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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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음역 | Nujeong |
영어의미역 | Pavilions |
이칭/별칭 | 누각,정자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송영호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집.
[개설]
누정(樓亭)은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높여 지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써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 환경에 부합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이며 한국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상 자연 경관을 현장에서 보다 가깝게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서 기인된 건축물이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관청 안팎에 많이 지었다. 누각 내부는 온돌방보다 개방된 마루를 위주로 꾸미며, 높은 대(臺) 위에 짓기 때문에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정자는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대개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자는 특히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였는데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휴식과 놀이, 사색, 교육, 공공 의식 등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었다.
누정은 절경지에 독립적인 건물로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 궁궐, 사찰, 향교, 서원 또는 사대부가의 주택에 부속 건물로 세워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 정(亭), 각(閣), 당(堂), 정사(精舍), 대, 원(院), 헌(軒), 재(齋), 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다.
[현황]
김천은 예부터 자연 경관이 수려해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리며 고을 곳곳에 누각과 정자가 세워졌다. 김천지역 누정은 조선시대로부터 1980년대까지 총 54개소가 세워졌다. 이중 29개소가 훼철되고 현재까지 25개소가 남아 있다.
1937년 간행된 『교남지(嶠南誌)』에 따르면 김산군(金山郡) 관내에는 군수 김세조가 세운 서하루(棲霞樓),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세운 경렴당(景廉堂), 김산군 관아 내에 여이랑이 세운 동락당(同樂堂)과 군자정(君子亭), 군수 김탄행이 건립한 풍월루(風月樓), 1838년 군수 이능연이 세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봉황대(鳳凰臺), 이홍명이 감천면 금송리에 세운 사미정(四美亭), 군수 여희필이 구성면 광명리에 1935년 세운 도암재(道岩齋), 최대권이 조마면 신안리에 세운 백원당(百源堂), 이시현이 세운 백원재(百遠齋), 최창락이 세운 남애정(南厓亭), 김천중학교 내에 세운 시열재(時悅齋), 양천동 하로에 최병록이 세운 경원재(景遠齋), 1872년 성산 여씨 문중에서 구성면 금평리에 세운 광암정(廣岩亭)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철되고 현재 봉황대와 시열재, 도암재, 남애정, 백원당, 경원재, 광암정 등이 남아 있다.
또 지례현(知禮縣) 관내에는 1690년 현감 조인상이 세운 감호정(鑑湖亭), 1715년 현감 조하성이 세운 화옥정(華玉亭), 1609년 박경순이 세운 한송정(寒松亭), 1636년 이정복이 세운 방초정(芳草亭)과 옹취정(擁翠亭), 1737년 현감 이병건이 세운 삼소정(三笑亭), 1774년 현감 이병건이 세운 사명정(四明亭), 1774년 개령향교 앞에 세운 사반루(思泮樓), 도동서원 앞의 임해루(臨海樓), 섬계서원 앞에 세운 상설루(常雪樓), 1638년 김종해(金鐘海)가 세운 만취정(晩翠亭), 이장원이 세운 충효당(忠孝堂), 은진 송씨 문중에서 세운 미호정(美湖亭), 인동 장씨 문중에서 세운 쌍호정(雙湖亭)과 옥류정(玉流亭), 1897년 김난규가 세운 경파정(鏡波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구성면 상원리의 방초정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고, 지례향교 문루인 사반루, 지례면 관덕리의 만취정, 구성면 미평리의 미호정, 대덕면 연화리의 쌍호정 등이 남아 있다.
개령현 관내의 누정으로는 개령현 관아 내에 있던 무민루(撫民樓)와 팔승정(八勝亭), 유산위의 동락정(同樂亭), 1713년 건립된 감문면 광덕리의 오수정(五授亭), 개령면 동부리에 향약소로 세워진 내신정(來新亭), 남면 운남리의 진주 강씨 문중 재실인 숙청각 앞에 세워진 숭덕재(崇德齋), 대광동 묘광저수지 내에 세워진 낙원정(樂園亭), 동부리 관학산 아래에 우상학이 세운 화학정(華鶴亭)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팔승정, 내신정, 숭덕재, 낙원정 등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김천 지역에는 감천과 인접한 구성면, 감천면, 개령면, 지례면, 대덕면, 조마면 등 절경지에 많은 정자가 건립되었으나 1936년 병자년 수해 때 감천의 범람으로 대부분 유실되고 말았다. 현재 방초정과 봉황대를 제외하고는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관리의 사각 지대에 놓여 심각한 훼손 상태에 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인 정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보존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