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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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朱南守 |
영어음역 | Ju Nam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주남수(朱南守)는 1892년 9월 2일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3월 20일 거창 지역에서는 거창읍교회를 설립한 주남고[일명 주남선, 주남수의 형] 등 거창읍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형선의 집에서, 김천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후 비밀 결사인 적성단에 가입해 만주의 독립군 양성 학교 입교생을 모집하던 김태연 등과 만나 군자금 모금과 의용병 모집에 대해 모의하였다. 이후 주남수는 형 주남고의 권유로 1919년 8월 이사술(李四述)·이성년(李聖年)·백기주(白基周) 등과 함께 만주군정서에 의용병으로 파견되었다.
주남수는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해 군사 교육을 받은 후 1920년 2월 고향 거창으로 돌아와 거창읍교회 장로 오형선 등과 군자금 모금에 대해 협의했고, 함양의 정장현을 설득해 군자금을 받아 냈다. 그리고 오형선의 집에서 『신한별보(新韓別報)』라는 독립 사상 선전과 동지 규합의 뜻을 담은 신문을 등사기로 인쇄한 후 김천의 송명옥·유진성 및 형 주남고와 함께 거창읍교회를 만든 거창군 능양면의 안덕보와 위천면의 정태균 등에게 이를 배포하여 독립 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1월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주남수의 형 주남고는 목사로서 일제 강점기 말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가 평양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한 민족주의자였다. 주남고에게는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