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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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徵魯 |
영어음역 | Gim Jingro |
이칭/별칭 | 성방(聖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한준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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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
몰년 | 1948년 |
본관 | 의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징로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94년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성방(聖邦)이다. 194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다.
[활동사항]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김징로는 임하면 금소리와 신덕동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임하면 만세 시위는 금소리 출신의 임찬일(林贊逸)이 임범섭(林範燮)·임득연(林得淵) 등과 고종의 국장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구해 오면서 준비되었다. 이들은 3월 16일 길안면 장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했다가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3월 21일로 연기하였다.
거사 날인 3월 21일 저녁, 김징로는 100여 명의 금소리 주민들과 면 소재지인 신덕동으로 향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고, 밤 9시 무렵에는 주재소로 밀고 들어가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서류를 파기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