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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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鐵道警察隊金泉支隊 |
영어음역 | Daegu Cheoldo Gyeongchaldae Gimcheon Jidae |
영어의미역 | Gimcheon Branch of the Daegu Railroad Polic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6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된 철도 파괴 방지 경찰대.
[변천]
철도경찰대는 1946년 1월 25일 해방 이후 민족 대이동기에 처하여 운수력 부족으로 인한 혼란 사태 방지와 철도 파괴에 대한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김천(金泉)에서는 같은 해 3월 16일에 철도경찰 김천경찰서가 설치되어 서장과 수사관 3명 등이 부임하여 업무를 개시하였다.
1947년 3월 철도경찰이 국립경찰에 통합될 당시에 김천경찰서는 직원 수가 80명으로 증가되어 있었고 영동지서(永同支署)와 상주출장소(尙州出張所)를 설치하였다. 관할 구역은 영동역으로부터 약목역(若木驛)까지 철도 연장 42.222㎞와 경북선 점촌(店村)까지 철도 연장 59㎞에 이르고 그 사이 18개 역과 기타 8개소의 부내 각 기관을 포함하여 총 종업원이 2000여 명에 이르렀다.
1949년 6월 경찰 기관 개혁으로 철도관구경찰청이 내무부 소속으로 변경되어 철도경찰대로 개칭됨에 따라 철도경찰 김천경찰서도 대구철도경찰대에 예속되면서 대구철도경찰대 김천지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당시 대구철도경찰대 김천지대는 상주(尙州), 직지사(直指寺), 옥산(玉山), 왜관(倭館) 등지에 파견대를 두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철도경찰대 김천지대는 해방과 건국의 시기에 좌우익 간 충돌과 갈등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1946년 대구에서 발생하여 전국으로 확대된 ‘10월 사건’을 비롯하여 철도총파업, 2·7사건, 5·10총선거, 대구반란사건 당시 철도 경비와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제주도 4·3사건, 여순사건 등의 주요 사건 때에도 출동하여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다. 38선 전신 경비의 지원을 위해 출동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