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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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鳳里 |
영어음역 | Ob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수(梧水)의 ‘오(梧)’자와 봉곡(鳳谷)의 ‘봉(鳳)’자를 따서 오봉(梧鳳)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오수·봉곡·갈항(葛項)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오봉동이 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오봉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사등(沙嶝)[일명 모래등]·봉곡·원골·갈손(葛孫)·오수가 오봉1동, 갈항·삼가(三家)·우장(牛場)이 오봉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오봉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남면 오봉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쪽은 제석봉 줄기가 남쪽으로 뻗으면서 가로막고, 남쪽은 금오산과 절골산이 맞닿아 있다. 중앙에는 연봉천이 흐르고 오봉저수지가 있다. 마을 뒤로는 과거 오수에서 운곡으로 넘어가던 수리님고개가 있다. 김천장을 보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어린 신부가 식음을 전폐하고 고갯마루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다 숨을 거두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원골 뒤로는 높이 350m의 효자봉(孝子峰)이 있다. 약 300년 전 큰비가 내려 연봉천이 범람했을 때 마을에 살던 효자가 노모(老母)를 업어 산으로 피신시켰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봉저수지는 1979년 착공해 1987년 준공한 김천 최대의 인공 저수지로 연봉천을 가로막아 만든 높이 24m 길이 280m의 담수호이다. 김천시 남면·아포읍, 선산군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와 여름철 레저 스포츠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현황]
오봉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9.4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72세대에 319명(남자 161명, 여자 15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아포읍 대성리와 구미시, 남쪽으로 부상리와 이웃하고 있다. 오봉1리·오봉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나주 임씨·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문화 유적으로는 748년(경덕왕 7) 신라 왕실의 지원으로 승전대사(勝詮大師)가 창건한 갈항사 터, 보물 제245호인 김천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김천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갈항사(葛項寺)가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1900년대 초까지 두상만 노출된 상태로 매몰되어 있던 것을 주민들이 발굴하여 초가집을 지어 봉안해 오다가 1978년 현재의 보호각을 세웠다.
보호각 앞 자두밭에는 갈항사 삼층석탑 2기가 있었으나 1916년 6월 일본 금석학자들이 탑의 건립 연대를 기록한 명문(銘文)이 명확하게 새겨진 탑의 가치를 간파하고 같은 해 2월에 있었던 도굴 사건을 핑계로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미명 아래 경복궁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해 버렸다. 광복 후 1962년 국보 제99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으로 다시 이전되는 우여곡절 끝에 현재 용산국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두 탑이 나란히 서 있다.
자연 마을로는 원골·갈손·오수·봉곡·사등·갈항·삼가·우장 등이 있다. 사등은 연봉천 변 모래 언덕에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봉곡은 마을 뒤 골짜기 모양이 봉황을 닮았다 붙인 이름이다. 봉곡 맞은편 연봉천 건너 수리님고개 아래에 있는 오수는 나주 나씨(羅州羅氏) 나기림(羅起林)이 임진왜란 때 나주에서 이곳으로 피난 왔다가 정착한 이래 대대로 나주 나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주변 다섯 골짜기에서 물이 흐른다 하여 오수(五水)라 하였다가 ‘오동나무 오(梧)’자를 쓴 오수(梧水)로 바뀌었다.
오수 주민들은 근년까지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고 개울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마을 지형이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이라 마을에 샘을 파면 곧 배에 구멍을 뚫는 격이 되어 마을에 화가 미친다는 풍수지리설에 기인한 것이다. 오봉저수지 중간에 있는 원골은 옛날 오수와 갈손에서 살던 나씨와 밀양 박씨가 이주한 뒤 이루어진 마을이다. 갈손은 오봉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오봉대교 너머 운남산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마을에 칡넝쿨이 많아 붙인 이름이다. 밀양 박씨 박기성(朴基成)이 영조 때 아포에서 이주해 정착한 이래 밀양 박씨가 집성을 이루었다.
갈항은 금오산 서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갈항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변에 칡이 많았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삼가는 갈항 아래에 1930년대 형성된 마을이다. 손씨·백씨·강씨 등 세 집만 살았다 하여 삼가 또는 세집마라 불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하여 씨집매·새마을로도 불린다. 우장은 삼가 안쪽 금오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금오산성을 보수하거나 군수품을 운반할 때 마을까지는 소로 운반하고 마을에서부터는 소를 매어 두고 금오산성까지 사람이 등짐으로 지고 날랐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쇠바탱이·쇠마당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