1937년에 안동공립농업학교 재학생이었는데, 항상 조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같은 학교 학생인 송필학(宋必鶴)에게 편지를 보내어 독립운동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1939년 1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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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82년(고종 1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삼계리에서 출생하여 1934년 사망하였다. 이남호는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예안면에서의 만세 시위는 면장 신상면(申相冕)의 주도 아래 일어난 것이 특징인데, 당시 예안면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남호는 면장 신상면·이중원·신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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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8년(고종 2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616번지에서 출생하여 1940년 사망하였다. 이대기는 비밀결사 단체인 의용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의용단은 1921년 안동 지역을 필두로 한 영남 지방의 인사들이 만주 길림의 서로군정서의 뜻에 호응하여 군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체이다. 1922년 10월 이대기는 이응수·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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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대녕(李大寧)은 1926년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8월경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안동농림학교 제8회인 이대녕을 비롯한 안동농림학교의 제8~10회 학생들은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 그곳에서 항일 결사체인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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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덕숙(李德淑)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다른 이름은 이선우(李宣雨)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수상동에서 태어났으며, 묘소는 수상동 건직곡(乾直谷) 공동묘지에 있다. 이덕숙은 1915년 처형을 따라 고향인 안동을 떠나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1920년 4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교성대(敎成隊)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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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동봉(李東鳳)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가견(可見)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애산사숙(愛山私塾)과 도산면 서부리에 있는 선성의숙(宣城義塾)에서 공부하였다. 이동봉은 이용호(李用鎬),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등과 함께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가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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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백농(伯農·白農)이다. 이동후(李東厚)·이원식(李元植)·이철(李轍)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동하는 일찍이 서울에 있던 계산학교(桂山學校)의 교사를 지냈고, 대구협성학교(大邱協成學校)의 교감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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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동학(李東學)은 192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1938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적극적인 무장 항쟁을 결정하였고,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안동 출신으로 광복군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이동학을 비롯하여 권준호·권오복·김영춘·박해옥·류소우·류시보·류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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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인길(人吉)이며, 호는 이고(貳顧)이다. 할아버지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단식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고, 아버지는 파리장서의거(제1차 유림단 의거)의 주역으로 활동한 이중업(李中業)이다. 1881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67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동흠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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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창(平昌). 1901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28년 향년 2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규탄하며 극렬한 기세로 행해졌던 민족의 항거 소식은 안동군 임동면에까지 당도하였고, 특히 3월 17일과 18일에 일어난 예안면 시위와 안동면 시위 소식은 임동면민들의 분발을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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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호(李齡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다. 1893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0년 국권 피탈에 반대하여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李晩燾)의 친척이다. 이영호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던 시절부터 국권 회복을 위한 일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본 제국주의의 사악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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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순칙(順則), 호는 류천(柳川)이다. 184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21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0년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李晩燾)의 동생이다. 이만규는 1910년 일찍이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하고 조카 이중업과 뜻을 같이 해 파리장서의거에 유림의 일원으로 서명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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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양오(養吾)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맹호는 조수인(趙修仁), 김진휘(金鎭暉) 등 지역 유림들과 더불어 예안면 시위를 계획, 주도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 17일 이맹호는 예안면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의 과격한 진압으로 부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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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응오(應五)이며, 호는 학산(鶴山)이다. 다른 이름은 이협(李鋏)이다. 1879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1월 25일 향년 41세로 중국 유하현(柳河縣)에서 순국하였다. 1906년(고종 43) 안동군 주사로 임명되었으며, 재직 시 이상룡·권세연 등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다가 구류된 적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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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발호(李發鎬)의 다른 이름은 이대일(李大一)이다. 1901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47년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발호는 1925년 3월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와 안동청년동맹과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3월 안상윤, 이필, 권중택 등을 주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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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 향년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린은 예안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를 주도하였다. 1차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 주도하여 일어났는데, 당시 면서기로 근무하던 이병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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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이대용(李大用)·이계오(李桂五)·이탁(李拓)·이경천(李慶天)·이병화(李秉華)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자는 경천(敬天)이고, 호는 소파(小坡)이다. 할아버지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이다. 1906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52년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병화는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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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이계동(李啓東)·이상훈(李相勳)·이상희(李相熙)·이경식(李京植)·이기동(李基東)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덕초(德初)이고, 호는 척서(尺西)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향년 70세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사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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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자승(子承), 호는 백저(白底)이다. 189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면 시위는 이용호(李用鎬),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등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가했다가 서울의 시위를 직접 보고 돌아온 뒤 계획, 준비되었다. 이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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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태중(台仲)이다. 1877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54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면 시위는 진성이씨, 영천이씨, 횡성조씨, 우계이씨, 예안김씨 등 지역 유림 세력의 영향이 컸다. 이 중 영천이씨 가문에서는 이삼현과 이유홍(李裕弘)이 시위에 참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삼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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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다른 이름은 이용희(李龍羲)이다. 자는 건초(健初), 호는 만진(晩眞)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5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동면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에 거행될 예정이었으나 기획 단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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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이며, 호는 석주(石洲)이다. 초명은 이상희(李象羲)이나, 1911년 만주 망명 이후 이상룡(李相龍)으로 개명하였으며 계원(啓元·啓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문적으로는 퇴계 학통을 계승한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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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903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이선호는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3학년에 다니던 1925년 9월 27일 이병립(李炳立), 이천진(李天鎭)과 함께 항일 단체인 조선사회과학연구소를 창립하여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과학운동』을 발행하였다. 1926년 4월 26일 순종의 서거 소식을 듣고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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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경양(景陽)이다. 1884년 지금의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야산에 있다. 2차 안동면 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안동 유림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8일 장날을 이용하여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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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연(李承淵)은 1889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동면 시위의 영향으로 1919년 3월 21일에 임동면, 임하면, 길안면, 일직면에서 만세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는 3월 초 고종 인산에 참가했다가 귀향한 류동시(柳東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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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여중(汝中), 호는 담옹(淡翁)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과 5촌간으로, 1876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다. 이승화는 1909년(순종 3) 이상룡과 김만식(金萬植)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협회 안동지회에 가입하여 구국 계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1년 이상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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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시교는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당시 잠업순회교사로 일하던 이시교는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을 비롯하여 이중원, 신응두, 신동희 등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만세 시위를 논의, 계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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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1896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2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서후면 이개리 공동묘지에 있다. 이암회는 1919년 3월 18일 2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한 데 이어 3월 23일 발생한 3차 안동면 시위에도 참여하였다. 3차 안동면 시위는 안동면민뿐만 아니라 안동 관내의 여러 주민들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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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열호(李烈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경재(敬哉)이며, 호는 일농(一儂)이다. 1893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77년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면 시위는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가했다가 서울의 시위를 직접 보고 돌아온 이용호(李用鎬)를 비롯하여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등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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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호(李寧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32년 향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영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에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 참여하였다. 예안면 시위는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이 3월 11일 밤 9시에 이시교(李時敎)를 비롯하여 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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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호(李用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국빈(國賓)이며, 호는 성헌(省軒)이다. 187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3월 17일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와 3월 18일 도산면에서 벌어진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예안면장인 신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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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운형(李運衡)은 본관이 고성(固城)이고, 자는 중약(重若)이며, 호는 백광(白光)이다. 1892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이다. 이운형은 1907년 세워진 경상북도 북부 지역 최초의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1기로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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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운호(李雲鎬)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춘강(春岡)이다. 1893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운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장터에서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광호·이동봉 등의 주동자와 함께 일본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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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기(李源祺)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수경(壽卿)이며, 호는 일하(一荷)이다. 1899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향년 44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육사(李陸史)의 맏형이다. 이원기는 1920년 고향인 안동을 떠나 대구시 남산동 662번지로 옮겨 살았다. 여섯 형제의 맏이로 태어나 많은 식구들을 거느리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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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영(李源永)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호는 봉경(鳳卿)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서 태어났으며, 1958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영은 1909년(순종 3) 예안의 진성이씨 문중 학교인 보문의숙을 다녔으며, 1911년 3월 졸업하였다. 이후 예안의 유림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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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일(李源一)은 본관이 진성(眞城)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일은 1911년 사돈인 일송 김동삼(金東三)과 함께 고향인 안동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여, 같은 해 4월 삼원포에서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는 등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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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혁(李源赫)은 1890년 10월 21일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혁은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일청영어학교(日淸英語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그 후 시대일보사를 경영하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지향하는 잡지인 『조선지광(朝鮮之光)』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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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유홍(李裕弘)은 본관이 영천(永川)이고, 자는 의경(毅卿)이며, 호는 백오(百五)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유홍은 1919년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독립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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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육사(李陸史)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본명은 이원록(源祿)·이원삼(源三)이며, 자는 태경(台卿), 호가 육사(陸史)이다. 190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태어났다. 묘소는 도산면 원촌리 이육사문학관 뒷산에 있다. 보문의숙(寶文義塾)의 초대 교장을 지낸 이중직(李中稙)이 할아버지이다. 이육사는 고향 마을에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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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응팔(李應八)은 본관이 예안(禮安)이고, 자는 관선(寬善)이며, 호는 장암(長岩)이다. 1897년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태어났으며, 1938년 향년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예안면 동천리 불미골에 있다. 1919년 3월 17일과 18일의 예안면 시위 및 안동면 시위의 영향으로 3월 21일이 되자 임동면을 비롯하여 임하면·길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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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홍(李仁洪)은 본관이 성주(星州)이다. 1901년 지금의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2차 안동면 시위는 기독교 인사들과 안동 유림에 의해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1919년 3월 18일 장날을 이용하여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 주도하던 시위대와 안동 유림이 지휘하던 시위대가 서로 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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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영(李鍾韺)은 본관이 고성(固城)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향년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종영은 안동 지역에서 대한광복회에 참가한 대표적인 인물로,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 박상진을 중심으로 한 조선국권회복단과 채기중을 중심으로 한 풍기광복단이 만나 대구 지역을 본거지로 조직된 비밀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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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홍(李鍾洪)은 본관이 우계(羽溪)이고, 자는 기오(箕五)이며, 호는 백민(白民)이다. 1869년 지금의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종홍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서 이동봉·이광호의 주도로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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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흠(李棕欽)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호는 반산(泮汕)이다. 1900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으며, 1976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단식 순국한 향산 이만도(李晩燾)이고, 아버지는 파리장서의거(제1차 유림단 의거)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던 이중업(李中業)이다. 형인 이동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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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주헌(李主憲)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훗날 안동시 광석동으로 옮겨 살았다. 이주헌은 1943년 8월 무렵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의 제8·9·10회 학생들이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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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태(李準泰)는 본관이 예안(禮安)이고, 호는 학암(鶴巖)·일강(一岡)·일봉(一熢)이다. 1891년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에서 예안이씨 21세손 이수학(李洙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준태는 1909년 안동금곡측량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서울에 있는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 금공과(金工科)를 마쳤다. 이후 임시토지조사국 사무원급기술양성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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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준형(李濬衡)은 본관이 고성(固城)이고, 이재섭(李在燮)·이중조(李中組)·이동고(李東皐)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문극(文極)이며, 호는 동구(東邱)이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아들이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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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중무(李中珷)는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다른 이름은 이중빈(李中斌)이며, 자는 열경(烈慶)이다. 1881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서 태어났으며, 1957년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중무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서 이동봉·이광호의 주도로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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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기암(起巖)이다. 아버지는 1910년 자정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다. 이중업은 186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24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인 김락은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의 누이로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였다. 이중업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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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순팔(順八)이다. 1885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5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중원은 1908년 3월 15일 재경 영남 인사들이 창립한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회원으로 참여하여 안동 지역의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이중원은 1919년 3월 17일에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예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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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또 다른 이름은 이지호(李之乎)이다. 190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서 태어났다. 이지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를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0년대에 들어와 그는 청년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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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8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 160번지[마령골마길 86]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진범은 이 가운데 임동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임동면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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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칠성은 187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132번지[고천지촌로 291]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칠성은 이 가운데 1919년 3월에 안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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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 633번지에서 태어난 이학우는 1920년 8월에 흠치교에 가입하여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흠치교는 안동 지역에서 차경석을 교주로 하여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던 단체로 경상북도 일대에서 빠르게 세를 확산하였다. 이들 조직은 교주 밑에 60인의 고문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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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창(平昌). 또 다른 이름은 이회동(李悔東)이다. 1896년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현재의 안동시 예안면 선양리 66번지로 이주하였다. 1907년 임하면 천전리에 세워진 협동학교를 졸업한 이해동은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 예안장터에서 이동봉과 이광호의 주도 하에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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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희겸(希謙), 호는 혜인(兮人)이다. 186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교리에서 태어났다. 이현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 일대에서 의병항쟁에 참여하였고, 1910년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자결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현구는 나라 없는 백성이라 자처하고 산촌을 전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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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순국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서규(瑞圭), 호는 우헌(愚軒)이다. 184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 원당에서 태어나 도산면 토계리로 옮겨 살았다. 묘는 2008년 5월 15일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이현섭은 어려서부터 언제나 의리를 앞세워 실천하고 남을 위한 참된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과단성 있게 처리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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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시윤(時尹), 호는 창해(滄海)이다. 아버지는 1919년 3월 안동에서 단독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던 이상동(李相東)이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로,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이형국은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1911년 1월 무렵 백부(伯父) 이상룡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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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이명은 이호준(李鎬駿)이다. 189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호준은 이 가운데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예안면 1차 시위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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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성(眞城). 1891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이회림은 이 가운데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동봉,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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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경무(景武), 호는 취산(翠山)이다. 이회식은 1892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다. 묘는 풍산읍 만운리에 있다. 이회식은 1923년 11월에 안동시 풍산 일대에서 결성된 풍산소작인회에 가입하여 지세공과금과 소작료 인하 문제를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투쟁하였다. 풍산소작인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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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예안(禮安). 188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하리에서 태어났다. 이회원은 1923년 11월 안동시 풍산 일대에서 조직된 풍산소작인회에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봄 대규모로 전개된 소작료 인하 운동에 앞장섰던 이회원은 소작권 문제로 대지주와 일본인 지주들의 탄압에 항거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19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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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예천(醴泉). 임석이(林石伊), 임병칠(林秉七) 등으로도 불렸다. 189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4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임돌이는 이 가운데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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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맹여(孟余)이다. 임동숙은 188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437번지[금소중앙길 26-1]에서 태어났고,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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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임동휴(林東烋)·임덕수(林德銖)·임덕련(林德鍊)이며, 자는 여일(汝一), 호는 경포(鵛浦)이다. 189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했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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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범섭(林汎燮)은 본관이 예천(醴泉)으로, 이명은 임범섭(林範燮)이고, 자는 우석(禹昔)이며, 호는 남당(南堂)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영양군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범섭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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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우민(林又民)은 본관이 예천(醴泉)이고, 자는 여일(茹一)이며, 호는 만문(晩聞)이다. 190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고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75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우민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 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몰려갔다. 300여 명의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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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윤익(林潤益)은 본관이 울진이고, 이명(異名)은 임종열(林宗烈)이며, 자는 주현(周顯)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임하면 오대리 냉천곡(어대골)마을에 있다. 임윤익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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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지열(林志烈)은 본관이 울진(蔚珍)이다. 190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2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지열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시작하여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몰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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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찬일(林灒逸)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이명(異名)은 임상열(林尙烈)이다. 자는 국삼(國三)이며, 호는 송원(松園)이다. 189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안동시 임하면 오대2리 뒷산 나천곡에 있다. 임찬일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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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춘섭(林春燮)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자는 군현(君顯)이며, 호는 명열(明烈)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춘섭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시위에 참가하여, 저녁 무렵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시위 행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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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호일(林浩逸)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이명(異名)은 임무열(林武烈)이다. 자는 국윤(國允)이며, 호는 소은(昭隱)이다. 189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호일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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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두희(張斗熙)는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광필(光必)이다. 1883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1930년 향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3월 21일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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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에서 태어났다. 장병하는 안동농림학교 농과 9회 졸업생으로 1943년 8월경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의 제8~10회 학생들이 대구 동촌비행장 확장공사에 동원되었을 때, 그곳에서 조직한 항일결사체로 단순히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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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성철(全聖哲)은 본관이 용궁(龍宮)이고, 이명(異名)은 전성영(全聖永)이며, 자는 덕수(德修)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성철은 1919년 3월 23일 3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3차 안동면 시위는 안동군민들이 대거 참가하여 군 전체가 벌인 만세 시위로 일본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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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성흠(鄭成欽)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다. 187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으며, 1952년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성흠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고종의 인산에 참가하고 돌아와 동향 출신인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3월 21일 길안면 천지장터에서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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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유복(鄭有福)은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복여(復汝)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하면 오대리에서 목수일을 하고 있던 정유복은 1919년 3월 21일 천지장터에서 일어난 길안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이 이끄는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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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치문(鄭致文)은 본관이 동래(東萊)이다. 1891년 지금의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문은 1919년 3월 17일 예안장날을 이용하여 일어난 1차 예안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동봉과 이광호가 이끄는 시위 군중과 함께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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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한모(鄭漢模)는 본관이 동래(東萊)이고, 정섭모(鄭燮模)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자는 운서(雲瑞)이며, 호는 청암(聽菴)이다. 1903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현하리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한모는 1920년 음력 9월 태을교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태을교는 차경석을 교주로 하여 표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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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현모(鄭賢模)는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호는 춘강(春江)이다. 1926년 지금의 안동시 삼산동에서 태어났으며, 1982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현모는 1943년 경주중학교에 다니면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4년 4월 이정선·권태염·권오봉 등과 더불어 비밀 결사인 명성회(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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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방인(趙邦仁)은 본관이 횡성(橫城)이고, 자는 안중(安仲)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향년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방인은 예안 지역의 유림 세력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병건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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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건(趙炳建)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91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병건은 예안 지역의 유림 세력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방인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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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복선(趙卜先)은 본관이 함안(咸安)이고, 조복선(趙福先)·조상선(趙相善)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복선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면서 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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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사명(趙思明)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76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귀단리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사명은 예안 지역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趙修仁)을 도와 조맹호·김진휘·조방인 등과 결의하여 1919년 3월 17일 1차 예안면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 예안장터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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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수인(趙修仁)은 본관이 횡성(橫城)이다. 1881년 지금의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안 지역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은 1919년 3월 8일 무렵 서울에 있던 손병희에게서 서신을 받고 김진휘·조병건·이원영·조맹호·조방인 등과 의논하여 3월 17일 예안장날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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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승락(千承落)은 본관이 영양(潁陽)이고, 이명(異名)은 천양쇠(千梁釗)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천승락은 1919년 3월 21일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독자적으로 준비되었지만, 3월 17일 일어난 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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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치락(千致洛)은 본관이 영양(潁陽)이고, 자는 향양(鄕陽)이며, 호는 일송(一松)이다. 1876년 지금의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천치락은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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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도준(崔道俊)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자는 상준(相俊)이며, 호는 임정(臨庭)이다. 1887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도준은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시위는 독자적으로 준비되었지만, 3월 17일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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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인현(崔仁賢)은 1903년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절강리에서 태어났으며, 1954년 향년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인현은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모색하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9월 말 경상북도 김천군 대항면 주례동에 위치한 삼성암(三聖庵)에서 정홍권(鄭弘權)·남진희(南珍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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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종민(洪鍾民)은 홍홍윤(洪洪潤)을 비롯하여 진영수(陳永洙)·이무(李武)·이유(李有) 등 여러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지내리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 당시에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192번지에 거주하였다. 1969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종민은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망명하여 한국독립군과 한국민족혁명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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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영남(黃永南)은 본관이 평해(平海)이고, 이명(異名)은 황기실(黃基實)이며, 자는 병선(丙善)이다. 1885년 지금의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향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남후면 개곡리 공동묘지에 있다. 황영남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2차 안동면 시위에 참가하였다. 2차 시위는 안동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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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인규(黃仁圭)는 본관이 창원(昌原)이다. 1875년 지금의 안동시 법상동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황인규는 1919년 3월 18일 김병우·김익현·권점필 등과 함께 2차 안동면 시위를 결의한 뒤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시위 당일 기독교인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