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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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驥 |
영어음역 | Yi Han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철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업가.
[활동 사항]
이한기(李漢驥)[1894~1955]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덕포동[현 감문면 곡송리]에서 태어났다. 1899년 1월 덕남서당(德南書堂)에서 수학한 뒤 1910년 3월 개령 개진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3월 취성의숙 중학부 제2년을 수료하였다. 1912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1913년 12월 구국기술과 삼각도근측량강습소를 졸업하였다. 1914년 12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기수를 맡았다. 1917년 4월 와세다대학교 외생법률과(外生法律科)를 졸업하였다. 1923년 9월 김천학원 강사에 위촉되었으며, 1924년 3월 김천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에 촉탁되었다. 1924년 12월 대신금융조합 감사에 피선되었다. 1925년 5월 사법서사(司法書士), 1927년 5월 사법서사회 회장에 뽑혔다.
1930년 2월 송설당교육재단 및 김천중학교 창립 상무를 수임하였고, 4월 김천군 학교 평의원에 피선되었다. 최송설당이 1930년 32만 원이란 거금을 내놓아 김천공립보통학교[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할 당시 김천 유지인 이한기를 불러 학교 설립의 뜻을 밝혔다. 이한기가 고덕환과 함께 법조계 원로인 전 법무부 장관 이인에게 학교 설립을 부탁하였고, 이인이 박영효·이규완 등에게 부탁해 설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931년 2월 송설당교육재단 재무이사가 되었고, 5월 김천읍회 회원에 당선되었다. 1932년 4월 김천금융조합 감사에 피선되었다. 1938년 7월 사법서사를 그만두었다. 1943년 9월 이천주조합자회사 대표 사원에 피선되었다. 1946년 8월 대종교천선시교당(大倧敎泉善施敎堂)을 설립하였다. 1947년 1월 김천주조주식회사 취체역(取締役)에 피선되었다. 1950년 11월 1일 송설당교육재단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1954년 10월 17일까지 재임하였다. 1952년 4월 감문중학교 설립 기성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