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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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陵金融組合 |
영어음역 | Geumneung Geumnyung Johap |
영어의미역 | Geumneung Financial Un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 1909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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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 1956년 5월 1일 |
관련 사항 | 1961년 |
최초 설립지 | 경상북도 김천시 용두동 |
성격 | 금융 기관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립된 금융 기관.
[개설]
금융 조합은 일제 강점 전후 일제가 한국 경제를 식민지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설립한 금융 기관이다. 김천을 비롯한 지방 금융 조합 제도는 대한제국 정부가 아닌 메가다[目賀田]의 구상에 따라 재정고문부와 지부의 일본인 관리 주도로 추진되었다.
[설립 목적]
농공은행을 보조하여 지역의 금융 경색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금융 조합은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3년 전에 농촌 경제권 장악을 위해 설립에 착수했으며 병합 당시에는 전국에 100여 개 정도의 금융 조합이 있었다. 금릉금융조합은 1909년 8월 16일에 용두동 전 금릉군 농업협동조합 자리에 설치되었다. 1919년 1월 20일에는 지례에 지례금융조합이 설치되어 지례면, 부항면, 증산면, 대덕면의 농공을 관할하였다. 같은 해 2월 12일에는 김천면의 도시 농상공업의 영세자를 상대로 김천금융조합이 창립되었다.
1925년 1월 26일에는 아포면 대신동 역전에 대신금융조합이 설립되어 농소면, 아포면, 남면을 관장하였다. 1931년에는 금릉서부금융조합이 설립되어 시내와 군의 서부 지방을 관할하였다. 금릉금융조합은 해방 직전 김천금융조합을, 해방 직후에는 금릉서부금융조합을 합병하였다. 1956년 5월 1일 농업은행이 설립되면서 흡수·폐쇄되었으며,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농업협동조합으로 재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07년부터 시작된 김천을 비롯한 지방 금융 조합의 활동은 농사 자금의 대부, 위탁 판매, 농사 지도 등을 통해 쌀의 상품화를 촉진하였다. 농지 담보 대부를 위주로 하면서 무담보 신용 대부로 선심도 보였으나 2차 대전 기간에는 천인(天引) 저금이라 하여 수십 종에 달하는 농촌 산물 대금의 1할 또는 2할을 저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