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30100 |
---|---|
한자 | 仁顯王后御製謄錄 |
분야 | 문화유산/기록 유산,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문헌/문서,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865-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경탁 |
[정의]
조선 후기 숙종대 인현왕후가 복위되어 간 후 김천 청암사로 부친 편지.
[개설]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는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과정에서 폐위 된 후, 김천 청암사 보광전에서 3년간 숨어 기도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인해 복위된 다음해인 1695년(숙종 21)에 궁중에서 청암사로 고마움을 전한 간찰이다.
[형태]
인현왕후어제등록은 간찰의 형태이다.
[제작 발급 경위]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모함에 의해 폐위(1689), 안국동 사가로 나앉았을 때이다. 남인 세력의 감시와 도둑, 살해 위협으로 신변이 불안해 지자 첩첩 산중인 김천 청암사와 울진 불령사 등으로 숨어들었다. 서민이 된, 왕후 아닌 왕후는 3년 간(1692~1694)을 청암사 보광전에서 기도하며 복위를 기원했다.
인현왕후의 어머니는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딸 은진 송씨이다. 어머니의 외가인 상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집안의 알선으로, 시녀 한 명을 데리고 청암사에 와 기도한 것으로 전한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다음해(1695)에 청암사로 보낸 이 편지가 최근에 발굴되었다. 청암사 함원전과 인현왕후둘레길 용추폭포 입구에 복사본 및 모형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인현왕후어제등록에는 청암사 스님들에 대한 충심의 고마움과 함께 비녀와 잔과 신을 신물로 보낸다고 했다. 편지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今聞我還位懇禱倍前不分晝夜與雲師寂師爲我盡賣衣鉢重刱靈刹新建祝閣[이제야,내가환위하고서도 전보다 갑절이나 간절히 밤낮없이 운스님, 적스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옷과 발우를 다 팔아서 신령한 절을 중창하고, 축원하는 전각을 새로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의의와 평가]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 등 숙종대 왕실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편지 표제의 ‘등록(謄錄)’이란 말은 ‘베껴 기록하다, 옮겨 적다’는 의미이니, 왕후가 구술한 것을 받아 적거나 원본을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후로 궁녀들이 이 지방을 지날 때면 인현왕후를 기려, 청암사에 들러 많은 시주를 하며 궁중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청암사 백련암에서 발굴된 이 편지와 기도하던 보광전으로 인해 천년 고찰 청암사가 문화유적지, 테마관광지로서의 위상이 달라졌다. 김천시에서는 청암사와 수도암 부근에 ‘인현왕후둘레길’을 복원하고 관광지로 조성해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편지의 원본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