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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30143
한자 曺始永
이칭/별칭 치극(稚克),후계(後溪)
분야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문무 관인,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갑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3년연표보기 - 조시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 - 조시영 임오 정시문과 합격
몰년 시기/일시 1912년연표보기 - 조시영 사망
출생지 조시영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계리
묘소|단소 조시영 묘소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산1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녕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가계]

조시영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치극(稚克)이고 호는 후계(後溪)이다. 동지중추부사 조위(曺偉)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참봉 조진만(曺鎭萬)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처중(姜處重)의 딸이다/

[활동 사황]

조시영(曺始永)[1843~1912]은 1873년(고종 10) 계유 식년시에 입격하여 진사로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며 1882년 임오 정시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관수찬, 홍문관교리, 홍문관응교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사헌부집의, 성균관사성, 장악원정, 동학교수, 병조정랑, 통례원의 좌·우통례 등을 거쳐 1890년(고종 27) 통정대부에 올라 돈령부도정을 거쳐 병조참의, 동부승지에 오르고 외직으로 흥양군수, 고령군수, 여산부사, 경상도소모사,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면서 풍속을 교화하고 농상(農桑)을 권장하여 치적을 남겼다. 염찰사(廉察使) 엄세영(嚴世永)의 장계에 의하여 임금에게 말을 하사받았다. 만년에는 고향 김천 봉계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으며 효성과 문장이 뛰어났다. 1897년(광무 1)에는 창녕 화왕산성에 시조 탄생을 기념하는 ‘창녕조씨득성지지(昌寧曺氏得姓之地)’ 비를 세웠다.

[학문과 저술]

조시영은 만년에 고향으로 낙향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독서로 소일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저술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임하여 『후계문집』 16권 8책과 『상례촬요(喪禮撮要)』 1권을 남겼다.

[묘소]

조시영의 묘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산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조시영은 임지마다 선정을 베풀었고 선조 헌양 사업에 힘써 백성들이 이를 기려 진주 진주성 안에 조시영청덕선정비(曺始永淸德善政碑)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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