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10 |
---|---|
한자 | 朝鮮殖産銀行金泉支店 |
영어음역 | Joseon Siksan Eunhaeng Gimcheon Jijeom |
영어의미역 | Gimcheon Branch of the Joseon Industrial Ban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었던 조선식산은행 소속 지점.
[개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0월 산업 개발을 위한 조선총독부의 금융 정책에 따라 설립된 장기 투자 금융 기관이다.
[변천]
1906년 한국 칙령 제12호 은행 조령 및 칙령 제13호 농공은행 조령에 따라 자본금 14만 원으로 주식회사 대구농공은행이 설립되었다. 1908년 대구농공은행은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고 자본금 20만 원의 주식회사 경상농공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1911년 11월 다시 자본금을 60만 원으로 증액하고 해산된 진주어음조합과 대구어음조합의 권리 의무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1909년 김천에 지점을 설치하고 신기동에 영업소를 개설했으며 1911년 12월에는 영업소를 신축하였다. 당시 경상농공은행의 지점은 김천을 비롯하여 마산, 부산, 통영, 상주, 포항 등 7개소에 달했다.
그러나 1918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제령 제7호 조선식산은행령의 발포로 서울에 자본금 1000만 원의 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고 국내 7개 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에 흡수되면서 김천 지역의 경상농공은행 지점도 조선식산은행 지점으로 개편되었다. 1934년 하반기 조선식산은행 김천지점의 영업 현황을 보면 예금고 869만 6757원에 대부고 516만 9491원이었다. 6·25전쟁 후에는 사회 혼란과 더불어 금융계에도 위기가 오게 되면서 조선식산은행은 문을 닫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식산은행은 장기 산업 자금을 위주로 했으나 김천 지역에는 그 대상자가 적어 오히려 단기성의 상업 자금 위주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는 수리 사업이 성행과 더불어 조선식산은행에서는 수리 사업 자금의 공공 대부가 많이 늘었으며 광공업 부문과 더불어 일반 상공업의 융자가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