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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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北道米豆檢査所金泉支所 |
영어음역 | Gyeongsangbukdo Midu Geomsaso Gimcheonjiso |
영어의미역 | The Gimcheon Branch of the Inspection Office of the Rice Speculation Market in Gyeonsangbuk-d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 1914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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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 1917년 9월 |
개칭 | 1920년 6월 |
최초 설립지 |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 |
성격 | 검사소 |
설립자 | 조선총독부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성내동에 있었던 경상북도 미두검사소 소속 지소.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주요 농산물은 미곡과 대두였다. 일제는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구축한 식민지 지주제를 기반으로 조선의 미곡 증산을 목표로 산미 증식 계획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생산된 미곡의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곡물 품질에 대한 검사가 요청되었다. 이에 1914년 9월 경상북도 곡물상들도 미곡의 수출 가격을 높이고 품질을 통일하기 위해 경상북도 곡물개량조합을 조직하여 기술원을 두고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으며, 경상북도 미두검사소 김천지소는 김천 지역의 검사를 위해 그 산하 조직으로 설치되었다.
[변천]
경상북도 곡물개량조합은 1914년 당시 본부를 대구에 두고 김천을 비롯한 도내 수개 처에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김천출장소는 김천 성내정(城內町)[현 김천시 성내동]에서 열렸으며 모리시게[森繁重助]가 검사원으로 파견되었다. 1917년 9월 조선총독부령으로 미두(米豆) 검사 규칙이 발포되면서 종래의 미두검사소는 지방비로 충당되기에 이르러 도 당국에 업무가 이관되었으며 김천출장소는 김천미두검사소로 바뀌었다.
또한 1920년 6월 도 훈령 제45호로 경상북도 미두검사소 김천지소로 변경되었으며 10월에는 칙령(勅令)으로서 지방비지변직원대우령의 발포와 함께 관제를 변경하여 운영하였다. 당시 경상북도미두검사소 김천지소의 주요 구성원은 모리시게[森繁重助], 후찌다[藤田近治], 오꾸노[奧野德景], 오카다[岡田喜代松], 모리시게[森繁喜代松], 마쯔요시[松吉良], 에시마[江島四郞], 나까하라[中原四郞], 요시모도[萓本重義], 모미요시[富吉竹治] 등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0년부터 3년간 미두 검사 실적을 살펴보면, 1920년에 현미는 33만 9098톤, 대두는 1만 3849톤, 1921년에 현미는 34만 9708톤, 대두는 1만 535톤, 1922년에 현미는 47만 2048톤, 대두는 1만 6675톤을 검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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