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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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武里余山-山神祭 |
영어음역 | Munmu-ri Yeosangol Sansinje |
영어의미역 | Sacrificial Rite for the Mountain God in Yeosangol Village, Munmu-ri |
이칭/별칭 | 백운산 산신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
집필자 | 박영숙 |
중단 | 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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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
성격 | 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2일 |
신당/신체 | 소나무|참나무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주민들이 음력 1월 2일에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는 삼한시대 변한계 소국 감문국의 지배를 받은 문무국(文武國)이 있었다는 역사가 깊은 마을로 감문국·사벌국·주조마국·어모국 등 주변 소국들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의 안위와 주민들의 화합을 기원하는 나라제사가 뒤에 동제의 형태로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문무동 여산골 산신제는 속문산 자락인 마을 뒷산 배남걸과 당산에서 지냈는데 산상신당으로 소나무를 모시는 상탕과 참나무를 모시는 하탕으로 나누어 산제를 올리고 마을에 내려와서는 제사를 별도로 지내지 않는 형태로 계승되어 왔다.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서는 제를 지낼 때 부정한 사람이 올라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며 제당 근처에 산소를 들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옛날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쳤는데 수일 후 그 호랑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고 이후부터 사람들은 산신이 호랑이를 벌준 것으로 믿게 되었으며, 이후 동네가 무고했던 것은 산신제를 잘 모셨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은 속문산 중턱인 배남걸과 당산에 있으며, 상탕과 하탕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소나무와 참나무를 신목으로 섬긴다.
[절차]
제관은 섣달 보름에 마을 회의를 통해 2명을 선출하는데 특히 장년층의 나이 많은 사람 중에서 주로 선출된다. 과거에는 상탕에 3인, 하탕에 3인씩 각각 선출하였으나 최근에는 1인만 선출하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을 이장이 선정된다. 선정된 제관은 그믐날로부터 우물을 퍼내고 황토를 뿌린 다음 종이를 끼운 금줄을 띄어 부정을 정화한다.
제관은 제가 끝날 때까지 고기를 먹지 못하고 부부가 합방을 하지 못하며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도 말을 할 수가 없으며 제사 전날 상탕에 있는 우물물로 목욕한다. 제관이 아닌 일반 동민들도 함부로 산제당에 올라가지 못하며 제사 전날부터 전 동민이 육식을 금하고 황토를 마을 입구와 집집마다 뿌린다. 만약 동제 직전에 초상이 나면 당일 장례를 치르게 하거나 동제 후까지 장례를 미루고 곡도 하지 못한다. 또 제사 그릇은 매년 새것으로 장만한다.
제관들은 제사일이 다가오면 김천에 나가 제물을 흥정하는데 제물 값은 절대로 깎지 않는다. 제물은 사과, 배, 연시, 밤, 대추 등의 과실과 돼지고기, 자반, 조기, 김, 미역, 쌀 한 되 분량의 밥, 산적, 백무리[시루채]이며 어물과 포는 사용치 않는다. 보아온 제물은 선반에 얹어 놓았다가 초하룻날 아침에 준비하고 저녁에 제당으로 옮긴다.
제사는 정월 이튿날 자정에 지낸다. 제당에 도착하면 상을 차려 촛불을 켜고 성주 앞에 시루를 놓고 재배한 다음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대동소지 1매와 마을 유지들의 소지만 올린다. 순서는 유교식의 기제사와 동일한데 상탕에서 먼저 지내고 하탕에서 지내면 모두 끝난다. 제가 끝나면 풍물을 치고 내려와 음복을 한 후 대동회를 여는데 제사에 소용된 경비는 마을 사람들에게 추렴하고 대동회에서 결산하여 보고한다.
[현황]
문무리는 상여마을과 하여마을로 나뉘어 각자 동제를 지내왔는데 2006년 마지막으로 동제를 지낸 후, 문무교회로 이관해 교회에서 마을 발전과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