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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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甑山面警察戰鬪 |
영어음역 | Jeungsan-myeon Gyeongchal Jeontu |
영어의미역 | The Jeungsan-myeon Police Battl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발생|시작 | 1950년 10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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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 1951년 7월 14일 |
발생|시작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종결 장소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
성격 | 전쟁 |
[정의]
6·25전쟁 중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일대에서 공산군과 경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6·25전쟁 당시 김천을 점령했던 공산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기 시작해 산악 지대로 숨어들었다. 그 가운데 불꽃사단이라 부르는 공산군 3000여 명이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 주둔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던 국군 제877경비대와 잦은 전투를 벌였다.
[경과]
1950년 10월 24일 밤 자정 무렵 불꽃사단 일부가 증산지서를 습격하여 이기섭 경위를 비롯한 경찰관 6명을 사살했다. 같은 해 11월 18일에도 불꽃사단 일부가 증산지서를 기습 공격해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도주하였다. 이때부터 국군과 경찰은 증산 지역에 주둔한 공산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수행하였다.
1950년 11월 24일 국군 제877대대와 경상북도 특경 대원, 의용 경찰 대원, 지방 자체 특공 대원 등 200명이 합동으로 수도산에 은거한 공산군의 아지트를 공격하였다. 이 전투에서 공산군 80명이 사살되고, 13명은 생포되었으며, 국군과 경찰 50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1951년 2월 불꽃사단이 증산지서를 재차 공격하는 과정에서 피아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또 1951년 7월 14일 수도산 청암사에 집결해 있던 불꽃사단은 승려들을 마을로 내려 보내 주민들을 청암사에 집결토록 했다. 주민들은 김천경찰서에 지원 요청을 했으며, 이에 경찰 병력과 청년 단원 등 120여 명이 전투에 대비하였다. 이날 밤 11시 무렵 공산군이 계곡을 통해 마을로 내려오던 중 길목을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과 마주쳤다.
[결과]
이 전투에서 공산군의 피해도 컸으나 당시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 중이던 쌍계사가 불타 소실되었다. 이후 공산군은 계속되는 국군과 경찰의 토벌 작전, 보급품 부족과 혹독한 겨울로 인해 점차 약화되다가 종국적으로 패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