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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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晥鎭 |
영어음역 | Jeong Hwanjin |
이칭/별칭 | 정완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출생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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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43년 5월 |
활동 | 1943년 5월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10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김천 |
활동지 | 대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구 태극단 회원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환진(鄭晥鎭)은 1927년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10번지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증에 수록된 이름은 정완진이다. 공훈전자사료관 포상자 공적조서에는 정환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3년 5월 대구상업학교 4학년에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이던 이상호·김상길·서상교 등이 조직한 항일 비밀 결사 태극단에 가입하여 정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무장 항쟁을 통해 조국 독립을 추구했으며, 국내에서의 투쟁이 어려울 경우 중국으로 집단 망명하여 항쟁을 계속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태극단원들은 비슬산 등에 있는 비밀 장소를 이용하여 학술 토론회와 체육 대회 등을 개최하여 유대를 강화했으며, 군사 서적을 번역하고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공부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43년 5월 익명의 배신자가 밀고하여 조직이 발각되어, 정완진은 다른 단원들과 함께 수업 도중 체포되었다. 이후 일본 경찰의 고문을 받고 같은 해 10월 대구형무소로 옮겨졌다가 기소 유예로 출옥하였다.
해방 후 정완진은 대구의 경북여자고등학교와 대건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고, 경북산업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퇴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