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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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湖月 |
영어음역 | Mun Howol |
이칭/별칭 | 문윤옥(文允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경탁 |
출생 | 1908년 9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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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 1918년 |
수학 | 1924년 |
활동 | 1932년 |
활동 | 1933년 1월 |
활동 | 1934년 1월 |
활동 | 1940년 2월 |
활동 | 1945년 이후 |
활동 | 1950년 |
몰년 | 1952년 8월 31일 |
추모 | 1982년 11월 |
출생지 |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 21번지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김천시 용호동 |
노래비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 192-1 |
성격 | 작곡가|연주가|지휘자 |
성별 | 남 |
본관 | 남평(南平) |
대표 경력 | 조선악극단·무궁화악극단 지휘자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에서 거주 및 성장했던 작곡가·연주가·지휘자.
[활동 사항]
문호월(文湖月)은 1908년 9월 7일 지금의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 21번지에서 아버지 문덕인(文德仁)과 어머니 최종성(崔宗聖)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문윤옥(文允玉)이다. 문호월이 갓난아이 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주했으나 정착하지 못하였다. 집안 누나의 권유로 김천시 용호동으로 내려와 남산동과 황금동, 성내동에서 살았다고 전한다. 1918년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1924년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23세 때인 1931년 부모님의 종용으로 김천시 삼락동[속칭 구읍]에 살던 백옥진의 넷째 딸 백옹중[2010년 현재 96세]과 결혼하여 슬하에 5남 1녀를 두었다.
문호월은 원래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에 능하여 연극 공연 막간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단원이었다. 그러던 중 1932년 오케레코드사를 창설한 이철에게 발탁되어 전속이 된 후, 그의 권유로 문예부장 김능인(金陵人)[본명 승응순(昇應順)]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민요 발굴에 힘쓰게 된다. 제주도 민요 「오돌또기」를 채보(採譜)하고 전국에 소개하는 등 문호월은 우리 민요를 수집, 연구하고 가창자를 찾아 채보하면서 작곡가로 성장하였다.
1933년 1월 유행 소곡 「장한가」[신불출 작사, 윤백단 노래, 오케레코드사]로 데뷔한 후 오케레코드사에서 작사가 김능인(金陵人), 가수 고복수·황금심 부부, 이은파 등과 손을 잡고 민요풍의 가요를 많이 창작하였다. 1934년에는 고종사촌 동생인 작곡가 손목인(孫牧人)이 일본 유학 중 잠시 귀국하자 이철 사장에게 소개, 오케레코드사에 입사시켜 그가 「타향살이」[고복수 노래]·「짝사랑」[고복수 노래]·「사막의 한」[고복수 노래]·「이원애곡」[고복수 노래] 등의 인기 가요를 낳는 유명 작곡가가 되게 하였다.
1934년 1월 문호월은 오케레코드사에서 유행가 「봄맞이」[이난영 노래]와 신민요 「노들강변」[신불출 작사, 박부용 노래]을 발표하였다. 한국 가요사에서 ‘신민요’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노들강변」은 한국 신민요의 효시(嚆矢)로 꼽힌다. 1940년 2월부터 3월까지 문호월은 만주까지 발을 뻗쳤던 악극단인 태평연주단의 주요 멤버로 참가하여 활약을 했다. 당시 태평연주단에는 가수로 백년설·이은파·고운봉·나성려·금사향·진방남, 연기자로 전택이·윤선애·조경희 등을 두고서 지휘는 전기현·이재호, 연출은 조경환·천아토가 맡았으며, 악단원으로 문호월·한영철·이경연 등이 활동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문호월은 태평레코드사, 조선악극단, 황금좌, 빅터악극단, 무궁화악극단 등에서 전속 작곡가 및 지휘자로 활약했다. 1950년 서울에서 6·25전쟁을 맞은 문호월은 가족과 헤어져 김천으로 피란을 와 있다가 수복 후 상경하여 육군 본부에서 조직한 군예대에 들어가 종군 활동을 하였다. 1952년 8월 31일 군예대에서 근무하던 중 피로가 겹쳐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영면하였다.
[저술 및 작품]
유행 소곡으로 「장한가」[윤백단 노래]가 있고, 신민요로 「봄맞이」·「노들강변」·「명사십리」[김연월 노래]·「유허지를 지나며」[이난영 노래]·「복 되소서 이 강산」[김연월·고복수 노래]·「남강행」[고복수 노래]·「봄 아가씨」[이난영 노래]·「귀향」[서상석 노래]·「고적」[이난영 노래]·「인생극장」[남인수 노래]·「만포선 천리길」[황금심 노래]·「풍년송」[고복수·이은파 노래] 등이 있다. 가요로는 「관서 천리」[이은파 노래]·「앞 강물 흘러흘러」[이은파 노래]·「산유화」[송달협 노래]·「갑사댕기」[윤백단 노래]·「섬 색시」[윤백단 노래]·「지는 석양」[이은파 노래]·「분홍 손수건」[장세정 노래]·「불사조」[이난영 노래]·「희망의 언덕」[고복수·이난영 노래]·「아리랑 술집」[김봉명 노래]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