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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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鴻發遺墟碑 |
영어음역 | Bak Hongbal Yuheobi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Bak Hongbal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새석이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지영 |
관련 인물 생년 | 16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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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 1671년 |
건립 | 1864년 10월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
성격 | 유허비 |
관련 인물 | 박홍발|박승동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00㎝[높이]|35㎝[너비]|17㎝[두께] |
관리자 | 박문규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 박홍발의 유허비.
[개설]
도은처사(道隱處士) 박홍발(朴鴻發)[1610~1671]은 본관이 순천(順天)으로,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정후공(靖厚公) 박가흥(朴可興)의 후손이며 주부(主簿)를 지낸 박경순(朴景淳)의 아들이다. 충정공(忠正公)인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은 박홍발의 방계 조상이다.
[건립 경위]
박홍발 유허비는 후손들이 박홍발을 추모하고자 박홍발이 은거하였던 유허지에 1864년(고종 1) 10월 세웠다.
[위치]
신곡리 새석이마을에 박홍발을 기리고자 세운 감모재(感慕齋) 옆에 있다.
[형태]
사각형 받침돌에 높이 200㎝, 너비 35㎝, 두께 17㎝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태극무늬를 새긴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박홍발의 방계 후손인 박승동(朴昇東)이 지은 비문이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비문은 박홍발의 조상과 후손 등 가계를 언급하고, 박홍발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굴욕적인 강화 조약이 체결되자 슬프고 분함을 참지 못하고 대의를 따라 세상을 등지고 조마면 오도산(吾道山)에 은거한 사연을 기록하였다.
[현황]
박홍발 유허비는 현재 박문규가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