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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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國李相國集 |
영어음역 | Donggugisanggukjip |
영어의미역 | The Collected Works of State Minister Yi of the Eastern Country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남권희 |
간행 | 고려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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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540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이규보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18자 |
규격 | 22.2㎝[가로]|32.5㎝[세로] |
판심제 | 이상국집(李相國集)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
[개설]
이규보[1168~1241]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황려(黃驪)[지금의 경기도 여주]이다. 초명은 인저(仁底)이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며, 만년에 스스로 ‘시금주삼혹호선생(詩琴酒三酷好先生)’이라고 하였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1190년(명종 20) 문과에 급제했고,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20년(고종 7) 예부낭중, 한림시강학사, 비서성판사, 집현전대학사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저서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다.
[형태/서지]
영본(零本) 1책의 목판본으로 권14~17의 내용을 담고 있다. 표지는 후대에 개장(改裝)한 것이다. 판심(版心)에 어미(魚尾)가 없고, 판심제(版心題)는 ‘이상국집(李相國集)’이며, 권차가 표시되어 있다. 계선이 없고, 장정법은 선장본, 종이는 저지(楮紙)를 사용했으며, 종이의 발폭은 2.8~3㎝이다.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2.2㎝, 세로 32.5㎝, 반곽 크기는 가로 17.3㎝, 세로 22.1㎝이다.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18자이다. 소자(小字)는 쌍행(雙行)으로 배열하였다.
[구성/내용]
권두 첫 앞면은 권차가 다른 권4의 16장 앞면이 붙어 있고, 권14의 1장 앞면, 권17의 7장과 21장이 없는 상태이다. 전체 장수는 권14 18장, 권15 19장, 권16 20장, 권17 21장으로 모두 78장이다. 권16의 8~9장에 ‘박분(朴分)’, 권17의 3장에 ‘김하(金下)’라는 각수의 이름이 판심의 하단에 새겨져 있다. 전집은 시(詩)·부(賦)·전(傳)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들이 25권을 이루고, 그 외에 서(書)·장(狀)·표(表) 등 개인적인 편지나 교서·비답 등의 글들, 비명(碑銘)·제축(祭祝) 등 장례·제사 그리고 불교 행사와 관련된 글이 수록되어 있다.
후집은 12권으로 이루어지는데, 이함의 서문이 앞서 수록되어 있고, 권1~10에는 시, 권11에는 찬·서(序)·기·잡의(雜議) 등이, 권12에는 서(書)·표·잡저 등이, 권말에는 이규보의 뇌서, 이수가 쓴 묘지명, 이익배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이 중 「국선생전」과 「청강사자현부전」은 각각 술과 거북이를 의인화한 가전체 작품이다. 또 「백운거사전」은 젊은 시절에 천마산(天摩山)에 은거하면서 시와 술을 벗하며 안빈낙도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서전적 전기이다. 그 외에도 고려대장경 조성에 대한 「대장경각판기고문」과 금속 활자의 사용에 관한 사실을 알려 주는 「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동국이상국집』은 장편의 민족 서사시이자, 설화와 소설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하는 가전체 작품인 「국선생전」과 「청강사자현부전」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당시 무인 정부의 역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고려대장경에 대한 「대장경각판기고문」과 고려 시대 금속 활자 사용의 증거가 되는 「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를 수록하고 있어 출판·인쇄문화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아주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