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A02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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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기동 |
[1449년 7월 개령현 동부리 개령 관아]
지난 1월, 상주목 관할의 개령현감으로 부임한 김숙자(金叔滋)는 동헌 마루 끝에 올라서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근심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소자 종직이옵니다.”
“그래, 어디 다녀오는 게냐?”
“예, 소자 향교에 다녀오는 길이옵니다. 그런데 아버님, 어찌 그리 낯빛이 어두우시옵니까?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지요?”
김숙자의 아들 김종직은 19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임지인 개령현으로 내려와 개령향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 무심한 빗줄기를 보거라. 조금 전 감천제방에 다녀왔는데 물이 넘어 급기야 제방이 무너지고 말았구나.
개령들 의 다 지어 놓은 농사를 망치게 되었으니 현민들의 탄식이 끈이질 않는구나. 어찌하면 좋을꼬.”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종직은, “아버님, 소자가 지난 6월 향교 고지기[향교에서 심부름을 하며 건물을 관리하는 천민] 아범으로부터 들었사온데, 감천은 강바닥이 높고 제방이 약해 거의 매년 장마 때마다 둑이 터지기를 반복해 왔다 하더이다. 그 말을 듣고 소인도 강둑에 가보았더니 유독 한 곳이 매번 터진다 하는데 이리하면 어떻겠는지요.”
어린 아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현감 김숙자는 아들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다음날 비가 멎자 현감 김숙자는 현내의 보도감(湺都監)[하천의 제방과 수로의 물을 관리하는 명예직]과 동부리 주민들을 모아 감문산에서 돌을 날라 오고 유동산의 흙을 파내어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았다.
그리고 사람을 선산 낙동강 가로 보내 버드나무를 수레 한가득 캐어 오게 하여 제방 곳곳에 촘촘하게 심게 했다.
아들 김종직의 전날 의견을 좇았던 것은 물론이다.
[1452년 7월 동부리 마을 앞 감천제방]
비는 벌써 사흘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퍼붓고 있었다. “사또 나으리,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같은 큰비에 제방이 견디는 것을 보니 모두가 사또 나으리의 공이시옵니다.”
보도감 우두머리 우 첨지는 연신 허리를 조아렸다. 동부리 마을 앞 제방에는 푸른 가지가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가 어른 키만큼이나 훌쩍 자라 무성한 버드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흙탕물이 되어 둑을 집어 삼킬 듯 선산 방향으로 흘러가는 감천을 바라보던 김숙자는 아들 김종직(金宗直)을 돌아보며, “지난날 너는 어찌 알고 네게 버드나무를 심으라 했더냐?” 하고 물었다.
그 사이 청년으로 성장한 김종직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소인이 향교 고지기 아범의 말을 듣고 둑으로 가 보니, 유독 매년 둑이 터진다는 자리에만 나무가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선산의 낙동강 가에는 이보다도 훨씬 강이 크고 수량이 많음에도 제방이 튼튼했는데 한결같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더이다.”
“허허, 네가 개령들을 살렸다. 개령고을의 곡창지를 구했어.”
[2010년 8월 개령면 동부리 마을 앞 동부연당]
동부2리 마을 앞 동부연당과 선산 방면 지방도 59호선 사이에 직경이 수m에 달하는 거대한 버드나무 몇 그루가 길게 늘어져 있다.
개령 면민들에게는 학창 시절 소풍과 야유회의 추억이 서린 향수어린 공간으로 사랑받아 온 곳이다. 1940년대에 촬영된 사진에는 긴 제방을 따라 수많은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동부리 마을 앞에 숲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으나, 1970년대 김천에서 선산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59호선이 새로 나면서 대부분 베어지고 2010년 현재는 8그루만이 남아 옛 정취를 짐작하게 할 따름이다.
마을 이장 김해술[1951년생] 씨는, 개령현감 김숙자가 동부리와 개령들 일대를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다시 쌓고 뿌리가 왕성한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홍수로 동부리가 침수되기는 했으나 버드나무를 심은 구간의 제방은 한 번도 터진 적이 없어 모두들 신기해했다고 전한다.
[문헌에서 만난 동부리 버드나무 숲]
1757년(영조 33)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개령현 편에는, 남수(南藪)라고 하여 “관아 남쪽 2리에 있는데 현감 김숙자가 김종직(金宗直)과 함께 숲을 조성한 덕분으로 읍 터에 홍수 걱정을 덜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또 1833년(순조 33) 경상도 71개 군현의 읍지를 함께 수록해 발간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제12책의 개령현 편에서는, ‘개령임수(開寧林藪)’라는 구절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령임수는 개령현 남쪽 2리에 있다. 사예(司藝) 김숙자가 현감이 되었을 때 점필재(佔畢齋) 김종직이 관아에 따라와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도록 하여 고을의 물난리를 방비하였다.”
사림의 종주로 추앙받던 김숙자, 김종직 부자가 지혜와 애민(愛民)을 혼합해 쌓은 동부리 마을 앞 감천제방은, 56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동부리의 든든한 보루(堡壘)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