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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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丞- |
영어음역 | Jeongseungbawi Iyagi |
영어의미역 | The Story of Jeongseungbawi Rock |
이칭/별칭 | 정승 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
집필자 | 이균옥 |
수록|간행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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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 1999년 |
관련 지명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
채록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
성격 | 전설|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이극돈|이극배 |
모티프 유형 | 정승바위를 깨뜨린 명당 파손담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서 정승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정승바위 이야기」는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 김씨 부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연못에 소금을 뿌리고 정승바위를 깨뜨려 학을 쫓아냄으로써 명당을 파손하여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3년 김천시에서 발행한 『내고장 우리향토』에 「정승 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99년 김천시에서 간행한 『김천시사』와 김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김천의 문화/지명유래 및 설화]에는 「정승바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전자[1983년]에서는 정승이 ‘이씨’인데 비해, 후자[1999년]에서는 ‘광주 이씨’로 더 구체적이다. 또한 전자는 부인과 노승의 대화가 ‘대화체’로 되어 있다.
[내용]
김천시 봉산면 예지2리에 살던 광주 이씨가 한양에서 정승을 하고 있을 때 이곳에서 홀로 집을 지키며 살던 김씨 부인은 남편과 오래 떨어져 살았기에 몹시 그리워했다. 어느 날 찾아온 노승에게 쌀 한 말을 시주하면서 일찍 남편이 돌아오도록 하는 방법을 묻자 노승은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연못을 가리키며 저 연못에 소금 석 섬을 뿌리고, 동네 입구에 불쑥 나온 바위를 깨뜨려 길을 넓히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부인은 노승이 시키는 대로 못에다 소금 석 섬을 뿌리고 마을 입구에 있는 바위를 깨버렸다.
그때까지 수양버들이 늘어진 못에서 평화롭게 놀던 세 마리의 학이 날아서 한 마리는 봉계(鳳溪) 쪽으로, 한 마리는 창촌 쪽으로 날아가고, 또 한 마리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른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 후에 남편은 시체로 돌아왔고, 그 뒤로 이 마을에는 벼슬길이 끊겼다고 한다. 반면에 학이 날아간 봉계와 창촌은 차츰 번창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인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당시 김씨 부인이 살았던 집 일대의 전답을 ‘이층 논, 이층 밭’이라 부르고, 학이 놀았던 못 또한 조그맣게 남아 있으며, 정승바위도 마을 어귀에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정승을 이극돈(李克墩)[1435~1503]이라 하기도 하고, 그의 형 이극배(李克培)[1422~1495]라 하기도 하는데, 예로부터 이 고장의 향지에는 이극배가 산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며느리부터 후손들의 묘가 이곳에 있다.
[모티프 분석]
「정승바위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정승바위를 깨뜨린 명당 파손담’이다. 「정승바위 이야기」는 개인적인 욕심만 채우려는 어리석은 부인 때문에 남편이 해를 입는 이야기이면서, 정승바위에 대한 풍수담과 관련된 내용이 결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