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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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泉郡畜産組合 |
영어음역 | Gimcheongun Chuksan Johap |
영어의미역 | Gimcheon-gun Stock Raisers' Un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었던 축산 조합.
[설립 목적]
김천군 축산조합은 지역 축산 농가의 자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15년에 만든 축산 조합으로 현 김천축산업협동조합의 모체이다.
[변천]
1907년 김천의 축산 농가들이 축우의 증식과 가축 위생의 향상을 꾀하기 위해 민간단체로 김산군 조합(金山郡組合)을 만들었으며 행정 구역의 통폐합이 이루어진 뒤 1915년에 이르러 김천군 축산조합으로 개편되었다. 이때부터 사업도 확대되고 재정적으로 자립할 단계에 이르렀으며 조합에서는 건초 수확과 저장을 장려하면서 저장고의 건초 보관을 알선하고 건초 다수확 품평회를 여는 등 축우 사육 문제의 환기를 촉구하였다.
1929년 말 김천군 내 축우는 9,900여 두로서 농가 호수로 보면 2호에 성우(成牛) 1두를 사육하고, 경작지 면적으로 보면 1두가 2만 6776.86㎡를 담당하는 셈이었다. 사육 축우 중 성우가 80%에 달하였고 암소와 수소의 비율도 거의 같았다. 농소면, 남면, 아포면, 개령면, 감문면 등의 평지에는 논이 많고 경작의 부산물이 많은 관계로 소의 사육이 활발하였다. 증산면, 지례면, 대덕면, 부항면, 구성면 등의 산간 지대는 비교적 증식과 성육을 위주로 하는 소의 사육이 많았다.
축우의 사육은 농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소를 애지중지하는 한편 여름에는 청초로서 방목하고 겨울에는 짚을 주식으로 하여 콩을 섞어 먹이를 만들었다. 축우 증식은 농촌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므로 1929년에는 축우 증식 계획에 따라 축사 시설비를 보조하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축산 정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데다 식량 부족도 한 원인이 되어 축우의 밀도살이 성행하였다. 이런 사정으로 김천군의 축우 수는 일제 강점기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1949년의 경우 축우 수는 9,784두에 불과했으나 농가 호수는 해방 전보다 늘어나 2만 1492호에 달했다.
1961년 군사 혁명군 정부는 중농 정책을 표방하고 농가 전체를 유축농으로 전환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축우 구입 자금을 융자했으며 생사를 장려하여 사이로 설치 자금을 융자하였다. 축우 보호 법령을 강화하고 도살을 엄금하여 축우의 번식과 성육을 통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한우 목장을 경영하도록 하고 자금을 융자하기도 하였다. 1965년 김천축산업협동조합은 1965년 6월 3일 설립 인가를 받고, 당월 18일부터 업무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