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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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豪族 |
영어음역 | Hojok |
영어의미역 | Local Gent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존재한 지방 세력.
[개설]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장군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후삼국 통합 전쟁은 독자적인 지방 세력인 호족을 무력이나 회유의 방법으로 흡수하는 과정이었다.
[김천의 호족 실상]
현재 김천시를 기반으로 활동하였던 호족의 구체적 실상은 문헌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 지리조를 참조하면, 당시 상주는 예천군(醴泉郡), 고창군(古昌郡), 문소군(聞韶郡), 숭선군(嵩善郡), 개령군(開寧郡), 영동군(永同郡), 관성군(管城郡), 삼년군(三年郡), 고령군(古寧郡), 화령군(化寧郡) 등을 관할하고 있었다. 당시 개령군의 영현으로는 어모현(禦侮縣), 김산현(金山縣), 지례현(知禮縣), 무풍현(茂豊縣) 등이었다. 이와 같은 통치 방식은 1018년(고려 현종 9)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1018년에 지방 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개령군은 상주목(尙州牧)의 직속 군으로, 어모현은 상주목의 직속 현으로, 김산현·지례현은 경산부의 속현으로, 무풍현은 전라도 전주목 관할의 예진현의 속현으로 이속되었다. 따라서 통일 신라 시대부터 1018년 전까지 오늘날 김천 지역은 상주의 관할이라고 할 수 있다. 후삼국 시대 상주 지역을 관할하던 대표적 호족은 아자개(阿玆盖)이다. 918년 아자개가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기 전까지 김천 지역은 아자개의 지배를 받은 지역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