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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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泉殖産契 |
영어음역 | Gimcheon Siksangye |
영어의미역 | Gimcheon Rotating Credit Associations for the Purpose of Increasing Property-Holdi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 19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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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 1919년 3월 |
최초 설립지 | 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 43-66 |
성격 | 금융 기관 |
설립자 | 이윤용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었던 사설 금융 기관.
[개설]
김천 식산계는 1914년 무렵 각 지방에 금융 기관 설치가 성행할 때, 서울에서 내려 온 이윤용(李允用)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사설 금융 기관이다. 처음에는 계원을 모집하여 계금을 기금으로 대금 업무를 시작한 것이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어 예금 업무까지 겸하게 되어 금융 기관으로서 기능을 갖게 되었다.
[변천]
1914년 당시 김천군 모암동 43-66번지에 근대식 사옥을 건축하였다. 지금의 김천시 보건소 부근의 옛 김천금융조합의 근대식 건물이 당시 저축계의 건물이었다. 운영 실무자로 초대 이사에 김좌식(金佐植)을 앉히고 배후에서는 이윤용이 조정하였으며 당시 김천의 서민층 상공인을 대상으로 계 형식의 저축과 대부 업무로 명성 일로를 걷고 있었다. 3년을 역임한 초대 이사 김좌식에 이어 2대 이사는 석태형(石泰衡)이 맡았다. 농공은행이 중류의 농상공업인을 상대로 하여 영업했다면 저축계는 영세 소상공업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것이었다.
1919년 3월 김천에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석태형이 김천 식산계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던 등사기로 독립 선언서를 등사하였는데, 그 유지가 발각되어 관계자들이 투옥 또는 도피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김천 식산계를 폐쇄하고 건물은 일제 관헌 당국에 접수되어 김천금융조합이 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