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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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維城 |
영어음역 | Gang Giseon |
이칭/별칭 | 중보(仲輔),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경희 |
출생 | 15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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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 1645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
묘소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보(仲輔), 호는 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鼐臣)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사위이다.
[활동 사항]
정유성(鄭維城)[1569~1645]은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로, 율곡의 학통을 이을 기량을 지녔다. 율곡 이이가 국방책으로 주장한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지지하는 비변책을 상주하였으나, 그것이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운을 어찌하랴!” 통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유재란 이후에는 둘째 형 정유한(鄭維翰)의 뜻을 좇아 군량미를 마련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헌신하였다.
[묘소]
묘소는 김천시 어모면 태평산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세상에서 비변신통승의랑(備邊神通承議郞)이라 일컬었고, 1645년(인조 23) 8월 27일 작고하자 나라에서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증직하였다. 묘표(墓表)는 윤원거(尹元擧)가 지었고, 비문(碑文)은 김학성(金學性)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