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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59
한자 金泉 葛項寺址東-西三層石塔
영어공식명칭 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Galhangsa Temple
영어음역 Galhangsa Samcheungseoktap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주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보 제9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보 재지정
이전 1916년연표보기
이전 1921년연표보기
건립 758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원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지도보기
성격
양식 석조
재질 석재
크기(높이) 동탑 4.3m|서탑 4m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건립 경위]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동탑의 기단 명문에 의하면 758년(경덕왕 17)에 조문황후(照文皇后)와 경신대왕(敬信大王)[원성왕]의 이모 모씨, 외숙인 영묘사(零妙寺)의 언적법사(言寂法師) 등 3인의 발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위치]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번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되어 세워져 있다. 원래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갈항사 남쪽에 동서 방향의 쌍석탑으로 세워져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하자 동탑은 1916년, 서탑은 1921년에 각각 경복궁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표석을 세워 놓았다.

[형태]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2개 모두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세운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2중 기단의 삼층석탑으로 그 구조와 양식, 규모가 동일하다. 동탑은 높이 4.3m, 서탑은 높이 4m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현재 양 탑 모두 상륜부는 소실되었으며, 서탑은 3층 옥개석이 소실되어 3층 탑신부까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동탑에는 상층기단 오른쪽 우주와 탱주 사이에 탑의 연대와 유래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하층 기단 면석을 하나의 돌로 조성하고, 그 위의 하층 기단 갑석과 상층 기단의 각 부는 하층 기단 9개, 상층 기단 4개의 각기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서탑의 지대석은 자갈 섞인 자연석 암반 위에 하층 기단부가 놓여져 있어 동탑과 차이가 있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가운데 기둥은 두 개씩을 두었다. 하층 기단 면석에는 각 양쪽에 우주와 2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갑석 상면에는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에 상층 기단을 놓았다.

상층 기단 면석에도 각 면마다 우주와 2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고 상면 중앙에는 하층 기단의 갑석과 마찬가지로 2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서탑의 경우 상층 기단의 측면이 조금 깨어진 상태이다. 상하층 기단의 탱주수로 미루어 볼 때, 이 석탑은 신라 융성기 때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을 각각 하나의 돌로 다르게 조성하였으며, 양쪽에는 우주가 정연하게 모각되어 있다. 옥개석도 각 층이 모두 동일한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옥개받침은 5개이며 상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의 부재를 받치고 있다.

낙수면은 평박하고 처마 밑의 선은 수평을 유지하고 있고, 네 귀퉁이의 전각의 반전이 경쾌하여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는 양 탑 모두 상륜부는 소실되었다. 서탑은 3층의 옥개석 부분도 소실되었고 동탑은 노반부터 남아 있는 부재가 없다. 이 석탑의 또 다른 특색은 옥신과 옥개석 처마 부분에 수십 개의 못 구멍이 뚜렷이 보이며, 2층 옥개받침 구석 부분에도 구멍 자리가 발견된다는 것인데, 이 구멍은 탑신 표면에 금동판으로 장식한 것을 고정시키기 위한 추제[금동판을 양각의 모형상에 대고 두들겨 그 상을 압출해 낸 것]의 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현재 양탑 모두 초층 탑신의 각 면에 마모가 심해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조각해 놓은 듯 흔적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초층 옥신에 못질을 하여 추제상을 장식하고 다른 부분에도 여러 상의 추제품을 덮어 장식하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리고 그 초층의 상은 남아 있는 형태나 일반적인 예를 통해 볼 때, 아마도 사천왕상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석탑 이전 당시 석탑을 해체하면서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양 석탑의 기단부에서 길이 75㎝, 두께 33㎝의 자연석이 확인되었고, 그 아래의 거의 같은 크기의 가공한 석재 상면 중앙에 사리공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 사리공 내에서는 청동기와 도기의 파편 등 사리장치가 수습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청동사리합과 금동사리병, 그리고 서탑에서는 청동주전자·자기조각·썩은 종이·골편 등이 발견되었다. 탑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각 부분의 비례가 좋아 균형 있는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금석문]

동탑 기단에 자경 6㎝의 유려한 필치와 높은 기품의 행서로 쓰여진 명기가 오목새김 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서 탑의 건립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천보 17년(경덕왕 17)에 조문왕후, 경신대왕의 이모 모씨의 외척인 영묘사의 언적법사 등 3인의 발원으로 세웠다’고 한다[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娚姉妹三人業以成在之娚者零妙寺言寂在師旅□□ 姉者照文皇太后君嬭在旅□□妹者敬信大王嬭在也]. 이렇게 탑 자체에 명문을 적어 놓은 것이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서는 유일한 예이며 탑명에 보이는 ‘재지(在之)’, ‘재려(在旅)’, ‘재야(在也)’ 등은 이두문(吏讀文)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현황]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일반형 삼층석탑이다. 특히 탑에는 조성 유래와 건립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그 중요성이 아주 크다. 이렇게 신라 석탑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은 이 탑이 유일하다. 동탑 기단부에 새겨진 명문 또한 그 가치가 아주 큰데, 이 명문은 이두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이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당시 글자인 이두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내고장 우리향토』(금릉군, 1983)
  • 『김천시사』(김천시, 1999)
  • 김천시(http://www.gimcheon.go.kr/)
  • 문화재지리정보시스템(http://gis.cha.go.kr/)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서울문화재(http://sca.seoul.go.kr/)
  • 전국문화유적총람(http://all.nricp.go.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9.16 문화재 명칭 변경 요청 문화재청 확인결과, 김천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으로 변경되었기에 관련 항목이름을 변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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