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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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救國運動 |
영어음역 | Gyoyuk Guguk Undong |
영어의미역 | Education Movement for the N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개항기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의 한 흐름으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운동.
[개설]
대한제국 정부 시기인 1905~1910년에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이 식산흥업 운동과 교육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중 교육 운동은 정부와 민간의 합동으로 근대식 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져 전국적으로 관립학교 및 사립학교의 설립이 크게 활발하였다. 1907년부터 1909년 봄까지의 짧은 기간에 민간 차원에서 설립된 사립학교 수가 무려 3,000여 개교에 달했다.
[내용]
김천 지역에서도 광흥학교[지금의 김천초등학교 전신]를 비롯하여 13개교가 설립되었다. 일제의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계몽 운동 세력과 민중들의 교육 열의를 무시할 수 없게 되자 1908년 8월에 사립학교령을 제정하였다. 학교 설립은 민중의 힘으로는 현실적으로 설립이 불가능한 높은 기준의 시설로 학부대신의 허가를 받도록 했으며, 이미 인가된 학교도 학부대신의 재인가를 받도록 하면서 탄압하였다.
이에 기존에 설립된 3,000여 개의 학교 중 1,217개교가 재인가 신청을 냈으나 재인가 된 학교는 겨우 42개교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계몽 운동 세력과 민중들은 통감부의 교육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전국 지방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학교를 통합하여 큰 규모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토지를 기부하고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등 일제가 요구하는 시설 기준에 맞추어 나갔다.
그 결과 1909년 5월까지 1708개교가 재인가를 신청했으며 재인가 된 학교는 242교에 달하였다. 김천 지역에서 재인가 된 학교로는 광흥학교(廣興學校), 개진학교(開進學校), 일중학교(一中學校) 등 세 학교에 불과하였다. 이들 세 학교는 대한제국이 실질적으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에 근대 교육과 민족 교육을 담당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한제국 정부 시기인 1905~1910년 김천군에서도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설립된 학교들은 대한제국이 실질적으로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에 근대 교육과 민족 교육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