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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부터 광복 이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김천은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혁에서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은 모두 군으로 되었고, 1905년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다음 해에 성주군 신곡면(薪谷面)과 황간군(黃澗郡) 남면이 김산군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이 김천군으로 통폐합되었다. 1917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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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49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지례현과 개령현을 각각 지례군, 개령군으로 바꾸고 이들 두 군(郡)과 김산군(金山郡)을 통합하여 김천군(金泉郡)을 신설하였다. 김천군은 20개 면을 관할하였고 경상북도에 예속시켰다. 김천이란 지명은 원래 김산군 관할의 김천면이었는데, 점차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되자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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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1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김천’이라는 이름은 고려 초 전국에 역을 설치하면서 이곳에 김천역이 설치됨으로써 비롯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김산군, 지례군, 개령군 세 개 군을 합쳐 김천군(金泉郡)이 되었다. 김천군 아래에 김천면, 금릉면 등 20개 면이 설치되었다. 김천면이 점차 도시 형태를 갖추면서 1917년 김천특별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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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부터 1931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별면. 1917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김천을 특별면으로 지정하였다. 이때부터 한국인 면장 대신에 일본인 면장을 두게 되었다. 김천의 일본인 사회는 지방 출신 인물이 면장이 되기를 바랐으나, 기대와 달리 지방과 관련이 없는 스즈오카 세이이치[鈴岡正一]이 취임하였다. 면장의 상담역으로는 모리모토 오토지로[森本音次郞],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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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칙령 제98호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지례현이 지례군이 되었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 “고종 37년 경자(1900) 3월 13일[을묘, 양력 4월 12일] …… 지례군수(知禮郡守)에 김희원(金煕元)을 임용하였다.”라는 기...
사건·사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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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에 의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에 시달려왔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사적으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였고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 있었다. 이런 국내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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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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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의 한 흐름으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운동. 대한제국 정부 시기인 1905~1910년에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이 식산흥업 운동과 교육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중 교육 운동은 정부와 민간의 합동으로 근대식 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관립학교 및 사립학교의 설립이 크게 활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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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의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이 벌인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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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외채 상환 운동.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갚아 자주권을 수호하려고 1907년에 시작된 운동이다. 1907년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대한 외채가 1300만 원에 이르렀고, 국가 재정으로는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경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여 차관을 늘려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켜 나가려 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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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있었던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 운동.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으로 인해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895년 8월 일본에 의해 을미 명성왕후 시해 사건이 있었고, 11월에는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에 각지의 유림들이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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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독립 운동. 일제 강점기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도 일제의 침탈에 맞서 민족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개항 이후부터 한일 병합 조약에 이르는 시기에는 국권 수호와 회복을 위한 운동으로 의병 전쟁과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1910년 국권 피탈 이후로 이러한 국권 회복 운동은 조국 광복을 위한 민족 독립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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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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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포함하여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사회 운동. 3·1 운동 이후 민족 운동 상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김천은 경상북도 지방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 중 한 곳이었으며, 대표적 공산주의자인 김단야(金丹冶)[본명은 김태연]와 황태성(黃泰成)[이명은 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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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 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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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용두동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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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최무길(崔武吉)의 주도로 벌인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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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김천공립보통학교 학생 임원성이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낸 편지로 인해 일어난 사건. 1921년 2월 4일 김천공립보통학교[지금의 김천초등학교] 2학년생[당시 17세] 임원성이 ‘대한 독립 만세 일본 패망’이라고 쓴 글을 박문학이라는 가명으로 일본군 헌병 분대에 보냈다. 이 투서를 임원성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서소에서 사용하는 용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 적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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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4월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가 조직된 사건.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는 1931년 2월 임종업(林鍾業), 조관제, 나정운, 백락도(白樂道) 등이 적색청년동맹, 적색노동조합, 적색농민조합 등을 조직하였으나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좌절된 뒤 1933년 4월 이병일(李秉一), 백락도, 나정운 등이 김천 지역 사회 운동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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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가 제창되었다. 이런 국내외적 정세는 민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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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김천 출신을 비롯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보낸 사건. 1919년 3·1운동 이후 유림 세력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에 유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유림 세력은 곽종석(郭鍾錫)을 대표로 내세워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의 독립 요구를 밝히고 독립을 청원하기로 합의하였다.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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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 형평사 김천지사는 1922년 당시 김천군에 거주하던 백정들이 신분 해방을 위해 만든 인권 운동 단체였다. 창립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활동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1925년 김천군에서 면협의원 선거에 형평지사 회원이 개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내용은 면협의원 선거에 지역민들...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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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현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서 창설된 향약. 향약은 향촌 규약(鄕村規約)의 준말로, 향촌의 덕화 및 상호 협조를 위하여 만든 규약이다. 향약은 숭유 배불 정책에 의해 조선 시대 양반들이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 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는 등, 향촌 자치를 통해 하층민을 통제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각종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기 위한 규약이라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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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던 경상북도 미두검사소 김천 지역 지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주요 농산물은 미곡과 대두였다. 일제는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구축한 식민지 지주제를 기반으로 조선의 미곡 증산을 목표로 산미 증식 계획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생산된 미곡의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곡물 품질에 대한 검사가 요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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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된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일제 강점 전후 일제가 한국 경제를 식민지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설립한 금융 기관이다. 김천을 비롯한 지방 금융 조합 제도는 대한제국 정부가 아닌 메가다[目賀田]의 구상에 따라 재정고문부와 지부의 일본인 관리 주도로 추진되었다. 농공은행을 보조하여 지역의 금융 경색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금융 조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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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조선농회의 김천군 지역 단체. 김천군 농회는 조선농회령에 따라 1926년 4월 22일 군 농회로 조직되었다. 조선농회령은 조선총독부가 각종 농업 단체를 정리·통합하기 위해 1926년 1월 법령으로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통농회가 만들어졌으며 겉으로는 농업의 개량과 근대화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일제의 농업 정책 대행 기구로서 기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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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축산 조합. 김천군 축산조합은 지역 축산 농가의 자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15년에 만든 축산 조합으로 현 김천축산업협동조합의 모체이다. 1907년 김천의 축산 농가들이 축우의 증식과 가축 위생의 향상을 꾀하기 위해 민간단체로 김산군 조합(金山郡組合)을 만들었으며 행정 구역의 통폐합이 이루어진 뒤 1915년에 이르러 김천군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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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실업 단체의 사교 모임. 김천금요회(金泉金曜會)는 일제 강점기에 김천 지역의 금융·산업 기관 및 그 대표들의 친목 모임으로 설립된 단체로 정치적 성향을 띠지 않고 사업상의 상호간 친목을 증진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 모임에는 조선식산은행 김천지점, 선남은행, 김천금융조합, 금릉금융조합, 이등상회(伊藤商會), 김천무진회사, 조선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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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한 면정 자문 단체. 면 협의회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한국인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책으로 실시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면정의 자문을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즉 3·1운동 이후 일제가 헌병 경찰제와 회사령을 폐지하고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독립 만세 운동에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 의지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회유 조치의 하나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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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조직된 가마니 제작 조합. 일제강점기 가마니의 제작은 농가의 중요한 부업의 하나였다. 1914년 이래 수산(授産) 산업으로서 경상북도가 방침에 의해 적극적으로 제작을 장려하여 연차적으로 생산이 증가했으며 그 결과 1916년 김천군에서 김천가마니조합이 조직될 수 있었다. 김천가마니조합은 품질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생산품의 공동 검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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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사설 금융 기관. 김천 식산계는 1914년 무렵 각 지방에 금융 기관 설치가 성행할 때, 서울에서 내려 온 이윤용(李允用)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사설 금융 기관이다. 처음에는 계원을 모집하여 계금을 기금으로 대금 업무를 시작한 것이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어 예금 업무까지 겸하게 되어 금융 기관으로서 기능을 갖게 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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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있던 양잠 전습소. 1912년 무렵 김천의 시로이유[城井惟隆]가 지방비를 보조받아 금릉면(金陵面)에 사립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를 설립하고 군내 양잠업자의 자제들이 6개월을 교육 기간으로 하여 뽕나무의 재배와 양성 및 잠종 제조법에 관해 전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1915년에 이르러 당국이 은사수산비(恩賜授産費)로 사립 양잠전습소를 사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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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 거주 일본인들의 친목 단체. 김천 이육회(金泉二六會)는 1924년 1월에 김천 지역 거주 일본인들이 일본인 사회의 이해관계 증진을 위해 결성한 친목 단체이다. 김천은 경부선 철도 공사를 계기로 식민지 도시로 성장한 곳이었다. 따라서 당시 김천은 성장과 더불어 도시 개발에 필요한 사회 기반 시설의 확충이 반드시 요구되는 상황이었고 그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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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 단체. 김천청년동맹은 개인의 수양, 신교육 보급, 풍속 개량, 농촌 개량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1921년 8월 김천군에서 결성된 금릉청년회는 1923년 3월 문화계몽운동에서 사회주의적 노선으로 전환을 시도한 전조선청년당대회에 참가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청년 운동의 전국 지도 기관으로 결성된 조선청년총동맹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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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대구전매지국 김천 지역 출장소. 1921년 7월 조선전매령 실시와 동시에 대구 외 3곳에 전매지국이 설치되었다. 대구전매지국 김천출장소는 대구전매지국 관내에 4개의 출장소 중 한 곳으로 김천군 대화동에 설치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대구전매지국의 관할 구역은 경상북도 8개 군[김천군, 상주군, 선산군, 문경군, 성주군, 칠곡군,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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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대한독립후원의용단은 3·1운동 이후인 1920년 9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밀리에 조직되어 1922년 일제 관헌 당국에 탄압을 받을 때 까지 활동한 독립 운동 단체이다. 주요 활동은 독립 운동 자금과 독립 운동 활동가를 모집하여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주요 인물은 김찬규(金燦奎)·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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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일본 산음도산업주식회사의 지점. 산음도산업주식회사 김천지점은 1912년 일본의 산음도산업주식회사가 부산에 두었던 지점을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된 농장 경영 회사이다. 산음도산업주식회사는 러일전쟁 이후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사와 현회(縣會)가 주도하여 일본 사마네현[島根縣] 마쓰에[松江市]에 자본금 50만 원으로 1908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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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에 있는 성의중·고등학교와 성의여중·고등학교의 전신. 1894년 칠곡 왜관의 가실본당이 설립되어 초대 파이아스 신부와 2대 신부로 부임한 김성학 알렉시오 신부가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전교했다. 김성학 알렉시오 신부는 가실성당 재임 시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건의하여 김천에 성당을 건립하는 것을 허락받고 1901년 5월 27일에 김천본당[현 김천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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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간회의 김천 지회. 신간회는 1927년 2월 15일 경성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창립 대회를 가졌다. 창립 대회에서 신간회는 “1.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 1.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1.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내걸었다. 신간회는 단체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개인 본위의 조직이었으며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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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현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안서동의 동민들이 풍속 교화를 위해 만든 동약(洞約). 임진왜란 전까지 각 촌락에서는 사족 중심의 ‘동계(洞契)’가 존재하였다. 이는 일동의 동민이 일정한 규약을 통해 형성한 인위적인 조직으로 ‘족계(族契)’, 혹은 ‘동약’이라고 불렀다. 동계의 기능은 사족의 상부상조와 이를 통한 촌락 하층민의 통제에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경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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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의 지점.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0월 산업 개발을 위한 조선총독부의 금융 정책에 따라 설립된 장기 투자 금융 기관이다. 1906년 한국 칙령 제12호 은행 조령 및 칙령 제13호 농공은행 조령에 따라 자본금 14만 원으로 주식회사 대구농공은행이 설립되었다. 1908년 대구농공은행은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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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운수주식회사의 김천 지역 지점. 1930년 5월 김천 지역의 운송업자들은 1차 회합을 통해 통합을 결의하고 평화동 김천역 앞에 조선운수주식회사 김천출장소를 설치한 후 같은 달 16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통합과 더불어 운송업자들이 운영 방안 등 여러 문제로 인한 통합파와 비통합파 간의 갈등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이후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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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철도주식회사의 출장소. 조선철도 김천출장소는 일제 강점기 김천에서 안동을 이은 경북선 공사를 위해 조선철도주식회사가 김천에 설치한 출장소이다. 일제 강점기 초 김천의 일본인 중심의 상공인들은 경부선 김천역을 중심으로 북쪽의 경상북도 및 충청북도 일대와 남쪽의 경상남도 삼천포에 이르는 철도 부설을 김천 상공계 발전의 핵심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