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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특산물인 마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 마(Dioscorea opposita Thumb)는 마과에 속하는 덩굴성 다년초로,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 순수한 자연마를 밭에서 재배하여 토종마 또는 자연마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마를 먹어 왔는데 한자로 서여(薯蕷)가 바로 마를 일컫는다. 백제의 무왕(武王)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善化公主)의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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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민가의 한 형태로 지붕 용마루 아래 박공 부분에 구멍을 낸 집. 안동 지역의 독특한 가옥 형태의 하나인 까치구멍집은 겹집 형태로 ‘ㅁ’자형의 폐쇄형 가옥이다. 대문만 닫으면 맹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도 집안에서 취사와 난방 및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 같은 특성상 구조가 폐쇄적이어서 실내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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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용상동의 옛 이름은 마평(馬坪)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에 피난 왔을 때 기산(岐山)에 성을 쌓고 이곳에서 말을 먹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뜰·맛들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 전기의 재상 맹사성(孟思誠)이 안동부사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비만 오면 낙동강 가의 제방이 유실되었다. 하루는 마씨(馬氏) 성을 가진 사람의 꿈에 청룡(靑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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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안동시 임동면 마령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다. 임하호에 잠기기 이전의 지형을 보면 임동면 소재지에서 대곡천을 끼고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음지마을 쪽으로 약 200m 올라가 산 비탈면에 2기의 고인돌이 11m 간격으로 서 있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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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안동시 임동면 마령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다. 임하호에 잠기기 이전의 지형을 보면 임동면 소재지에서 대곡천을 끼고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음지마을 쪽으로 약 200m 올라가 산 비탈면에 2기의 고인돌이 11m 간격으로 서 있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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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수몰되기 전의 마을 모습이 우마(牛馬)가 짐을 싣고 있는 형국, 또는 말발굽 형상인 데서 맛재, 마령(馬嶺)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쇠랑실, 우무골, 이식골, 송골, 지리실, 한내골 등을 마령리로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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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안동시 임동면 마령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다. 임하호에 잠기기 이전의 지형을 보면 임동면 소재지에서 대곡천을 끼고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음지마을 쪽으로 약 200m 올라가 산 비탈면에 2기의 고인돌이 11m 간격으로 서 있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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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안동시 임동면 마령2리 1075번지 일대에 있다. 임하호에 잠기기 이전의 지형을 보면 임동면 소재지에서 대곡천을 끼고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3㎞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음지마을 쪽으로 약 200m 올라가 산 비탈면에 2기의 고인돌이 11m 간격으로 서 있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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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마령1리에서 10년마다 주민들이 지내던 마을 공동체 제의. 마령별신굿은 마을의 안녕과 가축 보호라는 생활의 필요성에 의해 10년에 한 번씩 즐겨 놀면서 일상생활의 변화를 얻고자 치르는 마을 공동행사의 하나이다.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어 사라진 임동면 마령1리는 주민 전체가 현재의 이주단지로 이주하였다. 이때 당집도 함께 이건하여 마을 뒷산에 모셔 두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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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봉(斗里峯)의 응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름·만음·원만음이라고도 한다. 약 400년 전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의령옥씨(宜寧玉氏)들이 개척하면서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만음·개곡·서당리·명곡이 통합되어 만음리가 되었다. 뒤로 낮은 산이 있고, 가운데로 백자천과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안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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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법정리. 삼한시대에 마읍군(馬邑郡)이 있었으므로 마읍(馬邑), 또는 맛골, 마읍촌(馬邑村)으로 불리다가 마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북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천·도수곡·신기·사곡을 병합하여 마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안동군 월곡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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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진리에 있는 중앙선 철도역. 마사역이 위치한 지역은 기타 대중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여객 열차가 정차하던 당시에는 안동이나 울산, 대구 지역 등으로 가는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1958년 4월 1일에 역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업무를 시작하였으며, 1966년 8월 16일 역사를 신축하여 완공하였다. 1966년 11월 1일에는 역원 배치 간이역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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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신(景信), 호는 마애(磨厓). 권거약(權居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자겸(權自謙), 아버지는 권철경(權哲經), 어머니는 황윤경(黃允卿)의 딸이다. 권예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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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하경(夏卿), 호는 고산(孤山)·마애(磨崖)·나암(懶庵)·우원(芋園)·우포(芋圃)·사익당(四益堂).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낸 이진(李珍), 아버지는 통덕랑 이정발(李廷發),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이유장은 경상부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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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마을의 모습이 중국의 망천(輞川)을 닮아서 망천이라 하다가,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긴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애(磨崖)라 하였다. 마래, 마라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산내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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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마애리 구석기 유적은 풍산읍 풍산평야의 서남쪽 끝에 있는 마애마을 동남쪽의 낙동강변에 위치한다. 유적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데, 이로 인해 유적이 있는 일대는 오랜 기간 비옥한 토양이 퇴적되어 하안단구 지층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왔다. 2007년 시굴 당시 구석기시대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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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진성이씨 동성마을. 마을의 형상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비슷하다고 하여 망천이라고 하였다가, 절벽의 바위에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麻厓)라고 불렀다. 진성이씨는 본동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송군에서 살고 있던 진성이씨의 시조 이석(李碩)의 아들인 이자수(李子脩)가 터를 잡았으나, 만년에 와룡면 주촌으로 옮겨가 살았다. 그 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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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풍산읍 마애리의 망천사지(輞川寺址)라고 전해지는 곳에 남아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목과 신체가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으나 얼굴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나발(螺髮)을 조각한 머리 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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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 당제는 다른 마을과 달리 제의 절차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당주가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면을 보여준다. 당주는 가송마을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봉화금씨들로 그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데, 그만큼 공민왕이나 공주당과의 인연이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금용극 옹이 기억하는 당주로는 약 100여 년 전의 ‘운동어른’과 그 다음에 당주를 맡은 ‘걸노인’, 그리고 ‘주실어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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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촌체험은 크게 자연경관을 활용한 래프팅과 천렵, 산책 등과 농촌생활을 활용한 농사체험 및 음식 만들기 등, 그리고 전통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행사가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농촌생활과 전통문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통문화 체험은 마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가르쳐 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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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로 들어서서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골목길을 들어서면 하회보건진료소가 보인다. 보건진료소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주변의 고가(古家)와 어울려 이곳이 보건진료소가 맞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보건진료소라고 하면 으레 번드르르한 현대식 건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회마을보건진료소는 아담한 크기의 한옥이다. 대문마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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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종가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하회마을 충효당에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전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풍산류씨 서애파 종부 최소희 할머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최소희 할머니는 스무 살 때 하회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을 오기 전 할머니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한국전쟁으로 시국이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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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 당제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에는 상쇠를 맡고 있는 이일영 옹이 있다. 이일영 옹은 풍물을 울리면서 신을 즐겁게 하는, 가송마을 전통을 이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마을 상쇠 이일영 옹은 예전 어렸을 때 보아온 가송마을 풍물에 대해 아마 전국에서 최고일 거라고 강조한다. 완벽하게 12차 풍물가락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 앞에서 연행하는 진법치기는 그야말로 화려한 볼거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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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의 동제에는 마을굿의 전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우선 동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월 열흘 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풍물을 치면서 걸립을 하러 다녔다. 이를 오미리에서는 ‘굿 친다’ 혹은 ‘굿 두드린다’고 했는데, 그 무리를 굿패라고 불렀다. 굿패가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걸치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집주인이 쌀 한 되박을 자루에 부어 주고는 식구들이 함께 흥을 즐기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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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마을의 부인당(일명 공주당)은 약 3.3㎡ 남짓한 기와건물로, 당 안에는 갖가지 옷가지가 화려하게 걸려 있고 성황대도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것은 부인당에서 모시는 신이 노국공주인가, 아니면 공민왕과 노국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가 하는 점인데, 이는 공주당과 부인당이라는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어 정확한 신의 정체를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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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천은 아주 오래 전에 ‘용전’이라 불렸다는데, 옹천리와 관련하여 모르는 것이 없다는 강신중 옹은 이 이름이 마을의 남산 쪽에 있던 용바위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옹천이라는 이름은 요새 생겼고. 그 전에는 용전이라고도 그랬어요. 용용(龍)자, 밭전(田)자를 썼어요. 이 뜻이 뭐냐 하면, 옛날 5천 년 전 실농씨가 있었지요. 염제(炎帝) 실농씨라고 하면 의약을 제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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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청성산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곳에서, 청성산이 남쪽을 막고 있어 막실·두곡·막곡촌이라 하였다. 또한 후삼국시대에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안동의 합전교(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진을 치고 전투할 때 지역의 호족들이 의병을 일으켜 마을에 진을 쳤는데, 이때 커다란 군막을 쳐서 주둔하였으므로 막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안동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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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막곡리 고분군은 세 곳으로 나누어진다. 막곡리 고분군1은 속칭 방갓골 뒤쪽 능선에 30여기의 고분이 반달 모양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방갓골 내에 있는 의성김씨 율리 종택(義城金氏栗里宗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81호)에서 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송야천과 그 좌우 경작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막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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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합전다리(현 안동시 송현동) 부근에서 전투를 할 때 지역 의병들이 마을 골짜기에서 진(陳)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막(幕)을 치고 주둔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막을 쳤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막곡(幕谷)으로 불렀다.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웃막실마을이며, 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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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음력으로 12월 30일에 행하는 풍속. 섣달은 일 년 12달의 마지막달이라 하여 ‘막가는 달’ 또는 ‘막달’이라고도 한다. 섣달그믐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에 ‘막날’이라고도 일컫는다. 섣달그믐은 가는 해를 정리하고 설을 준비하는 날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한다. 온 집안을 환하게 밝혀 놓고 잠을 자지 않고 수세(守歲)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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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무, 고춧가루, 생강 등을 넣고 엿기름에 삭힌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음식. 멥쌀이나 찹쌀을 무와 고춧가루, 생강 등의 향신료와 엿기름물에 버무려 3~4시간 발효 시킨 뒤 재빨리 냉온에서 식혀 하루 동안 숙성시킨 음료이다. 안동식혜는 전국에서도 안동문화권에서만 전해지는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일반적으로 식혜라 불리는 음료와 구분하기 위하여 안동식혜라 불리고 있다. 맛이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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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정숲 은 마을의 북쪽, 부용대 앞으로 흐르는 꽃내 옆에 만들어진 푸른 솔숲이다. 이 만송정숲은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북쪽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내는 풍수지리적인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만송정숲은 조선 전기 선조 때 겸암 류운룡이 만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에 이른다고 전한다. 마을에는 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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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만고(萬古), 호는 이면재(易眠齋). 증조할아버지는 김정헌(金廷憲)이고, 할아버지는 김몽호(金蒙虎)이다. 아버지는 승정원승지를 지낸 구전 김중청(金中淸)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이영승(李永承)의 딸이다. 부인은 연천군(延川君) 이경엄(李景嚴)의 딸이다. 김주우(金柱宇)는 1598년 안동(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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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6세기 말 조선에서 동인과 서인의 붕당 정치가 전개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1587년(선조 20)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시대를 통일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국내의 통일과 안정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고자 하였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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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우민(林又民)은 본관이 예천(醴泉)이고, 자는 여일(茹一)이며, 호는 만문(晩聞)이다. 1900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고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75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우민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리 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시위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몰려갔다. 300여 명의 군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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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팔(啓八), 호는 만산(晩山)이다. 1858년(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서 태어나 1912년 사망하였다. 류창식은 동산 류인식(柳寅植)과 사촌간이며, 삼산 류정원(柳正源)의 후손으로 삼산종택(三山宗宅)의 종손이다.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변복령 등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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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 초명은 진수(進銖), 자는 학일(學一), 호는 만산(晩山). 아버지는 낙포(樂圃) 김재로(金載輅)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석중(權錫重)의 딸이다. 김영수(金永銖, 1862~1925)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189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하였다. 1905년(고종 42) 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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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만산(萬山). 증조부는 노애(蘆厓) 류도원(柳道源), 할아버지는 호곡(壺谷) 류범휴(柳範休), 아버지는 류노문(柳魯文)이다. 류치엄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종제(從弟) 류치유(柳致游)와 더불어 스승 류치명의 유고를 수집해 세 차례나 필사하여 문집을 완성하였다. 퇴계학을 충실히 계승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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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수재(晩修齋).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각(安恪)의 딸이다. 중년에 율인(律人)의 동명(同名)을 피해 ‘금변(琴忭)’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나중에 다시 처음의 이름으로 고쳤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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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초자는 비언(斐彦), 자는 치양(穉養), 호는 후계(後溪)·만와(晩窩)·긍재(兢齋)·육우당(六友堂)·육우헌(六友軒)·기은(杞隱).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이구몽(李龜蒙), 어머니는 김택동(金宅東)의 딸, 처는 이한우(李漢佑)의 딸이다. 6남 2녀 가운데 차남으로 6형제 중 유일하게 현감 벼슬을 했으며,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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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만우정은 조선 후기 병조참판을 지낸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류치명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명문 전주류씨 집안의 불천위(不遷位) 5인 중 한 사람으로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이다. 남한조(南漢朝)·정종로(鄭宗魯)·이우(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5년(순조 5)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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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안동 예안이씨 근재재사는 고려통합삼한개국익찬공신(高麗統合三韓開國翊贊功臣) 이탁의 15세손인 근재(近齋) 이전(李筌, 1486~1529)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전의 장손인 이호(李瑚)가 건립한 재사이다. 이전의 자는 무선(茂先)으로, 기묘사화 때 낙향하여 안동 풍산현(豊山縣)에 은거하였고, 이호는 명종 때 종사랑(從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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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608년에 지은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만운촌은 일명 두답(斗畓)이라고도 한다. 풍산현의 북쪽 5리에 위치하며 선비 송여원(宋汝源)이 마을의 이름을 만오(晩悟)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말논, 마논, 또는 두답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마을이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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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조선 중기 송여원(宋汝源)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천옥(天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천옥에서 벗어나려면 거침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운(晩雲)으로 이름 지었다. 안동권씨는 방담(方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방담 권강(權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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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에 있는 저수지. 만운저수지는 풍산읍 만운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하여 1952년 1월 1일 착공하여 1959년 1월 1일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 23.75㎢, 만수 면적 0.43㎢, 수혜 면적 4.16㎢이다. 만운저수지의 길이는 148m, 높이는 12.3m, 부피는 3,339㎥이며, 총 저수량은 2,203,000㎥, 유효 저수량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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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제경(濟卿), 호는 만원(晩畹)이다. 1856년(철종 7) 의성김씨 천전(내앞) 문중의 종손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1리에서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하였다. 김병식은 1907년 내앞마을에 설립된 협동학교에서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협동학교는 안동의 혁신 유림인 김대락(金大洛)·이상룡(李相龍)·류인식(柳寅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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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봉(斗里峯)의 응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름·만음·원만음이라고도 한다. 약 400년 전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의령옥씨(宜寧玉氏)들이 개척하면서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만음·개곡·서당리·명곡이 통합되어 만음리가 되었다. 뒤로 낮은 산이 있고, 가운데로 백자천과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안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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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두리봉(斗里峯)의 응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름·만음·원만음이라고도 한다. 약 400년 전 영양남씨(英陽南氏)와 의령옥씨(宜寧玉氏)들이 개척하면서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원만음·개곡·서당리·명곡이 통합되어 만음리가 되었다. 뒤로 낮은 산이 있고, 가운데로 백자천과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안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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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류씨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하회마을에 자리를 잡았을까? 풍산류씨가 하회에 자리 잡은 것은 고려 후기이다. 겸암과 서애의 6대조인 전서공(典書公) 류종혜(柳從惠)가 풍산 상리(上里)에 세거하다가 길지를 찾아 지금의 하회마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실 류씨들이 하회에 세거지를 마련한 것은 전서공이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기 훨씬 이전, 곧 전서공의 할아버지이자 고려의 도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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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다른 이름은 이용희(李龍羲)이다. 자는 건초(健初), 호는 만진(晩眞)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865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안동면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에 거행될 예정이었으나 기획 단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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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만초(萬初)이며, 호는 석주(石洲)이다. 초명은 이상희(李象羲)이나, 1911년 만주 망명 이후 이상룡(李相龍)으로 개명하였으며 계원(啓元·啓源)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58년 지금의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문적으로는 퇴계 학통을 계승한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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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이화(而和), 호는 만퇴헌(晩退軒)·구전(苟全). 할아버지는 김정헌(金廷憲)이고, 아버지는 중추부첨지사를 지낸 김몽호(金夢虎)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로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형 박승인(朴承仁)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이씨로 이영승(李永承)의 딸이다. 아들은 김주우(金柱宇)이다. 김중청(金中淸)은 1567년 안동(현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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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만포택은 이익호(李翊鎬, 1832~1885)의 가옥이다. 이익호는 본관이 진성(眞城)이며, 자는 여명(汝明), 호는 만포(晩圃)이다. 그의 아호를 따서 택호를 만포택이라 하였다.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부친은 이중극(李中極)이다. 이익호는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문이 깊었다. 시문(詩文)에 능해 문집 『만포집(晩圃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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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립(公立), 호는 만회헌(晩悔軒). 김경한(金景漢)의 현손, 현감을 지낸 김택동(金宅東)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정언을 지낸 김희성(金熙成), 아버지는 서추(西樞) 김재인(金在仁),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의 후손인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김건수는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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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만휴정은 조선 중기 문신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곳이다. 김계행의 본관은 안동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이 시작되자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김계행은 특히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보백당이라는 호도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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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청주정씨 동성 마을. 탯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태리(台里)라고 불렀으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입향조 정두(鄭枓)는 와룡면 지내리에서 출생하여 13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가세가 점점 기울어지자 척박한 환경의 지내리를 벗어나 태리에 정착하였다. 정두의 아들 정사성(鄭士誠)과 정사신(鄭士信)이 크게 이름을 떨쳐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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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태어난 용마가 개목산에 눈을 뜨고, 이개리에서 귀가 열렸으며, 이 마을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여 명리(鳴里)라 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권대인(權大仁)의 아들인 권중상(權重常)이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명리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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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상산(上山)에서 위용이 대단한 용마(龍馬)가 태어났는데 이개리(耳開里)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서 와서 울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우리라 하였다. 명리는 말우리의 한자 표기이다. 상산은 일명 상산(商山)이라고도 하는데 서후면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자연마을인 수능골[水陵谷, 일명 쑤능골]은 진골 동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아무리 가물어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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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활동하는 문학인 5명이 펴낸 문학 동인지. 박희용(개산)·임명삼(우곡)·권보혁(양전)·주영욱(옥산)·서정오(지행)는 동인을 결성하여 낙강오우(洛江五友)라고 칭하고, 서로를 도둑으로 부르며 우의를 다지는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작품집으로 엮어 1981년 『말』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하였다. 『말』은 시·소설·수필·희곡 등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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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용상동의 옛 이름은 마평(馬坪)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에 피난 왔을 때 기산(岐山)에 성을 쌓고 이곳에서 말을 먹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뜰·맛들이라고도 한다. 또 조선 전기의 재상 맹사성(孟思誠)이 안동부사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비만 오면 낙동강 가의 제방이 유실되었다. 하루는 마씨(馬氏) 성을 가진 사람의 꿈에 청룡(靑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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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작업노동요의 하나. 「망깨 소리」는 토목공사를 하기 위해 큰 말뚝을 망깨로 박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이다. 1,000근이나 나가는 가장 무거운 망깨는 쇳덩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갑자기 뚝 떨어뜨려 큰 나무를 땅에 박는 기구이다. 망깨를 들자면 일꾼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망깨에 줄을 묶어 도르래에 걸고 한꺼번에 여럿이 망깨줄을 잡고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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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 할아버지는 사의(司議) 김농(金農)이고, 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김대현(金大賢)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딸이다. 김대현의 8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자 인조가 팔련오계지미라 크게 칭찬하고 마을 이름을 오미동(현 풍산읍 오미리)이라 사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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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강(彦康), 호는 망월헌(望月軒).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딸과 혼인하여 2녀를 낳았으며 이후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의 딸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만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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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말에 염흥방이란 사람이 사병을 길러 약탈을 일삼자 나라에서 관군을 보내어 마을 앞 반변천(半邊川)에서 토벌하여 사병들이 이곳에서 전멸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망지내[亡地川]라 칭해 오다가 지명에 ‘망(亡)’자가 있어 좋지 않다고 하여 망천(網川)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임하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숙종 때 안동군 임동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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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절터. 망천사지(望天寺址)가 위치한 마을은 원래 중국에 있는 망천(輞川)과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지녔다고 하여 망천이라 하였다. 그 후 낙동강 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 마애로 바꾸어 불렀다. 망천사지는 풍산읍 마애리 마애마을에 있다. 이곳은 마애들의 동남쪽 끝자락에 해당하며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현재 망천사지 주변은 마애들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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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에 있는 기암절벽. 마애는 마을의 생김새가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중국의 망천(輞川)을 빼어 닮았다고 해서 망천이라 불렸다. 이러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어 자연스레 망천절벽이 되었으며 이후 낙동강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상인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磨崖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 있어서 마을 이름은 마애(磨崖)라 변경되어 불리게 됐다. 망천절벽은 마애마을 앞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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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주지(冑之), 호는 망헌(忘軒). 할아버지는 이증(李增), 아버지는 이평(李泙),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군사(郡事) 허추(許樞)의 딸이다. 이주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평소 성품이 조용하고 담박하여 일체의 권세와 이익에 관심이 없었으며 옛 사람처럼 되기 위해 스스로 힘써 노력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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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고려 말에 시랑(侍郞) 벼슬을 지낸 소씨(蘇氏) 가문이 살았는데, 앞에 펼쳐진 들과 호수를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망호리(望湖里)라 하였다. 또한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불렀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옛날에는 구미촌(龜尾村)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 일직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호리(蘇湖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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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망호리 남씨 영모사는 노애(魯厓) 남태백(南太白, 1559~1601), 운간(雲磵) 남태화(南太華, 1565~1591), 청천(晴川) 남태별(南太別, 1568~1635) 등 삼형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166번지에 있다. 망호리 남씨 영모사는 1826년(순조 26) 건립되었다.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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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한산이씨 동성마을. 고려 말 소씨(蘇氏) 일족이 살 때 앞에 펼쳐진 들을 바라보는 마을이라 하여 안망실이라 하였고, 소씨의 호수가 있어 소호리(蘇湖里)라고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망실과 소호리를 병합하고 안망실의 ‘망’자와 소호리의 ‘호’자를 따서 망호리라 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고 16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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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남리(梅南里)·우안동(愚安洞)·번곡(蕃谷)을 병합하여 매남리의 ‘매(梅)’자와 번곡의 ‘곡(谷)’자를 따서 매곡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고, 1895년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남리·우안동·번곡이 병합되어 매곡리가 되었다. 193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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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와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 경계의 보문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매곡리는 조선시대에 풍산현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혁으로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남리·우안동·번곡을 병합하고 매남리의 ‘매’자와 번곡의 ‘곡’자를 따서 매곡이라 하였으며, 매곡천은 이 매곡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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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도포의 뒷자락을 이르는 명칭. 도포는 곧은 깃에 커다란 두리소매가 달려 있고 뒷자락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포이다. 안동에서 도포는 도복(道服), 두리소매는 콩테기 혹은 홍태기 소매라 불렀다. 도포의 뒷자락을 젖혀보면 앞자락의 옆무가 등 쪽으로 들어가 고정되고, 그 위를 뒷자락이 덮는다. 이 뒷자락을 안동에서는 매미자락 혹은 매미차락, 매미찰이라고 한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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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도포의 뒷자락을 이르는 명칭. 도포는 곧은 깃에 커다란 두리소매가 달려 있고 뒷자락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포이다. 안동에서 도포는 도복(道服), 두리소매는 콩테기 혹은 홍태기 소매라 불렀다. 도포의 뒷자락을 젖혀보면 앞자락의 옆무가 등 쪽으로 들어가 고정되고, 그 위를 뒷자락이 덮는다. 이 뒷자락을 안동에서는 매미자락 혹은 매미차락, 매미찰이라고 한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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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도포의 뒷자락을 이르는 명칭. 도포는 곧은 깃에 커다란 두리소매가 달려 있고 뒷자락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포이다. 안동에서 도포는 도복(道服), 두리소매는 콩테기 혹은 홍태기 소매라 불렀다. 도포의 뒷자락을 젖혀보면 앞자락의 옆무가 등 쪽으로 들어가 고정되고, 그 위를 뒷자락이 덮는다. 이 뒷자락을 안동에서는 매미자락 혹은 매미차락, 매미찰이라고 한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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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시화(市花). 매화나무 또는 매실나무라고도 한다. 꽃을 매화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이라고 한다. 안동시에서는 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어 시민의 자긍심을 기르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매실을 이용한 소득 증대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하며 2006년부터 ‘매화나무 10만본 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2007년까지 3만 그루의 묘목을 보급한 데 이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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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 할아버지는 인제현감을 지낸 이흠(李欽), 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이숙량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분천리(汾川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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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이숙량의 시문집. 이숙량(李叔樑, 1519~1592)은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아들로 1543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대과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는 한편, 금보(琴輔) 오수영(吳守盈, 1521~1606) 등과 더불어 선성삼필(宣城三筆)로 불렸다. 대구 인근에 연경서원(硏經書院)을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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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골매의 ‘매’자와 신정의 ‘정’자를 따서 매정리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예안군 북면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골매리·신정리·고정리·지심골·담마가 병합되어 매정리가 되고 안동군 녹전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가 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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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 매정리 석불(梅井里 石佛)은 석불좌상으로, 매정리 쥐심골에 있어 일명 ‘쥐심골 부처메기’라고도 한다. 2000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이 시행한 지표 조사 당시에는 서안당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석불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도난으로 인해 분실된 상태이다. 쥐심골마을은 매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골매(骨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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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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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선돌은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의 하나로서 자연석 또는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세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선돌은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평지나 낮은 구릉 위 또는 비탈에 세워졌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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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매정리에 있는 저수지. 매정저수지는 녹전면 매정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하여 2001년 11월 18일 착공하여 2006년 8월 31일 준공하였다. 유역 면적 3.40㎢, 만수 면적 0.06㎢, 수혜 면적 1㎢이다. 매정저수지의 길이는 144m, 높이는 39.1m, 부피는 233,000㎥이며, 총 저수량은 579,700㎥, 유효 저수량은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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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부(子孚), 호는 매창(梅窓)·신곡(神谷). 증조부는 의영고직장 정윤소(鄭允昭), 할아버지는 진사 정언보(鄭彦輔), 아버지는 정두(鄭枓),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사직 권식(權軾)의 딸이다. 형이 양구현감 정사성(鄭士誠)이다. 정사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형 정사성에게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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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문(繼聞), 호는 매촌(梅村).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김홍명(金弘命)의 딸이다. 금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후계(後溪) 이이순(李頤淳)에게 수학하다가, 관례를 치르고는 면암(俛庵) 이우(李㙖)에게는 『중용(中庸)』을 수업받았으며, 광뢰(光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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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팽나무는 달주나무·매태나무·평나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자나무 가운데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이 심어져 있는 수종이다. 비슷한 종으로 자주팽나무, 섬팽나무, 둥근잎팽나무, 산팽나무, 왕팽나무, 검팽나무, 폭나무 등이 있다. 안동시에는 세 그루의 팽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줄기가 곧게 서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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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유생.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사임(士任), 호는 매헌(梅軒)·백율당(柏栗堂).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원수(琴元壽),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장령 김영수(金永銖)의 딸, 처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맏형 이잠(李潛)의 손녀이다. 금보는 26세 때인 1546년 증광시의 생원과에 합격하였다.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임 중이었던 15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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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금보의 문집. 1891년(고종 28)에 매헌(梅軒) 금보(琴輔, 1521~1585)의 10세손인 금우열(琴佑烈)이 편집, 간행하였다. 본서의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4㎝, 세로 18.4㎝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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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우(士遇), 호는 매호(梅湖). 아버지는 증 참의(參議) 권선문(權善文),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참봉 반숙(潘淑)의 딸이다. 숙부 권호문(權好文)에게 입양되었다. 권행가는 1572년(선조 5)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그 뒤 김성일(金誠一), 권대기(權大器)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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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의 시화(市花). 매화나무 또는 매실나무라고도 한다. 꽃을 매화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이라고 한다. 안동시에서는 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어 시민의 자긍심을 기르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매실을 이용한 소득 증대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하며 2006년부터 ‘매화나무 10만본 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2007년까지 3만 그루의 묘목을 보급한 데 이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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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에 있는 식물원. 맥설자생식물원은 지역 개발에 따른 훼손 및 남획으로 사라져 가는 자생 식물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을 보호하고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는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자 2002년 건립되었다. 맥설자생식물원은 9,917.36㎡의 대지에, 야생화 수백 종이 식재되어 있는 식물원 시설 11개 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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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에 있는 고개.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암행 중 이곳에 이르러 점심식사를 부탁했는데 그 해는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지 못하여 풋보리를 잘라 드리니 왕이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보릿고개로군’하여 보리고개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보리고개를 맥현(麥峴)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변에는 갓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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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맹여(孟余)이다. 임동숙은 1884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437번지[금소중앙길 26-1]에서 태어났고,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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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맹옥(孟玉), 호는 일산(一山), 또 다른 이름은 김종훈(金宗勳)이다. 1890년(고종 27)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임하면 천전리에 묘가 있다. 김성로는 1907년 류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이 설립한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입학, 졸업하였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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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진성(眞城). 자는 맹윤(孟潤, 孟胤), 호는 조은(釣隱). 퇴계(退溪) 이황(滉)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이영철(李英哲), 할아버지는 이경(李檠), 아버지는 이수항(李守恒),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노석(安老石)의 딸이다. 이세택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예안현(禮安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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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권홍(權弘)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때 남쪽 멀리에 큰 호수가 보인다고 하여 원호(遠湖)라 하였다. 물이 멀다고 하여 멈물·머무리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리(松里)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호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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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칠월 중순 무렵 논매기가 끝나면 벌이는 농민들의 제축 행사. 풋굿(백중놀이)은 연간 농작물 재배의 핵심적인 활동을 모두 마치고, 음력 7월 초·중순 무렵에 마을 단위로 날을 정하여 하루를 먹고 노는 세시풍속이다. 이를 풋구·머슴날·풋굿먹기·꼼베기놀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우물을 치고 길을 닦는 등 공동노동을 하며, 각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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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절벽에 서식하던 황새과의 조류. 몸길이는 약 96㎝로 황새보다 작다. 부리부터 눈 둘레까지는 붉은색이고, 머리에서 목과 몸의 윗면은 녹색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배는 희고 다리는 붉다. 어린 새는 검은색 부위가 갈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어두운 빛깔이다. 알을 낳는 시기는 3~5월이며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높은 나무 위나 바위 절벽에 작은 나뭇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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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 인조 때 권홍(權弘)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때 남쪽 멀리에 큰 호수가 보인다고 하여 원호(遠湖)라 하였다. 물이 멀다고 하여 멈물·머무리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동부 일직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송리(松里) 일부가 통합되어 안동군 일직면 원호리가 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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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후면의 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어 면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옹천리는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편의시설, 즉 농협이나 우체국, 농협 등이 모두 들어와 있어 안동 지역에서는 가장 살 만한 곳 중의 하나이다. 이렇듯 면사무소나 농협, 우체국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북후면 주민들이 주민등록등본 교부로부터 금전 업무 등 공무를 보기 위해서 옹천마을을 찾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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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직(一直). 자는 인보(引甫), 호는 면재(勉齋)·격재(格齋). 정평공(靖平公) 고조부는 손홍량(孫洪亮), 증조부는 좌대언(左代言)을 지낸 손득수(孫得壽), 할아버지는 한성판윤 손영유(孫永裕), 아버지는 장흥고사(長興庫使) 손관(孫寬),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로 김흡(金翕)의 딸, 처는 진주하씨(晉州河氏)로 광흥승(廣興丞) 하숙(河潚)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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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훈지(壎之), 호는 면진재(勉進齋). 아버지는 예안훈도(禮安訓導) 금재(琴榟)이다. 형이 금응협(琴應夾)이다. 금응훈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친형인 금응협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종묘서부봉사에 제수되었다. 금응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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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출신의 교육자이자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중(唯中), 호는 명곡(明谷). 할아버지는 류연구(柳淵龜, 1861~1938)이며, 아버지는 류철훈(柳轍薰)이다. 류정기(柳正基, 1910~?)는 안동 지역 명문가의 후예로,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대학을 졸업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대학 교수로서 인재 양성에 힘썼으나 한글 전용을 반대하다가 파면당하였다. 충남대학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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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명구(鳴九), 호는 육유재(六有齋). 할아버지는 계암(溪巖) 김령(金坽)이고, 아버지는 김휘두(金輝斗)이다. 어머니는 영해신씨로 신건(申楗)의 딸이며, 부인은 진성이씨로 이성철(李誠哲)의 딸이다. 김용(金鏞, 1657~1732)은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스스로 학문을 탐구하여 경사(經史)와 성리서(性理書) 등에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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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명륜동에 있는 도로. 명륜길이 있는 지역은 조선시대 향교가 있던 지역으로, 이에 따라 도로의 명칭도 명륜길이라 하였다. 명륜길은 도로명 주소사업 시행에 따라 안동시에서 새로 지정한 골목길의 명칭이다. 명륜길은 골목길로 차선이 없으며, 도로 폭은 기점이 약 3m이고 중간부터 종점까지는 약 2m 정도이다. 명륜길과 시청로가 인접한 부분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으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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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향교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의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라 하였다. 예전에 안동향교가 있던 마을이므로 향교골이라 불렀다. 생긋골이라고도 하였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 일부가 명륜동 일정목이 되었고,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명륜동이 되었다. 1964년 법정동인 명륜동과 신안동이 병합되어 행정동인 명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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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상산(上山)에서 위용이 대단한 용마(龍馬)가 태어났는데 이개리(耳開里)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서 와서 울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말우리라 하였다. 명리는 말우리의 한자 표기이다. 상산은 일명 상산(商山)이라고도 하는데 서후면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자연마을인 수능골[水陵谷, 일명 쑤능골]은 진골 동쪽 산 너머에 있는 마을로 아무리 가물어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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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명리에 있는 안동권씨 동성마을. 상산(商山)의 용소(龍沼)에서 태어난 용마가 개목산에 눈을 뜨고, 이개리에서 귀가 열렸으며, 이 마을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여 명리(鳴里)라 하였다. 안동권씨 복야공파 권대인(權大仁)의 아들인 권중상(權重常)이 서후면 교리에 살다가 풍광 좋은 곳을 찾아 명리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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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명보(明寶)·중휘(仲輝), 호는 오헌(辶+亏軒). 아버지는 김광술(金光述)이고,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임경진(任慶進)의 딸이다. 김총(金璁, 1633~1678)은 1652년(효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1662년(현종 3)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1663년 승문원정자·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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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명서(明瑞). 호는 금역당(琴易堂)·장륙당(藏六堂). 아버지는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배삼익(裵三益)이다. 배용길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으며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어 류성룡(柳成龍), 조목(趙穆), 남치리(南致利) 등에게도 사사하였다. 1575년(선조 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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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초자(初字)는 내봉(來鳳)·명수(鳴叟), 호는 소은(小隱). 생부는 류상문(柳相文)이고, 계부는 류두문(柳斗文)이다. 류치구(柳致球, 1793~1854)는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을 빌미로 뇌물을 요구하는 이를 보고 관직에 환멸을 느껴 낙향하였다. 인근에 살던 권이복(權以復), 서활(徐活) 등과 학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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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춘섭(林春燮)은 본관이 울진(蔚珍)이고, 자는 군현(君顯)이며, 호는 명열(明烈)이다. 1886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춘섭은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시위에 참가하여, 저녁 무렵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금소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시위 행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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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오(明五)이다. 1898년(고종 35)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사월리에서 출생하였고, 1932년에 사망하였다. 묘는 사월리 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뒤쪽에 있다. 권오규는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리 편항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와 3월 22일 당시 임북면소재지였던 사월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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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명옥대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사림에서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강도(講道)하던 자리를 기념하여 지은 정자이다. 옛 이름은 낙수대(落水臺)였으나 육사형(陸士衡)의 「초은시(招隱詩)」에 나오는 ‘나는 샘이 명옥을 씻겨 내리네(飛泉漱鳴玉)’라는 구절을 따와 명옥대로 바꾸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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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명우(鳴于), 호는 이호(伊湖). 아버지는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어머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로 고이절(高爾節)의 딸이며, 처는 팔거도씨(八莒都氏)로 도이망(都爾望)의 딸이다. 김세용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김학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내종형 고세헌(高世憲)에게 수업을 받았고 11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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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즐겨먹던 음식. 우리나라의 명절은 세시풍속에 포함되는 말이다. 세시라는 말은 해[年]와 때[時]의 합성어로서 사시절, 시절, 절후, 명절 등의 뜻을 지니기도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 ‘세(歲)’는 ‘년(年)’ 또는 수확을 의미하고, ‘시(時)’는 지속적인 기간을 말한다. 세시풍속은 일정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주기성을 가지고 있으며, 평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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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이계양(李繼陽)이다. 조카가 온계(溫溪) 이해(李瀣)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이우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溫惠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1492년(성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3월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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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명리(明里)·덕리·광연리(光淵里)·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望津里)를 병합하고 명리의 ‘명’자와 망진의 ‘진’자를 따서 명진(明津)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일직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리·덕리·광연리·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 망진리가 병합되어 명진리가 되었다. 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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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살을 발라내어 조리한 경상북도 안동 지역 반가의 음식. 주로 마른 북어 살을 보푸라기를 내어 조리한 반찬류로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경상북도 지역의 고유한 향토음식이다. 북어 대신 대구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경상북도 지역의 종가 음식으로 제사상이나 어른 상에 많이 올리던 것으로 보아 이가 약한 어른들이 드시기 좋게 하기 위해 조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어는 뼈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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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 살을 발라내어 조리한 경상북도 안동 지역 반가의 음식. 주로 마른 북어 살을 보푸라기를 내어 조리한 반찬류로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경상북도 지역의 고유한 향토음식이다. 북어 대신 대구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경상북도 지역의 종가 음식으로 제사상이나 어른 상에 많이 올리던 것으로 보아 이가 약한 어른들이 드시기 좋게 하기 위해 조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어는 뼈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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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경(羽卿), 호는 모계(某溪).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진억(金鎭嶷)이고,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송양신(宋養信)의 딸이다. 김홍락(金鴻洛, 1868~1933)은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1884년(고종 21)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였으나 취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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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정자. 모계정사는 조선 말기 김홍락(金鴻洛, 1863~1943)이 건립한 정자로, 명칭은 김홍락의 아호에서 비롯되었다. 김홍락의 자(字)는 우경(羽卿), 호는 모계(某溪)이다. 1884년(고종 21) 동당시(東堂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894년(고종 31) 문과 전시(殿試)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906년(고종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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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 「모내기 소리」는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서 모심기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로서 경상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부르는 모노래류와 비슷하다. 이를 「모심기 소리」, 「모숭기 소리」라고도 한다. 「모내기 소리」는 모내기를 하면서 하루 종일 부르는 까닭에 아침소리·점심소리·저녁소리 등으로 구별된다. 아침소리는 어제 저녁에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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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김경조의 12세손으로 태어난 김재봉(金在鳳)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다가 1908년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09년 경성공업전습소에 입학하였다. 1912년 학업을 마치자 곧바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경조는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920년 『만주일보』 경성지사 기자로 입사하였다. 그러나 조선독립단의 문서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입사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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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법정리. 한양조씨 후손들이 살면서 마을 주변에 모시를 심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급하였으므로 모시밭·저전동(苧田洞)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양지마는 지형이 삼태기 모양으로 되어 있고 정면이 정남향이어서 일 년 내내 온화하고 아늑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마는 조광조(趙光祖)의 난을 피하여 한양조씨가 처음 정착한 마을로, 남쪽에 높은 산이 있어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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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 있는 한양조씨 동성마을. 예부터 모시밭이 많았고 모시를 짜는 부인들이 많아서 ‘모시밭’이라 하였다. 저전(苧田)은 모시밭의 한자 표기이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양조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자 조종(趙琮)의 아들 5형제가 영주로 몸을 피하였는데, 이후 넷째 아들 조신완(趙信琬)은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에 정착하여 세거하였다. 조신완의 증손자인 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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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 모운사(暮雲寺)라는 절 이름은 신라 8산(八山)의 하나인 모운산(暮雲山)에서 유래하였다. 모운사를 건립한 의상(義湘, 625~702)은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김(金)이다. 신라 십성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화엄을 공부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부석사(浮石寺)를 세우고 화엄종을 강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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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머리를 보호하거나 격식을 갖추기 위해 집안 혹은 외출할 때 쓰던 모자. 관모는 각종 의례와 생활에서 의복과 함께 착장자의 신분을 나타내었다.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른 관제(官制)와 예제(禮制)가 잘 정비되어 다양한 의관이 발달하였다. 특히 남자의 관모는 때와 장소에 따른 직급별 의관이 더욱 다양하였다. 관모에는 관복에 쓰는 사모(紗帽), 평상시에 사용하는 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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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아 올린 탑으로,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인도에서는 예부터 흙과 돌을 쌓아 올려 묘를 쓰던 습관과, 거룩하게 여겨 기리던 곳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고 탑을 조성한 뒤부터 불교의 예배 대상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 인도에서는 사발을 엎어 놓은 듯 둥글고 크게 탑을 쌓아 올려 내부 공간을 만들고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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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 고성(固城). 자는 경원(景園), 호는 모정(慕亭).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평지옹(平地翁) 이헌복(李憲復), 아버지는 생원 이주령(李周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학도(權學度)의 딸이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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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서 모찌기를 하며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 「모찌는 소리」는 모내기에 앞서 모판에서 모를 뽑는 모찌기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안동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를 논에 심기 전에 파종해 한 뼘 정도 자란 모를 뽑아야 하는데 이것을 모 찐다고 한다. 안동 지역에서 「모찌는 소리」는 귀한 노래이다. 조차기와 같이 탁월한 소리꾼을 만나지 못하면 듣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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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부르는 운반노동요. 「목도 소리」는 비석이나 큰 목재와 같은 아주 무거운 물체를 운반할 때에 부르는 노동요이다. 이러한 일은 아무나 하기 어렵기 때문에 목도패와 같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아주 무거운 물체를 운반할 때는 서로 손발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목도 소리」를 부른다.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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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서. 목석거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7세손인 김학순(金學淳, 1767~1845)이 안동부사로 있으면서 새긴 암각서이다. 김상헌은 병자호란 후 현재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로 물러나 청원루(淸遠樓)에서 생활하다가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로 거처를 옮기고 초가집을 지어 ‘목석거 만석산방(木石居萬石山房)’이라 이름하고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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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동.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목성동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에 속한 지역으로 잿골 또는 성야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47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법상동에서 분리되어 목성동이 되었다.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목성동이 되었다. 목성산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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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목성동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성당.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이다. 1927년 6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같은 해 6월 14일 안동시 율세동에 안동본당으로 설립되었다. 1928년 4월 15일 안동시 안막동으로 성당을 이전하였으며, 1949년 12월 18일 안동시 목성동 현재의 위치로 성당을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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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목성동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성당.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이 되는 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이다. 1927년 6월 1일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같은 해 6월 14일 안동시 율세동에 안동본당으로 설립되었다. 1928년 4월 15일 안동시 안막동으로 성당을 이전하였으며, 1949년 12월 18일 안동시 목성동 현재의 위치로 성당을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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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목암정은 조선 후기 목암(牧庵) 김정기(金鼎基, 1632~1708)가 건립한 정자이다. 김정기의 아호인 목암은 『주역(周易)』의 ‘지극히 겸손한 군자는 낮음으로써 자처한다(謙謙君子卑以自牧也)’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 김정기의 본관은 의성(義城)으로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의 현손이고 운천(雲川) 김용(金涌)의 증손이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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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목은 이색의 초상화. 「목은 영정」은 조선 전기에 그려진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영정이다. 이색은 문하에 권근, 변계량 등 많은 학자를 길러내어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던 만큼 전국 여러 곳에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서울 수송동 목은 영당, 충청남도 서천군 문헌서원, 예산군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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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목재 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목재(穆齋) 이만유(李晩由)의 옛집으로, 그가 영해부사를 역임하였기에 택호를 ‘영감댁(令監宅)’이라 하였다. 이만유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도여(道汝)이다. 이황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휘명(李彙明)이다. 영남만인소의 소두(疏頭) 이만손(李晩孫)의 친족이다. 1858년(철종 9)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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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목지(牧之), 호는 우원(尤園). 아버지는 이인섭(李寅燮), 어머니는 풍산류씨(豊山柳氏)로 통덕랑을 지낸 류성구(柳聖久)의 딸이다. 이정국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73(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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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는 다른 마을과 다르게 일생을 다해 서낭신을 모시는 산주(山主)가 있다. 옛날에 산주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서낭당에 올라가 불을 켜고 기도를 올렸으며, 섣달 보름에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 몇십 년 전까지도 마을 사람들은 산주는 서낭신이 꿈에 나타나는 등 신비한 현상을 통해 계시를 내려서 정해 준다고 믿었다. 신의 계시를 받아야 산주가 될 수 있을 만큼, 산주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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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수리시설의 수축과 관리를 위하여 지역 농민들이 조직한 계. 수리계라고도 하는 몽리계는 일종의 농촌공동체로서 보계(洑契), 제언계(堤堰契)로 나뉜다. 몽리계는 수리시설의 수리망이 미치는 영역 내에 경지를 소유하고 있는 몽리자들로 구성된다. 몽리자들은 수리시설의 유지 관리를 위한 부역에 참여하며, 부담금인 수세납부의 의무를 지닌다. 몽리계 조직은 지역별로 조직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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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여(天與), 호는 월탄(月灘)·몽선도객(夢仙道客). 아버지는 수직(壽職)으로 중추부동지사를 지낸 김이기(金履基)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충의위(忠義衛) 윤탕빙(尹湯聘)의 딸이다. 김창석(金昌錫, 1652~1720)은 1687년(숙종 13)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유학하면서 재약(齋約) 6조를 정하고 잠언을 지어 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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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화영은 1886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몽어(夢魚)이다. 1968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번지 국립대전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1919년 고종의 죽음으로 전국으로 3·1운동의 물결이 퍼져 나간 가운데 안동 지역에서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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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요원(遙原)·아몽(阿蒙), 호는 몽재(蒙齋). 할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아버지는 군기시첨정을 지낸 이준(李寯),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훈도 금재(琴梓)의 딸이다. 아내는 안동권씨이다. 동생은 이영도(李詠道)이다. 이안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인 권씨 부인이 시동생 이영도의 아들 이억(李嶷)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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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간행된 안동 출신의 문신 이안도의 문집. 이안도(李安道, 1541~1584)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적손(嫡孫)으로 어려서부터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천거를 받아 목청전참봉(穆淸殿參奉), 풍저창부봉사(豊儲倉副奉事),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등을 지냈다. 『몽재집(蒙齋集)』은 도산서원에서 간행되었다고 하는데, 기타 간행 과정 및 시기를 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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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묘소에서의 제례. 묘사(墓祀)는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시향제(時享祭) 또는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라고 해서 묘제(墓祭)라고도 한다.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는 풍산김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동족촌락이다. 풍산김씨 조상들의 묘소는 인근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의 대지산에 있으며, 산자락 아래에는 제례 도구를 보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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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묘소에서의 제례. 묘사(墓祀)는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시향제(時享祭) 또는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라고 해서 묘제(墓祭)라고도 한다.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는 풍산김씨들이 세거하고 있는 동족촌락이다. 풍산김씨 조상들의 묘소는 인근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의 대지산에 있으며, 산자락 아래에는 제례 도구를 보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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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당이 부르는 노래. 무가는 굿에서 무당이 신의 내력을 풀어내어 구송하는 본풀이를 말한다. 무가에는 무속의 신관(神觀)·우주관·인간관 및 존재근원에 대한 일체의 사고가 다 들어 있다. 이 때문에 무가를 무속의 구비경전(口碑經典)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무속에서 안동 지역의 무속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성주신의 본향이 안동땅 제비원’이라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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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경(茂卿), 호는 호양자(湖陽子)·호양(湖陽). 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권선(權宣)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권익창은 30대에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광해군 대를 거쳐 60대에 인조반정을 목도하며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살았다. 어려서부터 종숙부인 권우(權宇)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김성일(金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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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무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종교 현상. 무속은 크게는 민간신앙·민속종교·고유신앙·토속종교·향토신앙·민중신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보다 좁은 의미에서는 무당과 관계된 한국의 전래신앙을 말한다. 이를 ‘무교’라고도 한다. 정작 무속이란 명칭 자체는 근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해 무당과 관련된 습속으로 취급되었다. 안동 지역 무(巫)의 성격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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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무속 의례를 집전하는 전문 직능자. 무당은 신령과 단골을 중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풀어내는 무속의 종교 전문가이다. 이를 ‘점바치’라고도 한다. 흔히 무당이라 하면 격렬한 엑스터시를 전제로 하여 춤과 노래로서 신령을 초빙하고 또한 놀려서 인간 문제를 풀어버리는 선굿의 종교 직능자를 연상한다. 안동 지역에서 현재 무(巫)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단법인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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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이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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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이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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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무릉리에 있는 중앙선 철도역.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50년 8월 7일 6·25전쟁으로 역사가 소실되었다가, 1958년 6월 25일 다시 역사를 신축하였다. 1961년 8월 1일 역원 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1974년 3월 11일부터 소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가, 동년 12월 5일 다시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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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유원지. 암산유원지는 사행천인 미천(眉川)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있다. 미천과 마주한 붉은 절벽이 아름다워 오래전부터 안동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 주는 여름 휴양지로 이름난 이곳에 농업용 보를 막아 암산유원지를 조성하였다. 2008년 11월 농촌 전통 문화 자원을 발굴해 도농 간 교류를 촉진하여 농업인 소득 증대와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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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에 있는 법정리. 미천(眉川)이 산부리를 돌아 흘러 들어가므로 무른개라 하였고, 뒤에 무릉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트골·중산·몽곡·묵느므가 병합되어 무릉리가 되었다. 넓은 들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천이 흘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59㎢이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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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연부(鍊夫), 호는 무망재(无妄齋). 할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남응원(南應元)이고, 아버지는 안동 풍산으로 세거지를 옮겨 신안의 시조가 된 남융달(南隆達)이다. 형이 남급(南礏)이다. 남연(南碝, 1598~1664)은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정랑, 성균관직강, 호조좌랑, 형조정랑, 봉상시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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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음력 2월 9일을 가리키며, 어떤 일을 해도 해(害)가 없는 날. 우리의 전통 민간신앙에는 날수에 따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하는 손[害;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손은 열흘 단위로 옮겨 다니는데, 음력 1~2일은 동쪽, 3~4일은 남쪽, 5~6일은 서쪽, 7~8일은 북쪽에 있고, 9~10일에는 하늘로 가서 인간 세상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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멥쌀가루에 채 썬 무를 섞어 팥고물을 얹어 만든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음식. 무떡은 나복병(蘿蔔餠)이라고도 하며 『부인필지(婦人必知)』에서는 “무를 얇고 넓게 저며 소금물에 담갔다 건져 쌀가루에 굴려 묻은 것만 두고 아니 묻은 것은 도로 굴려 그 무쪽을 시루에 안칠 적에 쌀가루에 대강 뿌려 찐다”라고 하였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멥쌀 대신 찹쌀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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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무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종교 현상. 무속은 크게는 민간신앙·민속종교·고유신앙·토속종교·향토신앙·민중신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보다 좁은 의미에서는 무당과 관계된 한국의 전래신앙을 말한다. 이를 ‘무교’라고도 한다. 정작 무속이란 명칭 자체는 근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해 무당과 관련된 습속으로 취급되었다. 안동 지역 무(巫)의 성격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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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안동 등지에서 소론 이인좌와 북인 정희량 등이 영조와 노론 세력을 타도하기 위하여 일으킨 난. 무신란(戊申亂)은 1728년(영조 4) 무신년에 일어나 무신란이라 하는데, 충청도에서는 이인좌(李麟佐)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 영남에서는 정희량(鄭希亮)이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정희량의 난이라고도 한다. 박필현 등 소론 과격파는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과 영조의 즉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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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진동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경상도의 의병들에 대한 기록을 모은 책.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지 60년 뒤인 1788년, 정조는 안동의 의병장 류승현(柳升鉉)과 권만(權萬)에게 관작을 내리고 경상감사 등 관원들에게 의병의 사적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경상감사 등 관원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자, 이진동이 도내 각지의 인사들과 함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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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전주류씨 동성마을. 마을 뒤쪽에 있는 아기산(峨岐山)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싸는 형상으로 흐른다 하여 수곡리(水谷里)라고 하였다. 입향조 류성(柳城)의 아버지 류윤선(柳潤善)이 영주에 세거하고 있는 반남박씨 박승장(朴承張)의 사위가 되어 영주시 문수면으로 옮겨 온 뒤, 류성이 임하면 천전리에 세거하던 김진(金璡)의 맏사위가 되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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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수곡리 성황당은 임동면 수곡리 무실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빌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동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를 ‘무실 서낭당’이라고도 한다. 수곡리 성황당은 임하댐 건설로 인해 옮겨졌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동제당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안동의 전형적인 당집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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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려각. 정려각은 국가에서 풍습으로 권장하기 위하여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세우는 것으로, 무실 정려각은 전주류씨 류성(柳城)의 처인 의성김씨의 정절을 기리고 있다. 의성김씨는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딸이면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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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습을 시조로 하고 류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안동 지역의 전주류씨는 무실류씨로도 불리며 전주류씨의 시조 류습(柳濕)의 8세손 류성(柳城, 1533~1560)이 1550년경 안동 무실(현 임동면 수곡리)에 정착하고 후손들이 크게 문호를 넓혀 세거해 온 가문이다. 류습이 고려 말에 전주에 살면서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류습을 시조로 하고 전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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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안동은 흔히 양반의 고장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시대 상층 문화인 유학이 강성한 것 못지않게 고대부터 전승되어 오던 하층의 민속 문화도 다른 고장에 비하여 많이 남아 있다. 무용의 경우 비록 무속에 잠재되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안동의 다양한 계층들이 향유한 예술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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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무, 고춧가루, 생강 등을 넣고 엿기름에 삭힌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향토음식. 멥쌀이나 찹쌀을 무와 고춧가루, 생강 등의 향신료와 엿기름물에 버무려 3~4시간 발효 시킨 뒤 재빨리 냉온에서 식혀 하루 동안 숙성시킨 음료이다. 안동식혜는 전국에서도 안동문화권에서만 전해지는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일반적으로 식혜라 불리는 음료와 구분하기 위하여 안동식혜라 불리고 있다. 맛이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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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기우제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주술적 방법을 동원하여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 행위이며, 이를 흔히 ‘무제’라고도 한다. 농사를 비롯하여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이상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피해가 막심하다. 전통적으로는 벼농사와 관련하여 기우제를 많이 지냈는데, 그래서 모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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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묵계 동신당은 길안면 묵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빌기 위하여 수호신에게 마을 공동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묵계 서낭당’·‘묵계 처녀당’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묵계의 소지명으로 ‘서낭댕이’가 있다. 서낭댕이란 말은 성황당(동신당)이 있는 마을이란 뜻과 기지(基地)가 절묘하여 신선(神仙)의 터란 의미에서 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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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묵계 동신당은 길안면 묵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빌기 위하여 수호신에게 마을 공동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묵계 서낭당’·‘묵계 처녀당’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묵계의 소지명으로 ‘서낭댕이’가 있다. 서낭댕이란 말은 성황당(동신당)이 있는 마을이란 뜻과 기지(基地)가 절묘하여 신선(神仙)의 터란 의미에서 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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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당. 묵계 동신당은 길안면 묵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무병을 빌기 위하여 수호신에게 마을 공동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묵계 서낭당’·‘묵계 처녀당’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묵계의 소지명으로 ‘서낭댕이’가 있다. 서낭댕이란 말은 성황당(동신당)이 있는 마을이란 뜻과 기지(基地)가 절묘하여 신선(神仙)의 터란 의미에서 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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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법정리.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 하다가 1500년(연산군 6)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이 머물게 되면서 이듬해에 묵촌(黙村)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김계행이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으로 냇물이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묵계(黙溪)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 길안현에 속하였고, 1914년 오락을 병합하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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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안동김씨 동성마을. 원래 거무역(居無驛) 또는 거묵역(居墨驛)이라고 하였다. 그 뒤 안동김씨 입향조 김계행(金係行)이 마을에 은거하게 되면서 묵촌(黙村)이라 하였다가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정자 앞에 시내가 흐르므로 묵계(黙溪)라고 하였다. 연산군 때 김계행이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세 차례의 옥고를 치른 뒤 벼슬에서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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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및 고가. 묵계서원(默溪書院)은 고을의 선비들이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과 응계(凝溪) 옥고(玉沽, 1382~1436)를 봉향하는 서원이며, 안동김씨 묵계 종택은 묵계서원에서 멀지 않은 묵계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김계행의 종택이다. 김계행은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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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 가옥. 묵재 고택 관련 인물인 김종윤(金宗胤)은 자가 찬선(纘先)이고 호가 묵재(默齋)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사손(嗣孫)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은 봉사(奉事)를 지냈으며, 문학과 행실이 뛰어났다. 대제학 김학진(金鶴鎭)이 묘명을 지었다. 묵재 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2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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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용(汝用), 호는 묵재(黙齋). 할아버지는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이고, 아버지는 매원(梅園) 김광계(金光繼)이다. 어머니는 광주이씨이며, 생부는 김광실(金光實)이다. 부인은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의 딸이다. 김렴(金𥖝, 1612~1659)의 장인인 이윤우는 그의 재능과 도량을 칭찬하면서 한강(寒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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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경(文卿), 호는 창균(蒼筠)·금산(金山). 증조부는 남대장령(南臺掌令)을 지낸 김영수(金永銖), 할아버지는 좌승지를 지낸 김영(金瑛),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를 지낸 김생락(金生洛), 처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찰방을 지낸 벽오(碧梧) 이문량(李文樑)의 딸이다. 증조부 대부터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여 김기보도 한양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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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응현(應見), 호는 겸암(謙菴). 아버지는 류중영(柳仲郢)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류성룡(柳成龍)의 형이다. 아들 류기(柳䄎), 손자 류원리(柳元履), 증손자 류세철(柳世哲)과 류세명(柳世鳴, 1636~1690)을 두었다.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은 어릴 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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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 한산(韓山).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 고조부는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증조부는 이효제(李孝濟), 할아버지는 이석관(李碩觀), 아버지는 이태화(李泰和),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로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딸이다. 고조부 이홍조가 광해군 때 외조부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있는 안동으로 피신해 오면서 그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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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 할아버지는 이함(李涵), 아버지는 이시명(李時明),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로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이현일은 경상도 영해(寧海) 인량리(仁良里, 현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태어났으며, 퇴계학파의 적통인 외조부 장흥효와 중형 이휘일에게 수학하였다. 164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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