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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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鏈萬 |
영어음역 | Gim Yeonm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송호상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출판인.
[활동 사항]
김연만(金鏈萬)은 1904년경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으로 김천에 정착 후 우피(牛皮) 무역을 통해 거부(巨富)가 된 김기진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연만은 1924년 동맹 휴학 주모자로 퇴학당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 일본으로 유학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한 후인 1938년 김연만은 이태준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활동을 하던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小說家) 구보씨(仇甫氏)의 하루』를 발행했으나, 내용 가운데 ‘군인의 태도를 야유(揶揄)’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여 「출판법」에 의해 삭제 처분을 당하기도 하였다.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 대주주로 활동하던 김연만은 이태준이 문학지 발행을 권유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1939년 편집 겸 발행인으로 『문장』을 발간하였다. 주요 필진으로 이태준·정지용·이병기 등이 참여한 『문장』은 『인문평론』과 함께 당대 대표적인 문예지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1944년 김연만은 조선총독부가 연극을 통한 체제 정비 과정에서 만든 조선이동창극단(朝鮮移動唱劇團) 창설에도 관여하였다.
해방 후 김연만은 다시 언론 활동에 뛰어 들어 1947년 『만세보(萬歲報)』를 창간하였다. 그런데 1948년 12월에 속간된 『문장』 3-5호의 「현 단계 문화 발전의 역사적 특질」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전부 압수되고, 『문장』 속간호는 공보처로부터 발매가 금지되었다. 또한 『문장』을 발간한 김연만은 편집 책임자인 정지용과 함께 수도관구 경찰청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되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조선노동당은 남한에서 대중 포섭의 새로운 방법으로 ‘구국투쟁동맹’을 각 지역에 결성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구국투쟁동맹 서울특별시지회가 구성되었는데, 이태준·엄항섭[한국독립당 소속]·이갑성[민주독립당 소속] 등과 함께 김연만의 이름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