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A020102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부활하는 빗내농악]

개령면 동부리에 들어서면 십중팔구 “케갱, 케갱” 하는 금속성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개령초등학교 학생들의 농악 수업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빗내농악은 개령들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손자로 전해져 왔기에 꽹과리 소리는 어디서도 예사로 들을 수 있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입구 쌍샘에서 동제를 올릴 때 농악대가 개령들을 가로질러 온 마을을 훑고 다녔고, 단오와 추석 등 명절과 학교 운동회 등 크고 작은 마을 행사에서도 어김없이 풍물패가 등장했다. 그러던 것이 주민들이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면서 뜸해지더니, 1980년대 들어 농악의 암흑기가 찾아들었다.

“그때는 동부리 사람치고 메구[농악기] 한가락 못 치는 사람 없었다고. 개령은 빗내풍물인데 딴 마을 아무리 난리치 바야[노력해 봐야] 우리 개령 빗내메구한테는 택도 없어[어림도 없어].”

동부리 마을 최고령자 김기환[1921년생] 씨는 연신 손으로 꽹과리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지난날의 농악 이야기를 펼쳤다.

동부리에서 잊혀졌던 빗내농악의 정겨운 소리가 다시 들리게 된 것은 2001년 5월, 개령초등학교가 빗내농악 전승학교로 지정되면서였다.

연이어 2003년 11월에는 이웃한 광천리에 지역 주민들의 숙원이던 빗내농악전수관이 건립되면서 빗내농악 근거지로서의 마을의 위상이 높아짐과 동시에 농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빗내농악전수관이 개관된 이후 주민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야간 농악반이 생기면서 낮에 농사일을 마친 주민들이 밤에 농악을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민들도 김천 농악을 대표하는 빗내농악이 개령 동부리를 중심으로 성립된 감문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대골에서의 감문국 풍경]

“하나, 둘, 하나, 둘”

서기 230년, 개령면 동부리양천리의 경계를 이루는 유동산 옆 진대골에서는 오늘도 감문국 군사들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진대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당고산에 매달아 놓은 북이 “둥- 둥-” 울리면 양쪽으로 도열한 군사들이 밀었다가 당기고 또 에워싸는 형상을 반복한다. 고된 훈련이 모두 끝나면 군사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조금 전까지 익혔던 훈련을 복습하기라도 하듯 편을 갈라 징과 꽹과리, 북을 두들기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으로 고된 일상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군사들의 마음은 하나같이 무겁다. 경산의 압독국과 의성의 소문국을 차례로 점령한 경주의 사로국이 얼마 전 영천의 골벌국까지 점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유동산에 올라앉아 군사들의 훈련 모습을 내려다보던 금효왕은 좀 더 일찍 사로국의 공격을 예상하고 군사력을 키우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군사 훈련에서 유래된 빗내농악]

금효왕의 후회는 마침내 현실로 이어져 서기 231년 감문국은 사로국 대장 석우로에 의해 멸망한다. 그러나 비록 나라는 망했으나 군사들의 애환이 서린 몸짓은 면면이 이어져 빗내농악으로 전승되었던 것이다.

빗내농악은 감천을 경계로 가야와 아포국, 또 북쪽의 사벌국, 남쪽의 사로국 등 주변 소국들과 숱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사 훈련과 전투의 각 형식이 풍물놀이의 원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전사한 군사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례 의식이 풍물 말미에 부가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빗내풍물은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한 전쟁굿, 즉 진굿이라 합니다. 전쟁과 굿이 합해진 독특한 형식인데, 이것이 개령들의 벼농사와 만나 농악으로 전승, 발전된 특이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빗내농악보존회 상쇠를 맡고 있는 손영만[1962년생] 씨가 감문국의 역사적 상황과 개령 지역의 환경이 만나 농악으로 전승, 발전된 빗내농악의 특수성을 실감나게 설명해 주었다.

감문국의 도읍지에 사는 동부리 아이들이 빗내농악을 모르면 안 됩니다.”

빗내농악을 교기로 육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개령초등학교 안광태[1949년생] 교장의 말에는 신념이 가득 차 있었다. 개령벌 가득 카랑카랑 퍼지는 꽹과리 소리가 그래서 더욱 맑고 밝게 들렸다.

[정보제공]

  • •  김기환(남, 1921년생, 개령면 동부리 주민)
  • •  안광태(남, 1949년생, 개령면 동부리 개령초등학교 교장)
  • •  손영만(남, 1962년생, 김천시 황금동 주민, 빗내농악보존회 상쇠)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