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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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憤痛- |
영어음역 | Buntonggol Iyagi |
영어의미역 | The Story of Buntonggol |
이칭/별칭 | 분통골에 얽힌 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
집필자 | 이균옥 |
수록|간행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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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 1999년 |
관련 지명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분통골 |
관련 지명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율수재 |
채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
성격 | 전설|풍수담|지명 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서산 정씨 |
모티프 유형 | 풍수 말을 어겨서 망한 서산 정씨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분통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분통골 이야기」는 풍수의 말을 거역하여 서산 정씨 집안이 망했다는 풍수담이자 이 사실이 ‘분통이 터질’ 일이라서 ‘분통골’이라 불렸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분통골에 얽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명유래 및 설화]에는 「분통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내용은 동일하다.
[내용]
옛날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 일대에는 서산 정씨들이 많이 살았다. 어느 날 집안에 초상이 났는데, 풍수의 말이 분통골에 명당이 있다고 하며 묘를 쓸 적에는 반드시 관을 11개를 묻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체를 넣은 진짜 관을 묻고 차례로 빈 관을 묻어 나가다가 열 개째 관을 묻던 사람들이 한 개쯤 덜 묻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며 마지막 한 개를 묻지 않고 봉분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서산 정씨들은 날로 번창해져서 벼슬아치가 많이 났고, 모두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서산 정씨들의 세력이 날로 번창해지자 역적모의라도 할까봐 두렵게 생각하여 서산 정씨들이 번창하는 이유를 알아보도록 했다. 뒤로는 극락산과 앞으로는 금오산을 끼고 자리 잡은 선조의 묏자리 덕이라는 얘기를 들은 왕은 당장 묘를 파도록 어명을 내렸다.
묘를 파헤쳐 관을 열어 보니 빈 관이었다. 그 다음 관을 열어 보니 또 빈 관으로 아홉 개 관이 빈 관이었다. 관아에서 나온 관리들은 빈 관만 거듭 나오자 지쳐서 파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한 관리가 기왕에 팠으니 꼭 한 번만 더 파 보고 또 빈 관이 나오면 그만두자고 우겨서 마지막으로 삽질을 하니 또 관이 나와 뚜껑을 열어보니 보얀 김과 함께 학 한 마리가 날아갔다.
이렇게 되자 서산 정씨들의 가문은 차츰 망했다. 당초에 풍수의 말대로 관을 열한 개를 모두 묻었더라면 끝내 진짜 관은 보존되고 집안은 영광을 계속 누렸을 것인데, 마지막 한 개를 묻지 않은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 하여 이곳을 후세 사람들이 ‘분통골’이라고 부른다. 분통골은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의 율수재(聿修齋)가 있는 뒷골이다.
[모티프 분석]
「분통골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풍수 말을 어겨서 망한 서산 정씨’이다. 「분통골 이야기」는 관 11개를 묻으라는 풍수의 말을 따르지 않아 결국은 망한 집안에 관한 풍수담이면서, 날로 번창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망했다는 사실이 ‘분통이 터질’ 일이라서 ‘분통골’이 되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