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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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星 |
영어음역 | Gim Eungseong |
이칭/별칭 | 덕우(德宇),청헌(淸軒)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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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
성별 | 남 |
생년 | 1890년 |
몰년 | 1960년 |
본관 | 안동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우(德宇), 호는 청헌(淸軒)이다. 1890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김응성은 젊은 시절에는 한문을 수학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고종 황제의 죽음으로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펼쳐지자 이것을 기회로 나라를 되찾고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에서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김응성은 1919년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임동면 만세시위는 류연성(柳淵成)·류동수(柳東洙)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장날인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장터에 모인 시위 군중을 이끌면서 전개되었다. 이들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부르며 건물을 공격하는 등 과감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김응성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