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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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炭洞誌 |
영어음역 | Tandongji |
영어의미역 | Chronicle of Tan-dong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권희 |
[정의]
조선 후기 정후시(鄭厚時)가 김천 지역 해주 정씨의 탄동 개척사를 정리한 책.
[개설]
『탄동지(炭洞誌)』는 조선 후기 인물로 추정되는 정후시가 해주 정씨 가문에서 탄동을 개척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해주 정씨 가의 사적과 관련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1669년(현종 10) 김지익(金之益)이 쓴 「제탄동사적후(題炭洞事蹟後)」에 보면 “탄동(炭洞)은 옛날에 임씨(林氏)와 정씨(鄭氏)가 거주했던 지역으로 문장(文章)과 이름난 현인(賢人)·열녀(烈女)·효부(孝婦)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었으며, 필자도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어 왔다. 그러나 문헌으로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을 징험할 수 없어 세상에 글로 전해지지 않을까를 염려했으나 마침 정후시의 증손되는 정대원(鄭大源)이 증조부가 지은 『탄동지』와 빈 책을 주며 등서(謄書)해 주기를 청하였다. 필자 또한 정후시의 외예(外裔)로 그를 흠모하던 차에 정대원의 요청에 겸손한 자세로 등서를 하였다.”고 쓰여 있다.
1674년(현종 15) 이하가 쓴 「서탄동사적후(書炭洞事蹟後)」에는, 탄동의 많은 명인과 사적이 병선(兵燹)으로 문헌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동인(洞人) 정공(鄭公)[정후시]이 탄동의 사적 1책을 보술(補述)했다고 적혀 있다.
[형태/서지]
1권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가로 33.0㎝, 세로 21.0㎝이다. 괘사와 계선이 있으며,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0자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내용은 「탄동사적서(炭洞事蹟序)」, 「탄동사적(炭洞事蹟)」에 이어 「임엄씨여사급시축동지사부록(林嚴氏女事及始築洞池事附錄)」, 「증유□국사신(贈琉□國使臣)」, 「퇴계만장(退溪輓章)」[2수], 「정병진가환이하등조부(鄭丙辰家患以下等條附)」, 「병진가환(丙辰家患)」, 「예관자□청죄원정(詣官自□請罪原情)」, 「향중정문(鄕中呈文)」, 「감사장계(監司狀啓)」, 「형조회계(刑曹回啓)」, 「대신수의(大臣收議)」, 「답이태립이윤무서(答李泰立李胤武書)」, 「봉차제운송정시우북귀(奉次諸韻送鄭時遇北歸)」, 「정효자명시전(鄭孝子明時傳)」, 「제정효자명시전후(題鄭孝子明時傳後)」, 「일향정문(一鄕呈文)」, 「서탄동사적후(書炭洞事蹟後)」, 「제탄동사적후(題炭洞事蹟後)」 등 처음 탄동에 정착한 임씨와 정씨의 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씨의 사적은 약간 소개되어 있고, 이후는 대부분 정씨의 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탄동지』는 필사본으로 등재되어 널리 배포되지는 못하였으나, 탄동의 발전과 해주 정씨의 사적을 잘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