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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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順己 |
영어음역 | Jeon Sungi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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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충복(忠僕)|효자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충복(忠僕)이자 효자.
[활동 사항]
전순기(全順己)는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다. 봉산면 조익의 노비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장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으나 성장하여 3년간 추복(追服)을 하였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어머니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약을 달여 드렸고, 어머니가 위독할 때에는 손가락을 베고 피를 입에 넣어 목숨을 소생시켰다. 또한 어머니에게 불손한 행동을 한 아내에게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모실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두 번에 걸쳐 아내를 내쳤다. 셋째 부인은 비록 여공은 서투르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매우 기뻐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내와 각방을 쓰고 3년간 한 벌의 상복으로 지내면서 어육(魚肉)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한편, 주인이 괴질에 걸리자 “우리를 먹여 준 주인을 어찌 소중히 받들지 않으랴!”면서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독한 약을 시탕하면 먼저 자신이 맛본 뒤 주인에게 약을 드렸다고 한다. 주인이 서울에 있을 때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발생하자, 어머니에게 “주인을 구하지 못하고 어찌 편히 살겠습니까”라고 말하곤 상경하여 천신만고 끝에 주인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상훈과 추모]
현종 대에 조정에서 효성과 주인을 위한 충성을 기려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