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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댐 건설 반대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49
한자 甘川-建設反對運動
영어음역 Gamcheondaem Geonseol Bandae Undong
영어의미역 Resistance Against the Construction of Gamcheon D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1996년 8월 8일연표보기
종결 1997년 10월연표보기
전개 1997년 4월 25일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종결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사회 운동
관련 인물/단체 이종상|김만호|이현동

[정의]

1996~1997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감천댐 건설 반대 운동.

[역사적 배경]

1995년 시·군 통합 시의회에서 제적 의원 전원 참석에 28:1[당시 회의록에는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수자원공사에 댐 건설을 요청함에 따라 당시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정부는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을 위해 감천댐을 건설할 목표를 세웠다. 1996년 4월부터 1997년 4월까지 국고 57억 원을 들여 완공할 계획을 세우고,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현지 조사를 몰래 실시하다가 1996년 8월 주민들에게 탐지되었다.

[경과]

감천댐 예정지로 김천시 구성면 미평리에 두 곳이 지목되었는데, 이곳에 댐이 건설되면 4개 면[구성면·지례면·부항면·대덕면], 20개 리가 수몰되고 1,100세대 1만5000명이 고향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양파 주산지 4500만㎡를 비롯하여 문화재·선사 유적지·서원·정각·사당 등 수많은 문화재가 수몰되고, 자연 파괴와 생태계·기후의 변화가 크다는 문제가 함께 대두되었다.

1996년 8월 8일 지례면민이 감천댐건설반대위원회[위원장 이종상, 뒤에 김만호]를 결성하였다. 8월 19일에는 부항면, 8월 23일에는 구성면에서도 위원회가 차례로 결성되었다. 8월 24일에는 3개 면 연합대책위원회[위원장 이현동·이종상]를 결성하고, 면마다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1997년 4월 25일에는 8만 1847명이 연서한 진정서를 건설교통부에 내고 댐 건설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대책 위원장들은 국회를 방문하고, 청원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벌였다. 또 지례면의 종교 지도자 30명이 공동으로 댐 건설 반대를 결의하였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장관은 1997년 10월 국회 질의 답변에서 방안을 추진할 것이며, 만일 추진할 경우는 지방 자치 단체와 협의하고 공청회 등 주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하였다.

[결과]

정부의 감천댐 건설 방안은 지역 사회와 주민의 반대 운동에 부딪쳐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감천댐 건설 문제는 1996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에 있었다. 그것은 1996년 정부에 의해 댐 건설이 다시 추진된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004년에도 감천댐 주민대책위원회 회원 50명이 감천댐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2005년 7월 건설교통부는 총 사업비 4191억 원 규모가 투입될 부항댐[감천댐] 건설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7월 22일 건설교통부는 낙동강 유역의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을 위해 추진 중인 부항댐 건설 사업의 환경 영향 평가 및 관계 기관 협의가 완료됨에 따라 댐 건설 기본 계획을 고시,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2011년 완공을 목표로, 홍수 시 1200만 톤에서 최대 5200만 톤 이상의 물을 저장함으로서 경상북도 김천시의 홍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추진되고 있다. 2009년 말 현재 부항댐은 46.5% 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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