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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895
한자 金壽吉
영어음역 Gim Sugi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호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1902년 1월 26일연표보기
활동 1919년 3월 8일연표보기
활동 1919년 4월 17일연표보기
몰년 1932년 3월 23일연표보기
추모 1990년연표보기
출생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김천
활동지 대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만세 시위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수길(金壽吉)은 1902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대구 지역에서는 3월 8일 기독교계와 계성학교·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계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수길은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시위대가 해산 당하자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해 고향인 김천으로 갔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만세 시위를 보고 귀향하여 시위를 계획하던 황금동교회 조사 김충한을 만나 김천에서의 시위를 계획하였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로 사전에 시위 계획이 발각되어 실패하자 김수길은 다시 대구로 돌아와 신정(新町)의 하숙집에서 이영식·허성도 등과 비밀리에 모여 조선 상인들에 대한 철시 투쟁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남산정(南山町) 박준이의 방에서 ‘죽음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관철할 것’이라는 내용의 동정표시경고문(同情表示警告文)를 인쇄하여 시내 각지에 붙였다. 또한 대구경찰서장을 상대로 3월 8일 대구 시위대의 검거 행위에 대해 비판하면서, “너희들과 같은 자는 암살당할 때가 있을 것이니 각오하라.”는 내용의 경고문을 보내 당사자를 위협하였다. 나아가 4월 13일 대구에서 대표적인 친일파 박중양이 자제단을 만들어 만세 시위를 저지하려는 행동에 대해 규탄하면서 ‘친일파에 대한 암살 위협’을 담은 경고문을 박중양 등에게 발송하였다.

4월 17일 김수길이영식·최재화 등과 함께 봉산정 한세동의 집에 모여 ‘혜성단’이란 비밀 결사를 결성하였다. 혜성단은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출판물을 통해 민중의 각성을 도모하고, 만주 지역의 독립 운동 단체와의 연계도 모색했는데, 김수길은 혜성단에서 최재화와 함께 인쇄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4월 18일 김수길은 내당동 방명원의 집에서 「근고동포(謹告同胞)」, 「경고관공리동포(警告官公吏同胞)」 등의 선전문과 경고문을 등사하여 시내 각지에 붙이고, 각 관청의 조선인 관리들에게 보내어 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최재화와 더불어 독립 운동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김수길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출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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