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일본군 군중 발포 만행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548
한자 日本軍群衆發砲蠻行事件
영어음역 Ilbongun Gunjung Balpo Manhaeng Sageon
영어의미역 The Brutal Shooting of the Crowd by the Japanese Arm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1945년 8월 20일연표보기
종결 1945년 8월 20일연표보기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종결 장소 경상북도 김천시
성격 시민 발포 사건

[정의]

1945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본국으로 철수하던 일본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한 사건.

[역사적 배경]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만주에서 패전하게 되자 관동군이 일본 본국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철수 도중 김천역을 출발한 기차에서 김천 시내를 향해 기관총으로 발포하였다.

[발단]

해방 직후인 8월 18일 김천군 김천극장에서 김천건국준비위원회[이하 김천건준] 결성 대회가 열렸고, 이어 김천건국준비위원회 산하에 치안대를 설치하였다. 8월 20일 김천장날을 기하여 김천건국준비위원회 개최로 해방을 경축하는 시민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구경나온 시민들이 크게 몰려들었다. 시민대회 행렬이 김천역에 다다랐을 때, 김천역 구내에는 만주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대기 중인 관동군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 두 진영이 갈증으로 인해 수돗물을 서로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언쟁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과]

두 진영 간 충돌 직전 일본 관동군이 출발하는 군용 열차에 올라타면서 더 이상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군용 열차가 김천역을 출발해 100m 지점을 통과할 때, 관동군이 열차 안에서 시내를 향해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 총격으로 인해 시민대회에 참석한 김천시민 중 10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중경상의 피해를 입었다.

[결과]

일본군 군중 발포 만행 사건으로 김천 시민의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상황에서 김천건국준비위원회와 치안대는 일본인 대표를 불러 3일간 부역을 하게 하였다. 이로써 김천시민의 일본인에 대한 보복 기세는 가라앉았고 다시금 안정된 치안을 확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