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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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明里 |
영어음역 | Wolmy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섶밭·운봉(雲峰)·동릉(東陵)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월명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월명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신전이 월명1동, 운봉·상릉·하릉이 월명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월명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남면 월명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월명1리 섶밭 앞에 남북지(南北池)가 있고 영암산과 금오산이 마을을 양쪽에서 에워싸고 있다. 월명2리 운봉·상릉·하릉은 성주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간 오지이다.
[현황]
월명리는 남면 소재지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약 10㎞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8.55㎢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204세대에 407명(남자 160명, 여자 2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월명1리·월명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의령 여씨·영월 엄씨 집성촌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아포~현풍 구간이 개통되고 남김천요금소가 개통되면서 일약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했다. 문화 유적으로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0호인 김천 미륵암 석조미륵불입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도둑이 김천에서 소를 훔쳐 고개를 넘어가는데 밤새도록 걸어도 미륵불 주위만 맴돌게 되었다. 화가 난 도둑이 도끼로 미륵불을 내리쳐 왼팔이 떨어지면서 도둑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이 도둑을 묻은 도둑묘라고 전해지는 봉분이 근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1999년 미륵암에서 나당연합군으로 백제 정벌에 참여했던 당나라 시(柴) 장군의 비가 출토됨에 따라 미륵암이 신라 때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섶밭·운봉·상릉·하릉 등이 있다. 섶밭은 옛날 마을에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밭이 있어 숯밭이라 한 것이 변한 이름이다. 한자 표기는 신전(薪田)이다. 임진왜란 때 김해 김씨 김홍일(金洪一)이 칠곡군에서 이주해 온 뒤 후손들이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54년 축조된 마을 앞 저수지 남북지는 땅은 남면에 있고 모아 둔 물은 칠곡군 북삼읍에서 이용한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수년 전까지 마을 앞 성주~김천 간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던 말구리라는 작은 마을은 얼마 전 중부내륙고속도로 아포~현풍 구간이 개설되면서 폐동되어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어 예부터 인마의 통행이 빈번해 말발굽을 갈아 주는 대장간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운봉은 일대의 지대가 높아 항상 산에 구름이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영월 엄씨 집성촌으로 수사공파(水使公派) 22세손인 엄환이 영조 때 어모면 남산리 상남에서 이주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집성을 이루어 살고 있다. 운봉을 지나 감징이고개[일명 서낭대이]를 넘어서면 신기하게도 산 정상부로부터 논밭이 펼쳐지면서 상릉과 하릉이 눈앞에 펼쳐진다.
상릉·하릉은 통칭하여 동릉이라고 한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동쪽에 큰 무덤이 있어 동릉이라 하고 무덤 위쪽 마을을 상릉, 아래쪽 마을을 하릉이라 하였다. 의령 여씨 여종록(余宗綠)이 영조 때 선산에서 상릉으로 입향한 이래 집성을 이루어 왔다. 풍수지리상 상릉·하릉이 떠나가는 배의 형국인지라 마을을 세울 때 한 도사가 마을의 상중하에 돛대를 상징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근년에 두 그루가 잘려 나가고 하릉의 나무마저 2002년 태풍으로 가지가 잘려 나가자 마을 주민들이 부러진 나뭇가지로 장승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