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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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沃川陸氏 |
영어음역 | Okcheon Yukssi |
영어의미역 | Okcheon Yu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
집필자 | 송기동 |
입향 | 15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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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충청북도 옥천군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 |
성씨 시조 | 육보 |
입향 시조 | 육사방 |
[정의]
육보(陸寶)를 시조로 하고 육사방(陸士方)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옥천육씨의 시조인 육보는 중국 절강성 사람으로 신라 경순왕 때 당나라 사신으로 왔다가 경순왕의 부마가 되면서 귀화하여 관성군[옛 옥천]에 봉해진 인물로서 그 후손들이 옥천에 정착해 살면서 옥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김천 지역의 옥천육씨는 3세(世) 육거원(陸巨遠)의 3남 순찰사 육비(陸埤)의 후손으로 순찰공파로 속한다. 상주에 살던 13세 육사방이 임진왜란 때 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가던 중 상주와 김천의 경계 마을로서 골이 깊은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감문면 문무리에 정착한 이후 15세 육윤선(陸倫先)이 인조 때 호조좌랑을 역임하고 16세 육태운(陸泰運)이 음직으로 한성부좌윤에 올랐다. 김천에 입향한 이후 두드러진 인물로는 12세 어모장군 육후문(陸厚文)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벼슬이 부총관에 이르렀다.
[현황]
후손인 육영식에 의하면 2010년 2월 말 현재 김천 지역의 옥천육씨는 감문면 문무리에 15가구, 금곡리 가메실마을에 12가구, 신음동에 1가구, 부곡동과 성내동에 각 2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