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55 |
---|---|
한자 | 安相勳 |
영어음역 | An Sanghun |
이칭/별칭 | 이중원(李重元),이상기(李相基),바또르꼬프,응방(應放),회산(晦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
---|---|
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
성별 | 남 |
생년 | 1898년 |
본관 | 순흥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개설]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응방(應放), 호는 회산(晦山)이다. 아버지는 광복회에 군자금을 지원했던 안승국(安承國)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던 안상길(安相吉, 1892~1958)이 형이다. 1898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안상훈은 어릴 때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23년경부터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와룡청년회·안동청년연맹 등에 참여하였다. 또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결성에 참여했고, 10월경에는 고려공산청년회에서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년 동안 유학하였으나 1927년 7월 공산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제3국제공산당으로부터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하니 종래의 조선공산당을 해산시켜 분쟁을 청산하고 조선공산당을 재조직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에 안상훈은 1929년 3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에서 김영만(金榮萬)의 발의를 기초하여 김철수(金洙)·윤자영(尹滋英)·강문수(姜文秀)·주봉(朱奉)·최병욱(崔秉旭) 등과 만나 조선을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시킬 목적으로 조선공산당 재조직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같은 해 4월 만주를 거쳐 귀국하여, 서울에서 이준열과 만나 조선공산당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였다. 다시 안상훈은 부산에서 김형기(金炯璣)라는 사람에게, 4월 중순경에는 고향인 안동 와룡면에서 안상경(安相坰)·김국진(金國鎭)에게 계획을 전달하는 등 조선공산당의 재조직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 활동으로 1929년 6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1년 9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